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창_(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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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꺼진 창

오마리

2013년 05월 17일 (금) 00:48:07


	매리언의 뒷 뜨락

어김없이 찾아온 봄, 그녀의 집 뜨락에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나더니 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뒤뜰에 피어난 노랑 빨강 오렌지 튤립들은 여전히 이 아름답고 천국 같은 캐나다의 화사한 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옆집 할머니, 북국의 길고도 외로운 겨울을 잘 견디는 것처럼 보였던 매리언은 어머니날을 일주일 앞둔 봄의 초입에서 영원히 세상과 작별하였습니다. 이제 매리언은 집 창밖으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캐나다의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낙원에서 다른 생을 시작하고 있을지. 주인을 잃은 화단의 꽃이나 나무들은 더없이 싱그럽기만 합니다.

나는 더 이상 밤마다 그녀의 방이 어둠에 잠겨 있는지 확인을 하거나 그녀의 집 뒤뜰에 다가가 기척을 살피는 일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주말이면 음식을 챙겨 나르던 일도 그만두어야 합니다. 다음 주 이탈리언 식당에 모시고 가겠다던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어졌고 피아노 반주를 할 테니 함께 부르자던 찬송도 다음 세상에서나 만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 아침 뒤뜰에서 잔디에 물을 주고 있던 내게 한 이웃이 언덕을 내려가다 다가와 일요일 아침 매리언네 집에 경찰이 왔노라며 무슨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전혀 깜깜했습니다. 내 집과 이웃 할머니 매리언네 집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사실 나는 월요일까지도 경찰이 일요일 아침 매리언네 집에 온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녀와 나는 열흘 전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즐겼으며 그 삼일 후 일요일 저녁에 돈가스를 만들어 가져다 드렸을 때도 즐거워하셨고 지난 수요일 목요일에 그녀가 뒤뜰에서 사람과 담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종일 그녀가 보이질 않고 집이 어두워 어쩌면 딸네 집에 가셨나 했던 것입니다.

고령의 노인이었지만 키도 훌쩍 큰 사람이 아주 강건해 보이는 체질로 아직까지 운전을 하는 등, 언어와 행동에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난 번 식당에서 대화 중 자신의 건강에 별 문제점이 없다, 단 요사이 심장 박동이 느려졌다고만 해서 별다른 우려는 하지 않았는데 나는 엄청난 쇼크를 받은 것입니다. 그녀가 이 세상과 영원히 작별을 한 토요일 새벽 1시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도 그녀의 죽음을 몰랐으며 나는 그 토요일 종일 정원 일을 하면서도 그녀의 집을 자주 바라보기만 했었지 침대에 숨진 채 홀로 남겨진 그녀를 일요일 아침까지 내버려 두었던 것입니다.

일요일 오전 경찰이 왔을 때도 나는 정원 일을 하면서 매리언의 사망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그녀의 죽음을 지척에 두고도 토요일 내내 모르고 내 할 일만 했던 것, 일요일까지도 그녀의 인기척이 없어 아직도 너무 건강해 보이던 그녀가 자녀들의 집에 갔거나 교회를 갔으리라 생각했던 것, 세상을 떠난 그녀를 바로 옆에 두고도 그 죽음을 모르고 내 일만 했다는 것이 인간사의 비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금년 6월 2일 만 90세, 젊음을 모두 타국에서 선교하는 데 바친 사람입니다.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내고 고등교육을 캐나다로 돌아와 받은 후 선교사인 남편을 만나 일본에서 30여 년을 선교에 바쳤습니다. 또한 네 명의 자녀를 잘 키워낸 어머니이며 모국 캐나다로 돌아온 지 19년쯤 된 시점에 이곳 토튼햄에서 영면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모국에서 살았던 시간은 그녀의 90년 삶 중 겨우 25년도 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고독과 싸우던 일 년 반이란 시간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한 심한 회의가 생겼습니다. 그녀가 90 평생 사람들에게 바친 젊음과 사랑, 신앙에 대한 답은 씁쓸한 것이었으니까요. 한 달에 두 번 찾아오는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사는 딸, 일 년에 두 번 찾아오는 5시간 거리의 딸, 일 년에 한두 번이나 찾아오는 2시간 반 거리에 사는 아들, 그나마 지인들의 방문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그들의 삶도 팍팍하기 때문이란 것은 압니다. 매리언의 딸 조이가 어머니의 사망을 알리러 내 집에 왔던 월요일 아침, 눈물을 흘리는 내게 “딸들인 우리보다 당신이 더 나아요. 고마워요. 매리언도 하늘에서 감사할 거예요." 라고 한 표현은 정말 우리말에 ‘이웃사촌’이란 언어를 실감나게 했습니다.

