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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안진의 2013년 07월 11일 (목) 00:46:53
대학교 1학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지독하게 엄습했습니다. 가슴이 다 붙어 버릴 듯 움츠린 어깨, 맥없이 눈물을 풀어놓는 눈동자, 공황이 와버린 머리를 쭈뼛하게 세우다 지쳐 잠들었던 나날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기 작품 제목만으로도 저의 눈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마력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신비한 푸른 바탕에 낯선 이방인들의 모습을 빌려 삶과 죽음에 대한 서사를 펼치고 있는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6.7 ~ 1903.5.8)의 작품입니다. 1897년 남태평양의 타히티에서 고독과 빈곤, 지병에 시달리던 고갱이 사랑하는 딸 알린느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자살까지 결심하며 죽기 전에 남기고 싶어 했던 작품입니다.

마침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갱의 전시가 열려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높이 약 140cm, 폭 4m에 이르는 그 대작 앞에 섰습니다. 색은 본능을 일으키는 침묵의 언어라고 이야기했던 고갱은 청색 에메럴드 그린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는데, 책에서 봤던 푸른 신비보다는 침울한 비장감이 차갑게 공기를 가르고 있었습니다. 그 어둠 가운데 밝게 때로는 희미하게 빛나는 인물들의 색은 역시 푸른 기를 머금은 차가운 노란 빛이었습니다.

   

작품의 중앙에서 약간 우측으로 치우친 곳에는 한 사람이 두 손을 모아 사과를 따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처럼 우리의 인생은 유혹하는 사과, 원죄의 상징이 된 사과 한 알을 따먹으며 시작되는 듯합니다. 사과는 ‘바니타스(Vanitas)’ 즉, 세상의 삶이 일시적이고 부질없다는, 인생무상이라는 뜻의 정물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그림 오른쪽 아래의 아기 모습과 왼쪽 노파의 모습을 보면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모자상의 따스한 기온이나, 탄생에 대한 찬미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기는 정상적으로 목을 가누지 못하고 어미를 보고 있지도 않으며, 아기 옆의 세 여인도 누가 어미인지 알 수 없는 표정입니다.

고갱과 정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생후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던 일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며, 또 어쩌면 누구의 자식인지 중요하지 않고 누구의 아이든 공동육아를 했던 마오리인의 양육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탄생을 상징하는 아기의 모습에 드리워진 검푸른 그림자는 외롭게 태어나서 외롭게 가는, 죽음을 숙명으로 갖는 인간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아기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은 노파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얼굴의 반을 감싸고 있는 노파는 사실 죽음을 의미하며 어둡고 침울하지만 힘이 없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날카로운 시선으로 삶을 쉬이 내려놓지 않습니다. 아이는 죽은 듯 노파는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듯, 이 상식을 바꿔놓는 수수께끼 같은 시선의 처리가 화면에 더욱 기묘함을 불어넣습니다.

그런데 갓 스무 살에 폐렴으로 보낸, 가장 사랑했다는 딸 알린느가 자꾸 맘에 걸려서인지, 좌측 노파 옆에 가장 생생한 아름다움을 안고 주홍빛의 육색으로 당당하게 앉아 앞을 응시하는 여인이 알린느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그 성년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여인 옆에는 바로 육체의 쇠퇴를 자각하게 하는 노파가 있어 긴장과 함께 극단적인 대비를 고조시킵니다.

근경의 인물들은 옷을 벗은 밝은 육색의 원주민들이며 중경의 인물들은 어두운 옷을 입은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걷는 문명인의 모습입니다. ‘고결한 미개인은 사회적 인간보다 월등하다. 자연과 더불어 평화안에서 자족적이기 때문이다.’는 그의 말이 떠오릅니다. 어둠 가운데 빛나는 신상은 생명의 탄생과 재생을 관장하는 여신상입니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번뇌를 벗어나기 위해 우상의 신비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이 삶과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기본적인 단계를 서술한 것에만 그쳤다면 기실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만 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긴 매부리코에 두꺼운 눈꺼풀로 몽상적 느낌을 자아내던 그의 모습처럼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 또한 읽기 어려운 몽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상충되는 요소나 상식을 벗어나는 표현들이 우리를 낯선 곳으로 인도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게 하는 오묘한 긴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갱은 이 작품을 완성한 후 혼자 산속에 들어가 자살을 기도했다가 미수에 그쳤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그리면서도 삶과 죽음 앞에 초연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성공하는 사람만이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던 것처럼, 파리의 문명에서 누구보다도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그에게 타히티는 그의 도피처이기도 했습니다.

19세기말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구축한 프랑스가 만국박람회를 통해 타히티를 감미로운 낙원으로 소개하고 식민지에 정착할 사람들을 모으면서, 고갱에게도 무상체류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조건은 타히티의 풍습과 풍경을 토대로 예술적 관점을 연구하며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었고, 고갱은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낙원을 꿈꾸고 갔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타히티의 문화와 전통은 유입된 신문화에 크게 파괴되어 그는 낙담합니다. 원시성을 추구하며 타히티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수많은 소녀를 정부로 들이며 매독과 지나친 음주와 우울증의 악화, 경제적 빈곤은 그를 병들게 합니다. 불행하게도 그의 외로움과 고뇌와 육체적 상처가 깊어갈수록 그의 작품은 문명 속 우리의 눈을 자극했고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는 사후,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 작가로서의 명성과 새로운 야수주의와 추상회화에 영향을 준 위대한 화가로 자리매김 됩니다.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어느 순간 엄습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게 하고 죽음에 대한 끝없는 질문의 해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삶과 열정이 담겨 있는 작품을 가만 마주하다보면 다시 자문하며 거꾸로 묻고 있는 저를 만나게 됩니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두려움보다는 열심히 알아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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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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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14.XXX.XXX.1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고갱이 살았던 타히티 현지에 가서 고갱의 숨결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글의 내용이 더욱 가슴 찡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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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4 13: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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