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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를 막는 벼릿줄
임철순 2013년 07월 05일 (금) 02:15:06
고기를 잡는 그물은 가로 세로 가는 줄을 촘촘히 얽어 만듭니다. 그러나 가장자리는 굵은 줄로 돼 있고, 굵은 줄을 잡아야만 그물을 던지거나 당길 수 있습니다. 굵은 줄을 잡고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그물 안에 들어오고, 굵은 줄을 당기면 그물이 오므라들어 고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 굵은 줄을 벼릿줄이라고 합니다. 벼릿줄이라는 말에는 그물 코를 꿴 굵은 줄,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대강(大綱)이라고 할 때의 그 강(綱)입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 중에서 삼강의 맨 먼저인 군위신강(君爲臣綱)은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의 없이 어설프게 하는 일을 흔히 대강 대강 한다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대강은 큰 줄거리를 잘 알아 사물과 일을 슬기롭게 총괄한다는 좋은 단어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대강을 잘 파악하고 요체(要諦)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문제로 커진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1일 발족한 ‘한국1인가구연합’은 고독사 우려가 있는 분들을 위해 엔딩노트와 유언 작성을 돕고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을 이 단체가 해야 할 일의 벼릿줄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각 분야의 종사자들이 씨줄과 날줄을 엮듯 사회적 관계망이라는 그물을 만들어 고독사 방지를 위해 힘쓰자고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상근대표인 송영신 변호사(42·여) 등 이 단체의 주축이 법률가들이므로 위와 같은 ‘법률 주치의’ 역할을 먼저 생각해냈을 것입니다. 만 45세 이상 65세 미만의 1인가구 회원들을 위해 재능 기부하듯 법적 업무를 지원하면서 임의후견도 겸함으로써 ‘아무도 모르는 쓸쓸한 죽음’을 맞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임의후견이란 새로 도입된 성년후견제도 중에서 법원이 후견인을 결정하는 법정후견과 달리 계약에 따라 본인이 후견인을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3470 프로젝트’(지자체 내에 거주하는 40~70대의 1인가구 중 30세 차이가 나는 사람들을 사회적 가족으로 이어주는 세대 복원운동), ‘작은 전기’ 출간운동(70대와 사회적 가족이 된 40대가 70대의 삶을 채록해 출판)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공동 자연장지를 마련해 제공할 것이라고 합니다. 무연고자 장의를 대신 치러주는 봉사활동, 공식 블로그를 통한 디지털 제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일단 서울 부산 광주에서 출범한 이 단체는 앞으로 대구 대전으로 활동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에서 말한 엔딩노트는 내가 죽거든 장례를 어떻게 치르고 장지는 어디로 하며 유품은 어떻게 처리해달라고 미리 써놓는 메모 형식의 글입니다. 그 동안 꽤 써온 말이긴 하지만, 역시 좀 어색합니다. 우리의 전통을 살려 우리말로 바꿀 수 없는지 연구하면 좋겠습니다. 퇴계 이황은 타계 전에 가족과 제자들에게 유계(遺戒)를 남겼지만, 이 말은 일반적이지 못하며 이 경우에 맞지 않습니다.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을 오복(五福) 중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이라 하는데, 그 말에서 따와 엔딩노트를 종명기(終命記)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독거노인 등 1인가구의 급증으로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는 고독사가 우리나라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는 오래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독사 위험이 있는 1인가구는 지난해 기준 453만 9,000가구로, 전체의 25.3%나 됩니다. 특히 고독사의 위험이 높은 독거노인은 2000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119만명으로 집계됐습니다. 2012년 치매 유병률 조사(보건복지부)에 의하면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9.18%), 4명 중 1명은 치매 고위험군(27.8%)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3배, 1인가구가 2인가구 이상보다 3배나 더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인 데다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르고 만혼, 미혼이 늘어나고 저출산문제도 심각한 우리로서는 국가나 지자체, 각종 단체와 개인들의 안전망 복원을 위한 노력이 긴요합니다. 가족 내에서 서로 도와주는 ‘가족 안전망’이 약해진 데다 기업이 고용을 유지해 안정적인 임금을 지불하는 ‘기업 안전망’, 사회보장이라는 ‘공적 안전망’ 중 튼튼한 게 거의 없습니다.

고독사 문제를 먼저 앓기 시작한 일본에는 현마다 1인가구 단체가 있다는데, 우리도 스스로 돕고 서로 돕고 다 함께 돕는 사회적 관계망 복원이 시급합니다. 그래서 ‘한국1인가구연합’과 같은 민간단체의 활동에 더욱 주목하게 됩니다. 이 단체에는 20대부터 90대까지 여러 분야의 다양한 인사들이 자발적인 기부와 봉사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니 참 다행스럽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활발한 나라에서는 앞으로 이를 활용한 각종 기획도 가능할 것입니다.

고독사가 발생한 이후의 처리문제나 장의봉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지역사회를 바꿔가는 것, 그것이 벼릿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이를 이웃이 함께 키우고 어르신을 이웃이 함께 봉양하던 전통사회의 관계망을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전통사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자원과 인력을 갖춘 각 지자체들이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어야 합니다. 엄청난 돈을 퍼부어 호화판 건물을 세우고 넓고 긴 길을 닦아 생색을 내는 것보다 이런 일이 더 중요합니다. 지자체의 우두머리들은 오히려 남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일로 업적을 쌓아야 합니다. 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벼릿줄인지 알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1인가구연합의 전화번호는 02)2055-1245, 홈페이지 www.singlesunion.or.kr,
이메일은 jurist229@naver.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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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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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환 (220.XXX.XXX.8)
'벼릿줄'. 숨겨진 우리말을 새로 알게되는 즐거움도 있지만 큰일을 크게 보지 못하고 자질구레한 일에만 온 관심을 쏟고 사는 세태에 대한 경각심의 화두인 것 같습니다. 우리 그렇게 삶을, 사회를 살고 있지 않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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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3 16:31:41
0 0
김윤옥 (39.XXX.XXX.180)
말씀을 듣고나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일이 있는데
선듯 나서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뜻있는 분들이 추진하는 '한국 1인 가구 연합회'의 활동을 안내한
이 글로 많은 사람들이 그 단체의 출범과 취지를 알게 되어
뜻을 함께하는 계기가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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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6 00:07:25
0 0
임철순 (220.XXX.XXX.8)
감사합니다. 좀 그랬으면 저도 글을 쓴 보람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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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6 06: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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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80.XXX.XXX.7)
저는 <대강>이라면 충청도 <대강.막걸리가 먼저 생각 나는데...
오늘도 멋진 말 하나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저쪽을 보라고 가리킨 그 쪽은 안 보고 임 샘 손가락만 보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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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4:36:4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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