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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늙는구나(5) - 잠 잘 자는 착한 아기
임철순 2007년 07월 23일 (월) 09:49:51
h  인간이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와 처음 듣는 노래는 그 성격이 동일한 것 같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노래가 내세의 안식과 평화를 기구한다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위한 노래는 이승의 안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떤 아기는 태어나고 어떤 노인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어떤 마을, 어떤 집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가 자장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자장가 중에서 어떤 것이 아기를 재우는 데 가장 좋고 빠를까. 우스운 질문이지만 더 단순하고 더 단조로울수록 좋을 것입니다. 단조로운 것은 인간을 잠들게 합니다. 자장가는 의도적으로 평범하고 단순한 반복을 지향하는 노래입니다. 서양 자장가는 천천히 요람을 흔들며 아기를 달래는 요람의 노래와 아루루, 라라라, 나니나니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잠재우는 노래(영어의 lullaby, 이탈리아어의 ninna-nanna, 스페인어의 arrullo)로 나뉜다고 합니다. 이 되풀이되는 동일한 음절구가 아기를 잠의 세계로 이끈다고 합니다.

 자장가를 비교 평가하면, 아는 노래가 많지 않기도 하지만, 슈베르트의 자장가가 나는 제일 좋습니다. 그것도 엘리 아멜링의 노래로 들어야 좋습니다. 그녀의 투명한 목소리, 절제된 속도와 곡 해석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1933년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독신으로 40여년간 활동하다가 1995년에 고별연주회를 한 그녀는 독일가곡과 종교음악으로 특히 사랑을 받는 소프라노입니다.


   
  엘리 아멜링(1933~)   
엘리 아멜링, 그 이름을 입안에서 되뇌어 보면 청랑하고 삽상합니다. 그리고 왠지 좀 쓸쓸한 기분도 듭니다. 이름에 들어 있는 모음의 반복과 조화의 덕분일 것입니다. 혀가 입천장과 이에 닿는 감촉도 좋습니다.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자장가 특유의 리듬의 반복, 그 되풀이가 그녀의 이름에도 잘 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브람스의 자장가를 들으면, 손으로는 아기를 토닥이고 있지만 엄마의 눈길은 담 너머 어딘가로 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대로 그런 인상이 듭니다. 브람스는 너무 수줍어 좋아하는 여인에게 말도 못 붙였다는데, 다른 남자와 결혼한 그녀가 아기를 안고 찾아왔답니다. 그 때 부탁을 받고 작곡한 자장가라는 속설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더욱이 브람스가 쓴 것은 아니지만 독일어 가사의 1절에는 신이 원하면 아침 일찍 다시 깰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깨는 걸 강조하는 것인지 아침 일찍을 강조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잠드는 아기에게 왜 깨어나는 이야기를 할까, 자장가에 왜 이런 말을 넣었을까 싶습니다. 

 모차르트의 자장가는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는 말도 있답니다. 그의 노래는 “이제 그만 자라, 응? 네가 자야 모두가 편해지잖아” 이렇게 어르고 달래는 인상입니다. 아기를 토닥여 주지도 않으면서 선 채로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가 쓴 가사는 아니지만 2절에 ‘성 안의 모든 이가 잠들고 쥐들도 잠잠하고 지하실과 부엌도 조용하다’고 하더니 ‘하녀방에서만 탄식이 들려오네, 이게 무슨 탄식인가’ 하는 말이 나옵니다. 자장가에 왜 이런 말을 넣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장가는 ‘우우리 아기 착한 아아기 소록소록 잠들라’로 시작되는 김대현의 작품인데, 목을 뽑아 올리는 첫 소절부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기가 잠이 드는 게 아니라 노래를 듣고 오히려 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런 노래들에 비하면 슈베르트는 참 맑고 정성스럽고 정겹습니다. 요람을 가볍게 흔드는 엄마의 손길, 아기를 사랑스럽게 들여다보는 엄마의 눈길이 잘 느껴집니다. 3절까지 다 불러도 3분 조금 넘는 짧은 시간에 아기가 가볍고 편안하게 잠이 들 것 같습니다. 작사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슈베르트는 아마도 자장가를 통해서 그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잠재우려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것도 제 멋대로 내 생각입니다.
 슈베르트는 슬픔의 작곡가였습니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이해와 슬픔의 표현이다.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던 그의 작품은 대부분 하나의 울음덩어리와 같습니다. 단순한 듯한 선율 속에 해소되지 않는 슈베르트의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작고한 시인 박재삼은 “시인은 가슴 속에 거대한 울음덩어리를 간직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슈베르트는 가곡의 시인이었습니다. 이런 문법으로 그의 자장가를 들으면 더 애틋합니다.

 자장가는 아니지만 아기의 잠에 관한 동시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939년에 지은 윤석중의 동요 「먼 길」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징용 통지를 받고 보따리를 싸 놓은 채 아기를 들여다 보며 지은 작품입니다.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아기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이게 그 동시의 전문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대체 무엇인가요?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어머니가 혼자 앉아 꿰매는 바지/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네’. 자장가는 아니고 누가 지은 시인지,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걸 노래로 부를 수 있습니다. 「먼 길」을 그 곡조에 맞춰 불러 봅니다.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꼭 「먼 길」의 그 다음 장면 같습니다. 아빠가 떠나간 뒤 엄마는 어렵사리 아기를 재우고 시름에 겨워 밤새 옷을 꿰매고 있다…. 내 멋대로 생각한 이야기입니다. 누가 이 시의 유래와 지은이를 좀 알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답답할 정도로 궁금합니다.

 이 세상 어느 민족, 어느 부모, 어느 어머니가 착한 아기를 노래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자장가에는 아기가 착하고 건강하기를, 나라와 민족,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자장가는 인류가 절멸하지 않는 한, 인간이 노래할 수 있는 한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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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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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220.XXX.XXX.219)
玄玄한 세계를 쫒고자하는 이성과 감성이 아닌 다른 미지의 性의 太原이 슬픔과 숙연함으로 감슴에 차오르는 것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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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4 10: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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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 (211.XXX.XXX.211)
노래의 유래는 잘 모르지만...
누이 세대분들이 이 노래로 고무줄 놀이 하던 게 눈에 선합니다.
2절은 아마도 이런 가사였던 것 같습니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니가 사다주신 과자한봉지/
먹어봐도 먹어봐도 배는 안불러...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부르니, 강냉이 튀밥 같은 과자였을까요.
답변달기
2007-07-23 13:04:1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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