작년 8월 말 한국방문길에 나서야 하는 날더러 언제쯤 돌아올 것이냐고 묻던 매리언, 3개월 후라고 했더니 얼마나 쓸쓸한 표정을 하던지, 특히나 춥고 음울한 캐나다의 겨울 그 3개월 동안 그녀가 얼마나 외로워했을까, 연말에 돌아온 나에게 보이던 그녀의 기뻐하던 표정을 어찌 잊겠습니까? 그런데도 돌아오자마자 건강이 나빠져 보행이 불편했던 나는 거의 이 봄이 오도록 간신히 그녀에게 식사를 가져다 드리기만 했을 뿐 그녀와 자주 담소할 경황이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식사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 귀찮지 않으냐고 묻던 사람도 있었지만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인 것이 무어 대수였겠습니까? 이제는 더 많이 못해드린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 단지로 이사온 지 3년이 되었지만 작년까지는 집안일과 정원일로 너무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턴 시간적 여유도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잘해드려야겠다, 식당에도 자주 모시고, 내 정원의 패티오에도 자주 초대해 이 봄과 여름을 함께 만끽하리라, 그래도 한두 해는 더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다 가시리라던 내 기대는 물거품이 돼버린 것입니다.


	매리언이 내집 정원을 바라보던 창가, 이젠 불 꺼진 창.

그녀가 떠난 후 불 꺼진 창을 빤히 알면서도 그녀의 집 창문을 바라보는 버릇은 여전합니다. 집 밖으로만 나가면 머리는 자꾸 그 집을 향하여 어김없이 돌아갑니다. 나는 물끄러미 그녀의 창을 바라다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그녀처럼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생을 깨끗하게 마감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홀로 조용히 떠나간 그녀와 같은 죽음은 복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웰 다잉(well dying)입니다. 떠나신 날까지 심신이 치매 없이 건강했고 중병이 없어 병원에서 지냈던 적도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자식들과 주위 사람들을 조금도 귀찮게 하지 않으셨으니 웰 다잉이지요.

그녀처럼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특히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는 어버이로서의 세상을 마감하는 것은 누구나의 바람이겠지요. 건강이 항상 좋지 않은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있는 친구처럼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한 세상 왔다가 떠나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한 신의 섭리이지 않습니까?

단지 내게 가장 큰 걱정이 있다면 불편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다가, 그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내 자신에게도 짐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월의 둘째 주 일요일, 캐나다의 어머니날인 오늘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자식들 지인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어머니로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비록 마지막엔 외로웠던 매리언일지라도 그녀의 고통 없고 평화로웠던 최후처럼 나도 어느 날 나의 세상 끝에서 그렇기를 소망합니다.

테리 (64.XXX.XXX.133)

선생님
지난겨울 캐나다는 정말 춥고 지루한 겨울 이었습니다...
어느날 차고문을 열었으때의 그 풍경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무릅가까이 쌓인눈 ....
아름답다기보단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앞집 할머니는 분명히 이곳 보다 훨씬 더 좋은 하나님 나라에서 선생님께서 주신 사랑에 대해 얘기하시고 계실겁니다 ...
그곳은 추위도 더위도 외로움도 미움도 시기도 없는 곳일 겁니다.
이제는 눈물을 거두세요!!!!!
또다른 사랑으로 채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