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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잔치 공화국
박상도 2013년 11월 26일 (화) 01:09:12
지난 10월이었습니다. 필자가 제작,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 공개방송에 출연할 가수들을 섭외하면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섭외 전화를 할 때마다 “죄송합니다. 행사가 잡혀 있어서 출연이 어렵습니다.”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한 서른 명쯤 섭외가 불발되자 ‘이러다 공개방송을 못하게 되는 것 아냐?’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제가 직접 제작하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기존의 FM라디오 방송이 아닌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방송이기 때문에 청취율이 높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따라서 행사를 포기하고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가수들에게 유혹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가장 큰 원인은 "10월에는 행사가 너무 많으니 11월에 공개방송을 하면 백 퍼센트 출연이 가능하다."고 많은 가수들이 말한 것처럼 10월에 몰려있는 행사들 때문이었습니다.

어렵게 가수를 섭외해서 공개방송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만 ‘도대체 얼마나 행사가 많길래 이렇게 섭외가 어려웠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축제 관련 경비가 올 한 해에만 1조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안전행정부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최재천 의원에게 제출한 '지방자치단체 행사 및 축제성 관련 경비' 자료에 따르면, 올 한 해 9,845억 6,700만원이 지자체 행사와 축제에 쓰였습니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축제와 행사에는 아낌 없이 돈을 쓰는 것 같습니다.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기가수 섭외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기 가수가 행사에 나와줘야 관중이 많이 동원되기 때문입니다. 행사를 보러 오는 지역주민의 숫자가 행사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지역주민이 많이 와야 지자체의 시장이나 군수가 폼나게 인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 가수의 출연은 행사의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기 걸 그룹 같은 경우는 몸값이 하늘로 치솟습니다. 이들은 행사에 잠시 들러 노래 한두 곡을 부르고 수천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지자체 축제뿐만 아니라 대학 축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에 위치한 대학들은 독자적으로 아이돌 스타를 초대할 경우 발생하는 이동시간에 대한 보상을 분산시키기 위해 인근 지역 몇개 대학이 같은 날 축제를 열어 이들이 하루에 여러 탕(?)의 출연을 가능하게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인기 걸 그룹의 경우 이렇게 지방의 대학 세 곳 정도를 돌면 하루에 1억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고 합니다. 축제가 끝나고 불꽃놀이가 한창일 때 축제의 사회를 보던 한 개그맨이 “여러분, 여러분의 등록금이 불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렇게 흥청망청 돈을 써대면서 반값등록금을 운운하는 것은 왠지 지켜보는 사람마저 낯뜨겁게 만듭니다.

대학교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총학생회의 가장 큰 사업이 축제 때 아이돌 가수를 섭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총학생회가 능력 있어 보이기 위해서는 아이돌 가수 섭외가 필수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성의 전당’이 ‘연예의 전당’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학생들이 이 정도니 어른들은 어떻겠습니까? 내년에 지자체 선거가 있습니다. 벌써부터 홍보에 열을 올리는 곳이 많습니다. 축제니 행사니 방송 협찬이니 하는 것들에 수억 원씩 주인 없는 돈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쓰는 건지 자명한데도 아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 1Km도 안 되는 도로에 80억 원을 들여 대리석을 깔고 ‘생태-교통’ 이벤트를 열었던 수원시 행궁동의 지금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콘크리트로 바닥을 다져놓고 그 위에 대리석을 깔아서 걷기에 너무나 딱딱한 도로가 됐다고 합니다. 걸을 때마다 무릎과 허리가 아프다는 주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보기에 좋고 생색내기 좋은 일들의 특징은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것입니다. 반포대교 남단 한강에 생뚱맞게 떠 있는 세빛 둥둥섬 역시 그런 것 중의 하나입니다. 사흘 굶은 가족에게 기껏 번 돈으로 초콜렛만 한 통 사서 들고가는 우스꽝스러운 가장이 지금 지자체장들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초콜렛은 맛있지만 밥 먹고 나서 후식으로 먹어야 제격 아닌가요?

