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끝까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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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끝까지 가라!”

임철순

2013년 08월 12일 (월) 00:59:58

유례없는 폭염과 대책 없는 긴 장마가 사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변이랄 것도 없는 비정상적 기상현상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올겨울에는 또 얼마나 혹한과 폭설에 시달리게 될지 미리 걱정하게 됩니다. 모두들 어떻게든 잘 적응하여 건강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이상한 한여름에, 안부와 근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수서금연’이라는 말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수서지역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 수요일엔 서예, 금요일엔 연극, 즉 ‘水書金演’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돈 안 되는 취미생활만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나 보네?’ 하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생계를 위한 활동도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생활의 특징을 강조한 말일 뿐입니다.

서예는 9월 하순이면 1년, 연극은 입문한 지 이제 4개월이 됐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다 별로 나아진 게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흐려집니다. 이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으며 거저 되는 일도 전혀 없다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다 좀 더 일찍 시작하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동안엔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핑계를 대려면 아주 많습니다. 더욱이 하나만 제대로 하기에도 어려운 일 두 가지를 붙잡고 동시상영을 하고 있으니 그 영화가 볼품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글은 곧 그 사람, 글씨는 곧 그 사람, 즉 文如其人(문여기인) 書如其人(서여기인)이라고 하지요. 글이나 글씨는 아무리 숨기거나 위장하려 해도 한 인간의 개성과 인격이 그대로 다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연극도 곧 그 사람, 演如其人(연여기인)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 사람의 연기는 그 사람의 연기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인 사람을 연기해야 하니 어렵습니다. 붓으로든 무엇으로든 글씨는 살면서 계속 써온 데 비해 연극은 경험이 거의 없는 것도 낯선 점입니다. 나 혼자뿐이던 남자 단원은 겨우 한 명 더 늘었지만, 성비(性比)가 너무 맞지 않는 것도 여전히 낯선 점입니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입추(8월 7일) 전 날 붓글씨를 쓰면서 계절의 변화를 생각하다가 뭔가 끼적거리고 싶어져서 짓는 법을 배우지도 않은 한시를 낑낑거리며 지었습니다. ‘長夏始終臨顔書(장하시종임안서) 進步不很自臊心(진보불흔자조심) 不知不覺夏已逝(부지불각하이서) 立秋來到加焦心(입추래도가초심)’ 말이 되는지, 운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긴 여름 내내 안진경의 글씨를 썼건만 별로 나아진 게 없어 스스로 부끄럽네. 어느새 여름이 가고 입추가 닥쳐와 초조한 마음을 더하는구나’, 대충 이런 뜻입니다.

자작시랍시고 이걸 써서 서예반 수업을 할 때 가지고 나갔습니다. 칭찬까지는 아니라도 이런 걸 쓴 마음을 남들이 좀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숙제 검사’ 시간에 내 글씨를 여럿이 함께 볼 때 서예 경력 9년이 넘은 사람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네요.”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딱하거나 비참한 모습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나라면 내가 9년 쯤 됐을 때 1년이 안 된 사람이 써온 것에 대해 그런 말까지는 안 할 것 같은데, 별로 감정도 없이 그 말을 쉽게 하기에 “그렇지요? 목불인견이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글씨도 안 되는 게 시까지 지었으니 당연한 논평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시 자체에 대한 평가는 아닐 거라고 멋대로 믿고, ‘그 잘난 나의 첫 한시’를 계속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남의 글씨를 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으면 스스로 글을 짓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예와 연극에서 내가 발견한 공통된 정신은 ‘끝까지’입니다. 이미 경력 50년이 넘은 선생님으로부터 서예를 배우면서 자주 들은 말은 글씨는 쓰는 것이다, 붓을 세워라, 붓을 돌리지 마라, 붓의 힘은 꺾는 데서 나온다, 이런 것과 함께 끝까지 가라는 것입니다. 기필(起筆)에서 송필(送筆)을 거쳐 획을 완성해 붓을 거두는 수필(收筆) 단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글씨를 쓰다 보면 이런 말을 어느새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연극에서도 칠순의 선생님으로부터 같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단원이 비슷하지만 “대사를 삼키지 마라”, “끝까지 잘 들리게 하라”는 지적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말을 하면서 끝부분을 대충 거두거나 남들에게 잘 안 들리게 할 만큼 내 발성이 약하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습니다. “호흡이 짧다”, “한 호흡으로 길게 가라”는 지적은 서예와 연극 모두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끝까지, 끝까지!”는 1차적으로는 서예나 연기의 기술에 관한 조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삶의 자세나 태도에 관한 충고인 것도 분명합니다. 그리고 일관성 명료성 통일성 정직성 외에 보편타당성에 관한 주문일 수 있습니다. 하기는 어떤 일이라도 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해야만 뭔가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신문기자들은 “묶으면 톱이 된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특별한 스트레이트 기사가 없을 때 여러 관련기사를 모아 놓으면 머리기사가 될 수 있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서예와 연극을 묶으면 어찌 될라나? 어떤 접점이 있을까? 그런데 그게 묶는 게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8월을 살고 있습니다. 금년 여름이라는 놈도 끝까지, 끝까지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데 입추도 이미 지나고 12일이 말복이니 이제 진짜로 여름이 그만 갔으면 좋겠습니다.

