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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 철용이
정극원 2013년 06월 07일 (금) 00:48:26
1972년 2월. 6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으로부터 학교 신축건물 2층에서 난생처음 영어 알파벳을 배웠습니다. 하얀색으로 단장한 그 신축건물이 지금 경북 영천의 시안아트라는 미술관으로 변해 있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면 다른 곳의 중학교로 진학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는 같이 다녔지만 더 가까운 곳의 중학교로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가난이 이유였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마을돌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작별이 섭섭하고 아쉬워 학교에서 가까운 동네 친구들이 아랫동네로 가고, 그렇게 모여서 또 더 먼 동네를 방문하는 그런 풍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신 나기도 한 이유는 그 풍습을 기다리는 설렘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가까운 동네에 친구 철용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것은 막막한 슬픔이었습니다. 더한 슬픔은 고향을 떠나 그 어린 나이에 가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밥벌이를 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철용이는 포항으로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윗동네의 친구와 좀 더 먼 우리 동네의 친구들이 합쳐져서 아랫동네를 찾아갔습니다. 친구 집 사랑방에서 밤을 맞이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주 친구들을 위하여 기꺼이 방을 비워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방에는 할아버지의 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라는 것만으로 참 좋았습니다.

3개 동네 아이들이 모인 이야기로 시끄러웠지만 어른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습니다. 밤새도록 화투놀이를 하였습니다. 나는 일찍 돈을 다 잃고 낙담한 철용이에게 50원을 빌려주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큰돈이었지만 포항에 취직을 하게 되었으니 갚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철용이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는 없었습니다. 철용이는 그 돈조차 다 잃어버렸습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그렇게 밤샘으로 달랬습니다. 그러나 밤샘을 하고서 맞이하는 아침의 텅 빈 마음, 스잔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진학하는 중학교가 달라진 친구들,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는 친구들과의 작별은 곧 다시 만나게 되는 짧은 이별은 아니었습니다. 그 작별로부터 반가운 상봉은 25년의 기나긴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5년이 지난 1997년 초등학교 동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때서야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으면서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같이 "어째, 너 초등학교 때와 같이 하나도 안 변했구나"라는 인사로 재회를 기뻐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갖은 고생을 다한 철용이는 나름의 자기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첫발을 디딘 포항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철용이는 동기회에 잘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소식은 들을 수 있었지만 반가운 만남을 이루지는 못하였습니다. 동기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1999년 모임에서 비로소 철용이와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잠시의 만남 후 또 다시 10년이 흐른 2009년 10월 철용이가 대구대학교 법대 학장실로 나를 방문했습니다. 여전히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때를 놓치고서 배우지 못한 한이 가슴에 쌓인 듯했습니다. 그 한은 겪어보지 못한 자는 감히 말하지 못하는 통한이었습니다. 철용이는 독학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다 통과했습니다. 포항에서 전문대학도 막 졸업하였습니다. 숨어서 혼자서 이루었다는 점에서 가히 입지전적인 노력이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위하여 독서실에서 밤샘 공부도 불사하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익힌 밤샘의 능력이 여지없이 발휘된 것입니다. 그러나 합격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내친김에 대학을 다녀 박사학위까지 받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나를 방문한 이유였습니다. 대구대 법대 편입시험에 응하여 당당히 합격하였습니다. 편입시험 합격에 너무나 감격해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철용이는 학부과정을 무사히 다 마치고서 금년 2월 졸업을 하였습니다. 가슴에 쌓인 한을 다 날리는 쾌거였습니다. 나는 총동창회 회장상을 받을 수 있게 어렵사리 주선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늦은 나이의 그 노력에 당연한 수상이었습니다. 내친김에 박사학위까지 받으려던 꿈은 잠시 미루었지만 당당히 세상에 맞서 스스로 일구어낸 결실이었습니다.

나는 농담 삼아 40여 년 전에 빌려간 50원을 언제 갚을 것이냐고 말합니다.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는 매개체인 셈입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철용이가 초청해 지난(달) 26일 포항에서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친구이자 스승인 나에게 거나한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이기자(이런 기분 좋은 자리)’ 하고 건배사를 외치면서 추억과 우정을 되살렸습니다. 되돌려 받아야 하는 50원은 영원한 미결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였습니다.

정극원
영천고졸업(78년), 대구대 법대 졸업.독일 콘스탄츠대 법학박사.
대구대 법대 학장(전), 법제처 국민법제관(현),
유럽헌법학회 회장(현), 대구대 법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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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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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42)
의지의 철용씨의 쾌거가 참 싱그럽습니다.
어깨동무 친구!. 더욱 나란히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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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3 10:58:25
0 0
libero (58.XXX.XXX.37)
아름다운 이야기. 아름다운 우정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3-06-11 22:15:3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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