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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빠진 '을'의 나라
신아연 2013년 05월 21일 (화) 02:18:39
요즘 한국은 난데없이 ‘갑을 관계’ 공방이 한창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더니 갑의 횡포에 숨소리도 못 내고 살아온 을이 생존의 올가미에 걸려 쌓이고 쌓였던 분노를 걷잡을 수 없이 토해내고 있습니다.

분야에 따라서는 그냥 갑도 아닌 ‘슈퍼 갑’이 존재한다니, 그로 인해 자살까지 하게 된다니 한국 사회가 그 정도까지 정도(正道)를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정도를 지나 기괴스럽기조차 합니다.

3년 전, 제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칼럼에 ‘갑도 을도 아닌 것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말장난을 한 것 같아 실제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그때 “군림하고 군림당하는, 지배하고 복종하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히 구분되는 현실 구조 속에서도 한 가지 공평한 것은 갑도 을도 삶이 혼돈스럽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란 점입니다. 경쟁과 욕망으로 점철된 현실의 삶에만 코 박고 있는 한, 한순간도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둘은 공평하게 불행하며, 기쁨은 찰나적일 뿐, 허다한 시간이 공허와 허무로 메워지는 것도 똑같습니다. 반짝 의욕이 생기는듯 하다가 이내 좌절의 나락에서 뒹구는 느낌도 갑과 을에 구분 없이 찾아드는 쓰라린 감정일 것입니다.”라는 그럴듯한 말을 했는데, 인정사정없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갑에게 가없는 생계의 위협과 인격적 모독을 당하는 을의 처지에선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 거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못된 시어미 밑에서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나중에 더욱 못된 시어미가 된다고 하듯이, 갑과 을의 양상이 바뀐다거나 어제까지는 을이었다가 오늘 갑이 된다면 그간 당한 못된 짓을 그대로 되돌려 주지 말란 법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쩌면 더 가혹하고 더 잔인하게 상대의 목을 죌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엔 한국 사회의 근원적이며 노골적인 ‘갑을 관계’는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파생한 ‘사람과 물질의 기형적 관계’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번에 5년 만에 대면한 한국은 물질이 ‘갑’이고 사람이 ‘을’인 괴물 같은 세상이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일례로 이번 한국 방문 중에 ‘착한 가격’ ‘착한 점심’ ‘착한 고기’ 따위로 사물을 인격화하고, 물건을 칭할 때 “얘는 얼마고” “쟤는 어떻고” 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습니다. 반대로 연예인 등 선망의 대상이던 사람이 결혼을 하면 ‘품절남’, ‘품절녀’라는 말로 사람을 더이상 거래되지 않는 상품 취급하는 것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파괴적이고 혼란스런 언어 개념이 한둘이 아닐진대 초콜릿도 ‘사랑하고’ 핸드폰도 ‘사랑하고 ’ 개도 ‘사랑하면서’ 동시에 아내나 남편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 가장 하찮은 ‘을’이기에 가능합니다.

무심결에 듣기엔 재치있고 삼박한 표현 같지만 사람에게 붙여야 할 인격성을 물질과 상품에 내줘버린 후 물질이 사람 대접받는 세상, 상품이 ‘갑’이 된 세상의 은유일 뿐입니다. 재미삼아 비트는 언어, 과장된 표현과 유머에는 그 시대, 그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법이니까요.

그런가 하면 이른바 해외 유명 브랜드 명품 가방과 ‘짝퉁’을 섞어놓고 진품을 찾아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고급스런 원단이나 바느질의 꼼꼼함, 끝마무리, 부착 장식품의 견고성 등에서 진품 식별이 가능할 것이라는 상식을 깨고, 어깨에 메는 순간, 손에 드는 순간 ‘죽죽’ 올라가는 자존감, 자신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명품이라는 증거라는 말에 아연실색했습니다.
아무리 오락 프로그램이라지만 기가 막혔습니다. 가방 따위가 사람의 인격과 인간적 품위를 결정한다니 그게 곧 ‘갑’이라는 게지요. 그 밖에 철 따라 옷 바꿔 입는 것보다 더 가벼이 행해지는 가공할 성형수술 등 인격을 물화(物化)하며 인간을 간단없이 ‘을’로 전락시키는 상황이 도처에 만연해 있다는 것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질을 인격화하고 사람보다 돈을 앞세우는 한 한국 사회의 기형적 갑을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이기에, 앞서 언급한 제 ‘갑을칼럼’에 달린 한 독자의, 요원하지만 따스한 댓글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결국 '그대 있음에 내가 있다'는 말이겠지요.

“갑을의 계급적 관점은 삭막하고 어둡지만 대립이 아닌 낮과 밤, 여자와 남자, 저자와 독자, 교사와 제자, 실과 바늘 같은 동반자적 관계라면 따스한 동행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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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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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武 (115.XXX.XXX.213)
아래 대목은 전체적인 좋은 글 중에 무녀리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갑을 옹호하는, 면죄부를 주는 모양세가 되버려서.....,


(“그러나 못된 시어미 밑에서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나중에 더욱 못된 시어미가 된다고 하듯이, 갑과 을의 양상이 바뀐다거나 어제까지는 을이었다가 오늘 갑이 된다면 그간 당한 못된 짓을 그대로 되돌려 주지 말란 법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쩌면 더 가혹하고 더 잔인하게 상대의 목을 죌지도 모릅니다.”)



갑과 을이 바뀌기도 요원하지만...
그렇게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전개 하셨습니다.
흉보면서 배운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옛날보다 더 험 한
시어미가 존재한다는 소리는 별로 듣기 어렵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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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 13: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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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갑술 (60.XXX.XXX.96)
신아연 선생 님.

