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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의 편지
안진의 2013년 05월 10일 (금) 00:29:05
올해 어버이날에도 어김없이 카네이션을 접고 오려 붙여 만든 딸아이의 감사 편지가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매해 반복되는 어버이날 감사 편지를 보니 공통점이 나오는데, 그냥 웃어넘겨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먼저 아이가 7살 때 보낸 카드에는 “엄마 아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돈도 많이 벌어주세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볼 때 마다 웃음을 빵 터트리는데, 이 돈 얘기가 해마다 거르지 않고 나오니 이젠 조금 씁쓸한 마음도 드는 것입니다.

   
8살 때 아이의 카드 내용은 “최고의 화가 안진의에게, 엄마 돌고래 풍선 사주신 것 감사해요. 돈 많이 주신 것하고 선물 주신 것 감사해요. 그리고 카네이션 첨부했으니 오래오래 사세요.”입니다. 돈을 선물이라고 준 것 같진 않은데, 아마도 세배 돈 받았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카드에는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엄마 아빠 돈 버느라 힘드시죠? 은행에 가면 돈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선물 사주신 것 감사해요.”입니다. 웃음이 나오는데 역시 돈 얘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5학년이 되어, 올해 보낸 편지에서는 돈 얘기를 보다 상세하게 합니다.

“오늘이 어버이날이지?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나는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학원비 40만원, 옷 사는 데 10만원, 날 위해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 모습이 고맙고, 가슴이 뭉클한 것 같아. 또한 이런 엄마에게 나는 너무 미안해. 왜냐하면 날 위해 아낌없이 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생각 들거든.” 아이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에도 아빠가 사준 옷의 가격까지 적어놓고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합니다.

아이가 보내 준 어버이날 편지들을 모아놓고 보니, 아이도 부모님 은혜에 대한 감사 표시의 의무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돈이라는 개념에 귀결되어가는 건 아닌지, 씁쓸한 마음도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버이날이 아닌 다른 날에 보내주는 편지는 좀 다릅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힘내! 엄마 곁엔 내가 있어. 그리고 TV채널 돌린 거 미안해. 그리고 어디가 아프면 소아과,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를 가야 해. 그리고 편히 쉬어. 요리는 아빠가 해 줄 테니까.” 그리고 아이는 덤으로 마사지 메뉴판까지 선물해 줍니다. 요술봉 마사지, 스포츠 마사지, 골프 마사지, 때리기 마사지, 주물럭주물럭 마사지까지, 색종이에 크레파스로 써놓은 글씨만 봐도 즐거워집니다.

어느 해에는 어린이날에 어린이대공원에서 동물도 보고 도시락도 먹고 풍선도 샀고, 즐거운 소풍이었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지개가 보고 싶다는, 문장 끝에 생뚱맞은 글귀를 남겨 미소 짓게 해줍니다. 사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이렇게 아이가 커가면서 일상에서 갖게 되는 소소한 느낌이며, 무지개를 기다리듯 행복한 꿈이 있는 삶입니다.

물론 이번 어버이날 편지에 돈 이야기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빠가 자신을 공주처럼 대하고 사랑해주는데, 정작 본인은 아빠에게 막 소리 지르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이래서 아빠가 늙으면 사랑해주고 보호해 줄 수 있을지 의심이 된다고, 좀 더 사랑해주고 싶은데 어째서인지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티를 안 내서 늘 미안하다고.

C컵 가슴을 갖고 싶다고 해 식겁하게 하고, 음식점에서 고기를 먹으면서도 그냥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고 펑펑 우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 어른이 되어 가는 교차점에서, 본인도 낯선 감정의 조율이 쉽지 않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미안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는 아이의 마음을 저는 십분 이해합니다. 어버이날엔 서로를 위하는 그런 마음만 담았음 싶습니다.

엄마를 닮은 종이인형도 만들어왔는데, 그 정성으로 기쁨은 차고 넘칩니다. 아이의 편지 속에서 돈 얘기는 그만 들을 수 있도록, 행여 제가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돈에 대해 구부정한 자세를 보이진 않았는지 성찰해야겠습니다. 시끄럽지 않은 평화로운 일상과 격하지 않은 편안한 정을 확인할 수 있는 어버이날 편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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