냉방에서 옷을 아홉 겹이나 껴입고 고독사한 할머니의 시신이 백골이 되어 5년만에 발견됐다고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로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거리에는 전에는 보기 어렵던 ‘걸인’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축제는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나운서들이 사랑의 열매를 달고 방송을 하고 모금을 독려합니다. 벌써 십수년째 그러고 있습니다. 그동안 꽤 많이 모아 준 것 같은데 여전히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겨울 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처럼 국민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나라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모금에 참여하는 착한 국민들은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는 정부와 지자체가 무능해서 우리가 해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민이 언제까지 착해야 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올겨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모금액은 3,110억 원입니다. 지자체들이 행사와 축제에 들인 비용을 어려운 이웃에게 쓴다면 사랑의 온도탑이 세 번이나 100도에 이르고도 남습니다. ‘엉뚱한 데 돈을 써 놓고 나중에 국민들에게 손 벌린다’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잔치를 끝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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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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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co (117.XXX.XXX.162)
바쁘다 오랜 만에 보니 참 만시지탄의 글이 있네요.
해외에 있다보면 대단합니다.
지자체들의 지역 특산물 행사 한답시고 연애인 동원하고 수십 명의 지차체 직원들이 여행가고…정말 돌아 버리지요.
국회의원들 지방의회 의원들…이 사람들 빨리 국민들이 대책 세워야 되요.
요즘은 차라리 임명직 중하급 공무원들은 더 공복이 되 가는데
크크 위에 있는 족속들 정말 국고 축내는 외유성 출장 절대 감사해야 되요.
국민들의 평가 기준을 언론과 대학에서 제대로 세워가야 되는데
그들이 재물 축적에 눈이 어두워져 가치관을 다 흐려 놓고 있지요.
이 나라 발전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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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4 12:31:33
0 0
정달호 (211.XXX.XXX.254)
축제 등 가시적 행사에 정치적 저의를 담는 지자체장과
그를 바라보면서 행사 잘 치러서 점수를 따고자 하는 간부들,
또 표 달아날까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지자체 정부에서 하는 대로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지자체 의원님들,
살림 거덜난 뒤에 아무 책임도 안 질 이런 분들을
엄하게 꾸짖어 주시니 시원합니다.
텅빈 축제가 끝난 뒤 사후 점검을 해서 잘 되고 못 된 것을 엄격히 따져
이들에게 책임--금전적인 것을 포함하여--을 묻는 그런 제도는
왜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도가 없다면 자신이 낸 세금 새어 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시민들은 답답해 하면서도 무력감만 느낄 것 같습니다.
목소리 높은 시민단체, 특히 보조금까지 받는 그 많은 시민단체들이
이런저런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바로 이런 일에 앞장서 준다면
그나마 세금 새어나가는 걸 다소라도 막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곧 지자체 선거도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의 일침이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어 시민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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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16:00:38
0 0
박경용 (59.XXX.XXX.230)
적절한 지적에 깊은 공감보냅니다.
쌩각해보면 지자체장이나 모두가 자신의 탐욕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다음선거를 대비하는.......이런 현상을 언론이 앞장서서 시민들을 깨우쳐야하는데....언론이 해야할 역할인 교도적 기능을 하지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거대보수언론들의 행태는 실망스럽습니다. 앞으로 이같은 글 자주 내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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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13:10:40
0 0
박병모 (210.XXX.XXX.250)
자자제 선거가 있을때 내가 재임시절 뭘 어떻게 했습니다가 주요자랑거리가 아니고 감사원같은곳에서 아무개 시장은 전임시징에게 100원을 넘겨받아 시장직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다까먹었다 또는 100원을 110원으로 시를 부자로 만들었다 라는 식으로 평가할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유권자의 선택에 크게 작용을 한다면 내돈아니라고 펑펑쓰는 짓거리는 많이 줄지 않을랑가??? 항상 정곡을 찌르는 도를 잃지않는 박상도님의 글을 잘읽고있고 있습니다만 저러다 일생길라 좀 살살하지 라는 걱정도 생깁니다 ㅎㅎ. 비른말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쪽도 많이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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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07:32:16
0 0
박상도 (222.XXX.XXX.252)
ㅎㅎㅎ 살살 쓴 건데요~? 원장님처럼 염려해주시는 분이 많으셔서 저는 별 걱정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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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09:21:5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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