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의 여왕 김연아가 돌아왔습니다. 지난 일요일 캐나다 런던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막을 내린 2013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아는 쇼트프로그램(69.97점)과 프리스케이팅(148.34점) 합계 218.31점의 높은 점수로 세계 정상에 복귀했습니다. 197.89점으로 2위를 차지한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 196.47점으로 3위에 오른 아사다 마오(일본)와는 격이 다른 연기였습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보인 '뱀파이어의 키스'도 훌륭했지만 프리스케이팅의 ‘레 미제라블’은 마치 한 편의 무용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과연 연아가 정상의 기량을 되찾을 수 있을까.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우승 이후 그는 한동안 정규 대회보다는 쇼 무대에 더 몰입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해 7월에야 다시 세계대회 출전 의지를 밝히고 새 출발을 선언했지만 솔직히 흘려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로 인한 불안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아는 변함없이 우아한 자태, 더욱 농익은 연기, 흔들림 없이 안정된 기술로 최고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사실 연아의 최대 강점은 표면적인 연기력보다는 내면의 의지력과 자신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밴쿠버에서 눈물로 재도전을 다짐했던 라이벌 아사다 마오, 긴 공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심판들 앞에서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해내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현장을 지켜본 외신기자들은 오히려 밴쿠버 올림픽 연기보다 더 좋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제대로 경기력을 평가받았더라면 올림픽 때의 228.56점에 못지않은 점수를 얻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의 빙상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스타가 탄생하다니. 놀랍게도 우리는 지금 우리 땅에서 배출한 사상 최고 수준의 피겨 스타의 연기를 즐기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중입니다. 서구 선수들조차 따를 수 없는 늘씬한 키와 연극배우 뺨치는 표현력, 마치 한 마리 홍학이 춤추듯 우아하면서도 탄력적인 스케이팅. 적어도 은반 위의 예술 피겨 경기에 관한 한 우리는 예전에 상상키도 어려웠던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연아는 올림픽 2연속 우승의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꼭 1년 앞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연아의 경쟁 상대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연아 자신이 경기력을 효율적으로 유지, 관리하는 일이 남았을 뿐입니다.

선수 수명이 짧은 이 종목의 올림픽 2연속 우승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1930년대 노르웨이의 소냐 헤니(1928년 산모리츠,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와 1980년대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1984년 사라예보, 1988년 캘거리), 둘만이 그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연아라면 결코 못 이룰 꿈이 아니라는 확신이 듭니다.

연아의 화려한 복귀 덕분에 우리나라는 소치 올림픽에 3명의 선수를 출전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연아 이후의 시대에 대비하는 일입니다. 심판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되는 이 스포츠에서 무명의 선수 한 명이 심판의 주목을 받고 올바른 평가를 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안다면 김연아와 같은 대 스타가 현역으로 뛰고 있는 동안 그의 뒤를 이을 후진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