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문화재 복제품도 ‘짝퉁’은 ‘짝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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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2013년 09월 10일 (화) 00:58:14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비너스 조각상’이 서울 나들이를 한다고 하면, 아마 국내는 물론 전 세계 문화계가 놀라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해외 미술문화계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오느라 비행기며 호텔 예약 등이 동나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몇 단계 껑충 뛰어오를 것입니다. 가상이라도 즐겁고 흐뭇한 일입니다.

그런데 서울 나들이를 한 그 ‘비너스 조각상’이 최첨단 기법을 이용해 진품과 진배없이 제작한 복제품이라면 어떠할까요? 분위는 썰렁하다 못해 전 세계 문화계가 멸시의 눈초리를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 경쟁력은 몇 단계 주저앉을 것입니다. 정말 참담한 가상입니다.

이것이 진품과 ‘짝퉁’의 차이입니다.

얼마 전 경주를 다녀왔습니다. 천년 고도답게 경주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국내 어느 곳보다 많이 산재해 있죠. 말할 것도 없이 전국 어디서나 쉽게 먼 옛 사람들의 정취(情趣)에 한껏 취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문화 유적지입니다. 그중 천마총(天馬冢)에서는 실로 희귀(稀貴)한 고대 회화사 자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날아가는 말(天馬)’을 그린 말안장의 그림이 바로 그것입니다. 5~6세기 신라 시대의 오래된 미술품을 감상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지요.

그래서 경주에 가면 늘 천마총에 들릅니다. 내부를 보며 옛 사람들이 향유한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훌륭한 교육 현장이기도 해서 더욱 좋습니다.

그런데 천마총 전시 공간에는 사람들을 퍽 당혹스럽게 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유적지에서 발굴한 진품을 박물관에 잘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표시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진열한 유품들이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표시가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괴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마치 공공기관으로서 문화유산 관리를 총괄한다는 박물관의 낯 뜨거운 ‘벌거숭이’ 행정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마저 듭니다. 그래서 얼마 전 부여국립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그만 우매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박물관에 전시한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를 감상하고 돌아와 그 감흥에 젖어 있던 중 문득 그것도 혹시 ‘짝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진품 여부’를 박물관에 다시 확인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박물관에 진열한 향로가 진품이라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지만 왠지 서글픈 심정이 들었습니다.

근래 정부 기관 주도 아래 국내 국보급 문화재의 복제본 제작을 심도 있게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문화 수준에 대한 경악할 만한 폭거가 아닐까 싶어 참으로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만일 공공기관이 국가 예산으로 국보급 문화재인 석굴암(石窟庵) 안에 모신 대불상(大佛像)의 복제품을 만든다면, 그것을 어디에 안치해야 할까요? 국비로 제작한 것이니 공공장소에, 그것도 품격에 맞게 모셔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에 설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국보급 문화재의 복제품을 제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사실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복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정품에 스며 있는 긴 세월과 면면히 흘러온 정(情)과 혼(魂) 그리고 사(史)까지 복제할 수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복제품은 생명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는 한낱 공산품일 뿐입니다.

게다가 사회·교육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런 복제품을 정품인 양 버젓이 ‘공공연하게’ 전시한다면 아마도 사이비 ‘짝퉁 문화’ 조성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에 대한 비판적 감각이 무뎌지게 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발하는 시각적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스며 있는 역사의 숨결과 가르침은 더욱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짝퉁 비너스’를 전시한다면 그 나라는 국가적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덧붙여도 복제품은 ‘짝퉁’이라는 ‘멍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국보급 문화재의 복제는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복제품을 아무리 정교하게 제작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한낱 ‘짝퉁’일 뿐이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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