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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간(6)-종묘
장주익 2013년 01월 29일 (화) 01:53:57
84세의 원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를 아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의 수상자(1989년)이며 특히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계자로서 현존하는 국제 건축계의 손꼽히는 스타 건축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가 작년 9월, 서울 종로에서 감동에 젖는 모습이 J 일보에 실렸습니다.
“15년 만에 보아도 감동은 여전하군.”
“똑같이 생긴 정교한 공간이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이 민주적이고 권위적이지 않고 무한의 우주가 느껴진다.”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건물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당시 만든 사람들의 감성과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정말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직접 와서 느껴보라” 라면서,
“종묘 정전은 세계 최고의 건물이다” 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종묘정전(宗廟正殿).
한옥 형태의 종묘정전은 가로의 총길이가 101미터에 달하고 좌우의 협실과 월랑을 제하고 19칸의 임금님 신위를 모신 신실의 길이만 해도 70미터에 달하는 동양의 목조건물 중 가장 길이가 긴 건물입니다.
기둥 20개의 간격이 일정하고 19칸 건물의 지붕을 덮은 수키와, 암키와들이 만드는 세로의 검은 골이 끝없는 듯 이어지고 지붕 꼭대기의 회칠을 한 흰 용마루 선은 긴 수평선을 그리며 그 앞으로 펼쳐진 넓은 2단의 월대는 한없는 침묵과 정적감을 자아냅니다.
큼직큼직한 박석(薄石)들로 덮인 월대(月臺)가 광대하게 펼쳐지면서 정전의 공간은 장대하면서도 엄숙하기도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용마루의 양 끝은 살짝 치켜 올려져 있어 그냥 긴 수평선이면 양 끝이 처져 보이는 착시 현상까지를 감안한 옛 어른들의 지혜가 보이고, 서까래가 흔한 겹 서까래가 아니고 홑 서까래라는 것은 신위를 모시는 곳의 절제와 소박함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한 변이 약 45센치 정도의 큼직큼직한 박석들이 인위적으로 각을 맞추지 않은 채 불규칙하지만 자연스럽게 깔려 있는 아래쪽의 하월대는 동서가 109미터, 남북이 69미터로서 단일 월대로는 국내 최대 크기이며 비라도 올라치면 박석 사이의 골로 물이 순식간에 빠르게 빠져나가는 배수의 탁월함도 보여줍니다.

상,하월대에는 정면 세 군데에 돌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가운데 계단은 월대 중앙에 남북으로 난 신로(神路)와 통하는 것으로 신(혼백,魂魄)이 아닌 사람은 오르내릴 수 없습니다. 종묘는 돌아가신 임금님들의 위패를 모시는 신전이므로 격으로 치면 천상(天上)이라는 생각에 돌 층계 소맷돌 아래에 구름을 새겨놓았습니다.

종묘의 건축 구성은 단순, 질박하여 19개의 신실이 옆으로 길게 연속되고 신실 한 칸에는 신위를 모신 감실, 그 앞에 제사를 지낼 공간, 그리고 장식이 없는 두터운 판문 두 짝, 판문 위로는 발이 걷어 올려져 있고, 그리고 판문 밖으로 툇간 1칸이 있습니다.
판문 두 짝은 닫아도 틈이 일부러 벌어지도록 하여 내부의 자연적인 환기를 도모하며 또한 혼백의 출입도 가능토록 하였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1392년 도성을 한양으로 옮기고 나서 제일 먼저 지은 것이 종묘와 사직입니다. 종묘는 1395년 9월 7칸으로 준공되어 태조의 웃대 어른들과 각 부인들의 신위가 봉안되었습니다.

4대 임금 세종은 다 차버린 정전 옆에 영녕전(永寧殿)을 새로이 건립하고 이태조의 신위는 정전에 그대로 모셔둔 채 이태조 웃대 어른 4대조의 신위를 옮깁니다.
그후 1546년(13대 명조 1년) 100 여년만에 4칸을 옆으로 늘려 11칸 규모가 됩니다.
1592년(14대 선조 25년) 종묘는 임진왜란 중에 불타 버립니다.
1608년(15대 광해군1년) 세워진 지 200 여년 만에 종묘 정전은 11칸으로 재건됩니다.
1726년(21대 영조 2년 ) 다시 100 여년 만에 4칸이 옆으로 증축되어 15칸이 되며
1836년(24대 헌종 2년 ) 또 다시 100 여년만에 4칸을 옆으로 더 증축하여 19칸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종묘정전에는 600년을 지나며 세 시기의 건축물이 공존하게 됩니다.

정전 19칸에는 공덕이 있는 역대 왕들과 왕후들의 49신위가 모셔져 있으며 나머지 왕과 왕비들의 34신위는 영녕전 16칸에 모셔져 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셔져 있지 않습니다.

정전 앞 넓은 월대에서는 종묘제례(宗廟祭禮)가 1년에 다섯 번 임금이 직접 참석하여 거행되었습니다. 종묘제례에 연주되었던 종묘제례악은 왕조 창업의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음률의 장엄함이 돋보입니다.
유네스코(UNESCO)는 1995년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였고, 2001년에는 종묘제례악을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였습니다.
중단되었던 종묘제례는 1971년부터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도맡아 정성스레 치르고 있습니다.

종묘와 함께 으뜸으로 여겨진 시설이 사직단(社稷壇)입니다.
社는 땅의 신, 稷은 곡식의 신을 가리키며 두 신께 제사드리는 곳이 사직단입니다. 땅과 곡식은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이며 국가성립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종사(宗社) 곧 종묘와 사직은 왕조시대에는 국가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도성을 한양으로 옮기고 나서 제일 먼저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좌에 종묘를 우에 사직단을 세운 것입니다.

장주익
제물포고, 고려대를 나와 직장 (애경,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금강개발, 뉴코아백화점 등)에서 근무. 정년퇴임 후 젊어서부터 관심 있던 건축분야에서 건축물의 이해를 돕는 해설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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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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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천천히 깨우치며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아직도 종묘 답사를 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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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6 14: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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