최명인 (220.XXX.XXX.8)

임주필 더위에 분투하십니다

곧 書高演達이 되실겁니다

말이 되는 한자인지??? 아휴 챙치해서 끝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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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07: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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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 (220.XXX.XXX.8)

ㅋㅋㅋ

재밋게 읽었어요
그러시느라고 바쁜가요?
연극공연 볼날이 멀지 않았겠네요

김경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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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07: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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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20.XXX.XXX.8)

보람있는 여름을 보내고 게시네요. 수서금연이 욕심없이 늘 즐겁게 자리하면 더 없이 좋을 듯 싶습니다. 오늘 베이징에서 돌아왔는데, 거기나 여기나 덥기는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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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22: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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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 (220.XXX.XXX.8)

끝까지 가는 일, 뜻한 바를 향해 끝까지 가는 일, 다른 이를 위한 뜻이라면 더욱 좋으리라 믿어봅니다. 그러나, 결국 나를 위해 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 인지상정인 듯합니다. 그나마 그 나의 끝이 흐트러지고 있는 요즘의 일상이라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한 지금입니다. 글을 읽게 되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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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22: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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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호 (175.XXX.XXX.174)

담연님이 등장하시는 연극을 언제 볼 수 있을까요? 마냥 기다려집니다. 성격파일지, 연기파일지 등등 궁금한데요, 멋지게 하실 것 같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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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21: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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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20.XXX.XXX.8)

별로 이렇다 하게 내세울 성격이 없는 게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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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22: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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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39.XXX.XXX.180)

목불인견(目不忍見)을 그 처럼 순순히 받으시는 것으로
이미 경지에 오르신 걸 알겠습니다.
나를 나 아닌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해탈의 경지
그 연극쟁이(?)를 빨리 보고싶습니다.

세상에 자기 잘못을 아니라, 아니라, 모른다, 모른다!! 해서 열불나게 하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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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17: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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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20.XXX.XXX.8)

아직 햇병아리들이라서 함께 극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각자 나와서 대사를 읊어대는 모놀로그연극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힘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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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22: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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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원 (180.XXX.XXX.7)

이제 공식적 대한민국 아열대기후 의 한반도내의 여름 나기 어떻게 지내야 할지로
지혜짜기를 해야 하는 지 몇년이 지났습니다..풀어 헤친
숲 을 다시 만들어야 하고 우리 마음도 다시가다듬어 가야 하는 여름과 가는여름사이에 주신 글 잘 읽고 감사의 말씀 작은 표현으로 드립니다..**
애독자 양 지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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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16: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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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180.XXX.XXX.7)

좋은 글 감명입니다. 저의 못된 꽴에 빠져(?) 청일점으로 고군분투 하시게되어 몸둘바를 모르겠늡니다. 멋진 졸업작품 무대에서 큰 존경과 응원의 박수 이끼지않겠습니다.
끝까지 화이팅 입니다.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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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16: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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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80.XXX.XXX.7)

가장 무덥다는 여름을 가장 치열하게 보내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짝짝짝!!! 그 자작시를 풀이 하신 한글 그대로 함 써 보시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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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12: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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