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번역, 사용 더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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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번역, 사용 더 신중해야

정달호

2014년 03월 18일 (화) 00:52:00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나 나라의 독특한 문화 현상이므로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닌 추상적 개념이나 복잡한 현상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어려움을 넘어 어떤 경우에는 정확한 번역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우리말과 영어처럼 구조가 서로 다른 언어 간에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근래에 국제화의 도가 높아지면서 영어 용어가 학계나 전문가 단체뿐 아니라 신문 잡지 등 일반인들의 생활 영역에서도 더욱 많이 쓰이고 있으므로 그 번역과 사용에 정확을 기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근 가장 많이 쓰이는 외국어 또는 외래 용어로서 우리말 번역이 적지 않은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모럴 해저드’(moral hazards)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보험업과 관련해서 생겨난 것인데 전문 용어 사전에는 ‘모럴 해저드’는 '정상적인 시장 질서를 해칠 수 있는 각 경제 주체들의 윤리적, 정신적 태도상의 위협 요인'으로 정의 되어 있고 그 대표적인 예로, '빠져나갈 구멍을 믿고 최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기업주들이 빚을 끌어다 덩치만 키워놓으면 정부가 망하도록 내버려두지는 못한다는 그릇된 계산으로 책임 경영을 하지 않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모럴 해저드’가 있다고 할 때는 어떤 부류의 경제 주체들의 윤리적, 도덕적 태도에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의 본질은 ‘해이’(解弛)가 아니라 ‘위협 요인’(威脅要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자주 겪듯이 공기업 방만 경영이나 금융 부조리 사건이 날 때 ‘도덕적 해이’가 그 원인이라고 표현하면 '도덕적 해이'를 사회 일반에 주는 위협 요인이라는 의미보다 단순히 ‘해이’(laxity)의 뜻으로 받아들여 그 행위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moral hazards가 ‘위협 요인’이라는 점에서 이를 ‘도덕적 해이(解弛)’라고 하기보다는 ‘도덕적 재해(災害)’라 함이 어떨까 싶습니다. 기왕에 ‘occupational hazards’ 를 ‘직업(적) 재해’로 번역해 쓰고 있으므로 같은 말(hazards)을 번역하는 데 일관성을 기할 수도 있고 번역어의 뜻도 용어의 원 의미에 훨씬 더 가깝다고 봅니다. 이 번역도 충분히 그 뜻을 전달할 수 없거나 오해될 소지가 있다면 요즘 자주 쓰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말처럼 차라리 본래의 영어 용어 그대로 쓰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외래 용어를 잘못 이해하고 쓰다 보면 종내에는 우리의 사고(思考)까지 오염시켜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과 담론을 두루뭉술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런 전문 용어 번역 문제는 국어를 다루는 주무 기관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나서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잘못된 전문 용어의 번역도 문제지만 전문 용어를 쓰면서 괄호 속에 틀린 영어를 표기함으로써 식자우환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꽤 오래 되었지만 어떤 신문의 칼럼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유행하던 비밀외교(secret diplomacy)의 반대말인 공개외교(open diplomacy)를 ‘공개외교(public diplomacy)’라고 쓴 것을 보았습니다. ‘퍼블릭 디플로머시(public diplomacy)’는 상대국 정부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외교라는 의미로 요즘 ‘공공(公共)외교’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냥 '공개외교'라 해도 충분히 뜻이 통하는데 굳이 원어를 표기하려다가 실수를 한 것입니다. 사실 요즘도 신문을 보면 괄호 속에 원어 표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오해를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말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가급적 이를 지양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한때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여차한 사정으로 한동안 활동을 중지하다가 다시 등장할 때 해당 인사가 ‘롤백’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롤백’(roll-back)이란 말은 냉전 때 서방이 공산주의자들의 전진을 도로 말아서 퇴치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였고 그 외에도 유사한 대치 상황에서 상대방의 진전을 되돌려놓는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롤백’을 ‘role back’(실제 이런 말은 없음)으로 유추하여 이 말을 처음 썼을 것이고 그것이 유행처럼 되어 오랫동안 언론에서 그대로 써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은 정계 복귀나 무대 복귀를 말할 때 ‘롤백’이라 쓰지 않고 ‘컴백’(comeback)으로 올바로 쓰고 있어 다행입니다.

