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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함의 승리
정극원 2013년 03월 12일 (화) 02:31:05
봄의 기지개처럼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도 활짝 펼칠 시각입니다. 깊은 산 계곡에는 아직도 얼음이 쨍쨍하지만 곧 따사로운 봄 햇살이 당도하면 그 얼음도 맥을 못 추고 녹을 것입니다. 개학 첫날 드넓은 교정이 신입생들의 활기로 가득 찼습니다. 새 출발을 앞둔 신입생들에게 저는 그들의 선배가 겪었던 다음 세 토막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05년 제1학기에 학생들과 엠티를 갔습니다. 콘도의 넓은 방에서 신문지를 깔고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튀어서 더 많은 신문지가 필요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각에 3학년 선배가 1학년 신입생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밖에 나가서 신문지 좀 더 가지고 와라!”
밖으로 나간 그 신입생은 새벽 2시가 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찾으러 나갔더니 그 신입생은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니?”
그 신입생이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신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날 아침에 온 신문은 이미 구문(舊聞)이니 새벽에 올 신문(新聞)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광경을 본 저는 참으로 뿌듯하였습니다. 그 신입생의 우직함 때문이었습니다. 소걸음처럼 앞으로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직함을 본 것입니다. 그 녀석은 졸업하자 곧바로 경찰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우직함의 승리였습니다.

1997년에는 법대에서 92학번을 가르쳤습니다. 키가 164센티미터인 제자가 있었습니다.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인 녀석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경찰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키 제한이 있었는데, 그 한계가 167센티미터였습니다. 경찰 시험의 제1차가 신체검사였는데 녀석은 키 때문에 매번 1차 관문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내일이면 신체검사인데 그 전날 녀석은 시멘트 바닥에서 밤새 물구나무서기를 하였습니다. 다음 날 신체검사에서 기적 같이 키 167센티미터가 되었습니다. 간절한 바람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머리에 혹이 생겨 키가 3센티가 더 커진 것입니다.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녀석은 필기시험에 단번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 중에서 제일 키가 작은 경찰이 되었습니다. 그런 강한 집념이었으니 무엇인들 이루지 못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키를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일이어서 2005년부터는 이 규정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법대 1회 동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군을 제대하고 입학하였으니 1학년 때부터 고시공부를 매몰차게 시작하였습니다. 4학년이 될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아쉽게도 1차에 떨어지곤 하였습니다. 4학년 2학기에 토지공사로부터 학교에 추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는 3배수 추천이었습니다. 친구가 원서를 내고 남은 시험 준비 기간은 1주일밖에 없었습니다.

시험과목은 영어 상식 법학원론 행정학원론 네 가지였습니다. 앞의 세 과목은 문제가 없는데, 행정학 과목은 처음으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1주일 내내 행정학 과목만 파고들었습니다. 시험 하루 전날 밤 곤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천우신조가 일어났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행정학원론 문제 25개가 생생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시험 당일의 행정학 시험문제였습니다. 친구는 당당히 합격하여 지금껏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법대 학장을 할 때에 그 친구를 불러다 후배들을 위한 특강을 시켰습니다. 우직하였으니, 강한 집념이 있었으니 기적도 우연처럼 다가온 것입니다. 후배들에게, 제자들에게 그런 우직함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갓 입학한 신입생은 우리들의 후배이자 제자로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높은 창공에 꿈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도록 가르침에 정성을 다하려 합니다.

정극원
영천고졸업(78년), 대구대 법대 졸업.독일 콘스탄츠대 법학박사.
대구대 법대 학장(전), 법제처 국민법제관(현),
유럽헌법학회 회장(현), 대구대 법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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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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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110.XXX.XXX.140)
동감입니다. 의장대에서는 필요하겠지요.
평생을 160cm 근처를 헤메다 떠날 준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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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3 10: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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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키가 뭐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말에 키크면 싱겁다고 하던데
정말 키가 크니까 싱거운 사람도 많이 만난 경험이 있는데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키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됨과 성실 총명함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답변달기
2013-03-13 05:03:3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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