안녕하십니까?

해외에서 한국사회의 갑.을 관계를 날카롭게보셨네요.

돈이 최고의 가치로만 여겨진 사회현상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더 좋은글 많이쓰시기 바랍니다.

박갑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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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3 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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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39.XXX.XXX.180)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가끔 이렇게 우리를 돌아보고 산다면 끝간데 모르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참담함을 면할 수 있겠지요.

동네 길건너 똑 같은 빵집이 또 있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 했었지요.
소위 말하는 갑은 그렇게 다닥 다닥 자사 빵집을 늘어놓고 매출이 기대많큼 늘거라고 생각하는지...

어쩔 수 없이 소규모 자영업에 뛰어든 영세한 가맹점주를 조금이나마 배려해야 비로소 본사의 매출증대도 기대 할수 있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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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3 10: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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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괜한 입바른 소리일 뿐입니다... 세상은 한치 앞을 모르게 변하고, 그 핵에는 자본가들의 무한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지요... 일찌기 ' 보이지 않는 손'을 믿었던 그 순진함이 철없음으로 다가올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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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4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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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60.XXX.XXX.96)
물건을 사려고 점포에 들어가면 특히 백화점의 판매원들은 입에 익어서 하는 말인지 옷이나 상품이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착각을 하는지 ‘얘는 얼마고, 쟤는 얼마’라고 하여 아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오늘 신아연님이 조목조목 지적하여 말해주니 속이 후련합니다.


갑과 을에 대한 말은 ‘갑론을박’이라고 할 때 많이들은 말인데 부쩍 신문에 갑과 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을은 갑이 될 수 있지만 갑은 을이 될 수 없다는 대목만 기억 하고 그냥 지나고 있는데 신아연님은 3년 전에 쓴 글을 다시 되새기면서 성숙한 글을 써 주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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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16: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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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근 (112.XXX.XXX.20)
전 제조업을 경영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입니다.
지난 4월 '공짜 글은 안씁니다'라는 글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번 글 또한 잔잔한 감동을 받았읍니다.
원칙과 신뢰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대립보다는 상호 협력과 보완관계가 우선 됩니다.상호 협력과 보완이 없으면 시너지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시너지가 없으면 창발이나 창조가 일어날 수 없읍니다. 퇴보만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가 원칙을 지키고 살고있는지 그리고 상호 신뢰하는 사회에서 살고있는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훌륭한 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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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11: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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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출가외인이라더니... 아무리 교포라도 일단 제 나라 떠나면 그만인가 싶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한국 흉보는 이야기, 별로 안 좋아하시죠...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식당을 하는데, 종업원을 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 없으면 식당 자체가 안 꾸려지니까요... 나는 너 덕에, 너는 나 덕에 먹고 산다, 그러니 서로 고마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갑을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보내주신 의견에 동의하며,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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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1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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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춘 (60.XXX.XXX.96)
국회읜원 관련 제도와 관행 그리고 당자들의 인격과 태도 등 선진화 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이 분들이 개인이면서 기관이라하는 두가지 기능인지 성격인지 하는 것을 혼용하거나, 집단적인 권력지향 형임을 스스로 인식 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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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10: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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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230)
가장 잘 달릴 수 있는 조건은 내딛는 발의 힘만큼 뒤에 남은 발이 같은 힘으로 버텨주는 것입니다!
이럴 때 앞 발과 뒷 발은 적대적 모순관계가 아니라 비적대적 모순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가려는 힘과 나가지 않으려는 힘이 상대방을 인정할 때는 잘 달릴 수 있지만 제압해버리면 그 땐 필시 앞으로나 뒤로 넘어지고 맙니다!
사회의 도처에는 모순(갑을 관계)이 있고 이 모순 때문에 사회는 발전합니다.문제는 비적대적모순 관계인데 적대적모순 관계로 오인하는데서 불행의 씨앗이 싹트는 것입니다.
적과 아군은 적대적모순 관계이기에 반드시 제압을 해야 하지만 본사와 지사는 비적대적모순 관계이기에 제압의 대상이 아니라 달리는 사람의 앞 발과 뒷 발의 관계처럼 상호 존중하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본사는 지사에게 과잉 공급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지사의 판매조건을 양호하게 해줘야 합니다.그것은 품질의 향상일 수도 있고 가격의 인하일 수도 있고 홍보의 강화일 수도 있습니다.
본사인 갑이 지사인 을에게 떠넘기는 강매는 가수가 내쉬기만 하면서 노래를 잘 하려는 경우와 똑 같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내쉴수 있는 숨을 들이마시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머리라는 지위를 악용해 입으로 하여금 내뱉기만 하라고 명령하면 결국은 머리의 혈액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머리도 죽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국사회에 이런 자멸적 관계가 보편화되어 있다면 심각한 거 아닌가요?
자본주의의 모순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도 갈 때까지 간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불행을 예지하고 피할 수 있기 때문 아닌가요? 철학이 없는 인간은 그래서 동물과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적대적모순 관계가 아닙니다!
남한과 북한도 적대적모순 관계가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도 적대적모순 관계가 아닙니다!
본사와 비정규직도, 해군과 강정 주민들도,한수원과 밀양주민들도 적대적모순 관계가 아닙니다!

실과 바늘의 비적대적모순 관계를 마치 제압해야하는 적대적모순 관계로 착각(?)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철학이 없는 자본주의는 그래서 수명이 다했고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사회의 도래가 눈 앞에 용틀임하는 거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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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00: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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