문제는 언론에서 영어를 많이 섞어 씀으로써 일반 독자들이 따라가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언어생활이 혼란스러워지고 나아가 우리말이 손상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말이 겪고 있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따라서 쓰지 않아도 될 외국어는 되도록 쓰지 않고 꼭 써야 할 외국어는 정확한 번역을 찾아서 써야 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외국어를 많이 쓰는데 올바른 언어생활이란 점에서 보다 책임의식을 가지고 외국어 사용에 절제와 신중을 기하여야 합니다.

송정희 (27.XXX.XXX.30)

영어신문을 발행하는 사람으로서 새겨보아야 할 글입니다.
정확한 번역에 더욱 신경써야 겠습니다.
하물며 성경에도 번역의 오류가 많다더군요.

가령
"부자가 천국에 가는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이는 성경의 유명한 구절인데 사실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었는데, 번역의 오류로 낙타로 더 널리 알려진 경우라고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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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7 07: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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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武 (115.XXX.XXX.114)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요즘 그놈의(?)육성조, 이곳 현지어 때문에 골머리를 앓습니다.
강산이 두번을 변할 동안을 들었지만 아직도 아리송 하거든요.
어순까지 우리하고 반대여서..,육성이 아니고, 십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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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3 16:5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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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상 (221.XXX.XXX.244)

아주 동감이 가는 말씀 많이 하셔서, 제 속이 다 후련합니다.외람된 말씀이지만 단 한 가지 영문의 웃기는 글을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어서 보내드립니다.영어의 kinship이라는 단어는 있어도 skinship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그런데 이 단어를 쓴 작가가 skinship이라고 쓰는 바람에 그 후부터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까지 쓸뿐만 아니라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은 잘 알고 계실줄 압니다.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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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8 17: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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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호 (211.XXX.XXX.254)

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킨쉽(skinship)이라는 말이 특히 정치인들의 과외 활동과 관련해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friendship, leadership, readership, scholarship, cousinship 처럼'ship'은 어떤 명사와 결합하여 상태, 자격, 지위, 성질, 집단 등의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피부, 살갗의 의미인 skin 에다 결합된 ship은 이 중에서 상태나 관계를 의미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즉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관계(악수, 포옹, 기타 신체의 접촉)를 상정한 친밀감이란 뜻으로 쓰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 의미는 그런 것이지만 그런 신체의 접촉이 가능하면서도 친밀감을 높이기기에 적당한 상황(술자리, 식사자리, 노래방, 또는 단체 소풍이나 골프 등 체육행사 등)에도 스킨쉽이란 말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이 말이 본 영어가 아닌 것을 알지만 그 쓰임새를 보면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행위나 상황을 표현하는 데에 잘 맞는 말이라는 느낌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영어 사용권 학자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어떤 이는 영어가 아니니 써서는 안 된다고 하며 또 어떤 이는 한국이나 일본 같은 문화권에서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말이 없어 그런 말이 생겼다면 그렇게 쓰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관대하게 나오는 분도 있었습니다.

서양 문화에서는 여러 사람이 보는 데서 포옹도 하고 뺨 맞추기, 나아가 키스도 하면서 항상 친밀감을 보일 수 있는 데 반해 동양권에서는 이런 것이 금기시되는 점도 있으므로 좀 애매한 표현이 필요해서 스킨쉽(skinship)이란 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도 자꾸 쓰이다 보면 kimchi 나 sushi 처럼 언젠가 영어의 일부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튼 스킨쉽이란 말은 미워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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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9 14: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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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211.XXX.XXX.59)

핸드폰도 비슷한 경우겠죠. 한국이 지어내서 세계에 퍼뜨린 영어 이름이니까요. 중국도 手機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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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0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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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39.XXX.XXX.131)

좋은 지적입니다. 요즘엔 언론이 앞다투어 이상야릇한 신조어, 낚시 미끼 같은 제목들을 남발해 실망이 큽니다. 한때는 신문 기사를 교과서 삼아 공부한다고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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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8 1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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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호 (211.XXX.XXX.254)

지금도 많은 학교에서 신문을 가지고 시사나 고급 국어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문이야말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좋은 글로 전달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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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9 14: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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