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칼럼 | 게스트칼럼
     
홍릉 조감도에 잡힌 국가 백년대계
권오용 2013년 12월 20일 (금) 00:46:00
KDI(한국개발연구원)가 홍릉시대를 마감하고 20일부터 세종시로 옮겨갑니다. 1971년 3월에 설립되었으니 42년 만의 이전인 셈입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입안과정에서 경제연구소의 필요성을 절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설립의 기원이었습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사재 100만원을 건립비로 내놓았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주택복권의 1등 당첨금액이 100만원이었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KDI는 왜 홍릉에 세워졌을까? 그리고 홍릉에 있는 다른 국책기관들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KDI 주변의 구글 지도를 한번 살펴봤습니다.

   
1970년대 홍릉의 국방과학연구소(ADD)에는 둘째 형님께서 근무하셔서 물건을 전해주려고 몇 번 갔던 기억이 납니다. 또 지금 우리 둘째 아이가 KDI 주변의 KIST(과학기술연구원)에 다니고 있어 홍릉 일대에 있는 여러 개의 국책기관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구글 지도를 보니 홍릉 주변에는 1971년에 설립된 KDI, 1966년에 설립된 KIST, 1973년에 설립된 세종대왕기념관, 1970년에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ADD), 그리고 1972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 된 국립수목원이 자리해 있습니다. 찬찬히 이들 기관의 하는 일을 되짚어봤습니다.

KDI=경제개발, KIST=기술입국, 세종대왕=문화창달, ADD=자주국방, 국립수목원=자연보호. 아! 우리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이었습니다. 이들 구호는 모두 국가의 목표였고 이를 달성하면 우리가 잘살게 된다고 거의 외다시피 한 구호들이었지요.

박 전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는 가난을 몰아내기 위해 경제개발을 서둘렀습니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어느새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수출실적만 놓고 보면 7대 수출국가가 됐습니다. KDI는 국가 경제개발의 중추였고 씽크 탱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자나깨나 북한의 침략위협에 시달리던 시절,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안보체제 속에서 자주국방은 너무나도 절실한 과제였습니다. ADD가 만들어졌던 시절, 총알도 못 만들던 우리는 한국형 미사일을 개발했고 그 저력으로 이제는 비행기까지 수출하는 세계적 군사강국이 됐습니다.

미국의 요청으로 국군을 월남에 파병할 때, 당시 존슨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무엇이든 부탁하면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세계의 다른 지도자들은 나랏돈 빼먹기 바쁠 때였는데, 박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자들을 양성할 연구소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KIST의 본관은 존슨홀로 명명돼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5대 R&D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꿈도 꾸기 어려운 발전을 해낸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를 성역화한 박 전 대통령은 세종대왕의 영릉도 성역화 단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군인 출신이어서 문화를 무시한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세종대왕기념관이 홍릉에 자리 잡은 이유는 아마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창달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잘사는 길이라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화창달은 문화융성으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승계했습니다.

자연보호는 박 전 대통령의 남다른 관심사였습니다. 경제개발계획은 5년으로 하면서도 산림 녹화를 위해서는 10개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구호가 어디든 걸려 있었습니다. 기업체들은 1사 1산, 1사 1천으로 쓰레기를 줍고 나무를 가꿨습니다. 공휴일로 지정된 식목일에 학생들은 산에 가서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11월의 어느 날을 ‘육림의 날’로 정해 자기가 심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는지 가서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헐벗었던 산하는 이제 과밀을 걱정할 정도로 숲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국립수목원이 홍릉에 있는 이유도 이해가 갑니다. 자연보호가 대통령의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홍릉에 집적해놓은 당시의 국가경영과제들은 이렇듯 훌륭한 성과를 냈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사람수가 너무 많아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할 때 사람만이 우리의 자원이라는 걸 홍릉에 모인 나라의 인재들은 입증해 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에 자족하고 있기에는 지금부터의 과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경제개발은 이제 양극화 해소, 복지국가 달성이라는 패러다임의 질적인 변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주국방은 북한에 대해서뿐 아니라 급변하는 동북아정세 속에 슈퍼강대국들 사이에 놓인 우리의 위상과도 연결해야만 합니다. 문화는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활 속의 문화를 가꾸고 보듬어야 할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보호 역시 개발과 환경의 조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지구환경 과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과학입국은 추적자(Follower)의 위치가 아니라 선도자(Fast-Mover)의 위치를 굳힐 수 있는 원천기술 확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물론 이 숙제들은 우리가 지난 50년간 이룬 기적으로 불리우는 성공이 있었기에 나타난 것들이고, 이들 과제를 해결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도약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잘 나가는 경제가 정쟁에 발목 잡혀 있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홍릉에 정치문화연구소라도 하나 열었더라면 어땠을까? 정치의 선진화를 국가과제로 제시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왜 박 전 대통령은 이걸 안 했을까? 어려워서였을까? 보기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일까? 정쟁에 볼모가 되어 있는 지금의 나라 형편을 보면 그 아쉬움이 곱절로 되돌아옵니다.

  권오용

효성그룹 상임고문
고려대 정외과 졸. 전경련 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비서실 상무, SK 사장 등 역임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