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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남기는 것 <상>
96세의 사진작가
임철순 2007년 09월 02일 (일) 19:51:45
 지금 마산의 마산문학관에서는 96세의 사진작가 강신율씨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9월 1일부터 두 달 일정으로 계속되는 전시회의 제목은 「사진에 담은 문학풍경」입니다. 사진작품은 물론, 그의 육필 원고와 손때 묻은 장비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1세대 사진작가인 그는 지금도 봄이 오면 카메라를 메고 나서고, 거짓말같은 기억력으로 시와 시조를 줄줄 외운다고 합니다. 전시회의 제목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그를 이끄는 힘은 문학적 감수성인 것 같습니다.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태어난 지 5~6개월 된 아기, 개성이 풍기는 여체, 그리고 꽃- 이 세 가지랍니다. 

 이 세 가지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제쳐 놓고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가 개어 산뜻한 여름 아침, 서녘 하늘을 물들이는 진홍의 낙조, 천지가 은백으로 변한 겨울의 달밤…이런 여러 풍경을 생각해 봐도 그가 꼽은 세 가지보다 낫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이미 한 세기 가까이 세상을 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맨눈으로 카메라의 눈으로, 그러니까 두 겹으로 세상을 포착하고 파악하며 살아왔습니다. 카메라를 처음 잡은 게 열다섯 살 중학생 때라니 카메라의 눈만으로도 8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고 말한 아름다운 것 세 가지입니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찬양할 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더라도, 심신이 온전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리고 무엇 때문에 여전히 세상에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이가 많은 분들은 간난신고의 세월을 이기고 넘어 나름대로 삶을 완성한 사람들입니다. 96세 저 나이에 나는 과연 이 세상에 있기나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다만 아득할 뿐입니다. 더구나 그가 살고 겪어온 한국의 100년은 다른 어느 나라의 100년보다 길고 파란만장합니다.

 사진만이 아닙니다. 그는 지난해 6개월 동안 성당에 나가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아 요셉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70세가 되지 않았더라도 좀 늙어 보이면 옹(翁)이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30여년 전만 해도 이 말을 많이 썼습니다. 지금은 그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쓴다 해도 강신율 옹이라는 말은 당치도 않습니다.

 강신율씨는 마산의 무학산 기슭에 농원을 운영하면서 목련 천 여그루를 심어 놓았다고 합니다. 봄이 되어 매화와 목련이 피면 아는 사람들을 불러 함께 꽃을 보며 즐긴다고 합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렇게 많은 꽃나무를 심은 것도 그의 눈으로 보고 남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본다는 것!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사물을 자신의 인식의 틀 안에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보지 않으면 형상과 규모를 알 수 없고, 보지 않으면 기억과 재현을 통해 사물과 삶을 시간 속에 남기기 어렵습니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는 보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말테/릴케는 ‘나는 보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으나 모든 것(본 것)이 내 마음 속 깊숙이 파고 들어와 여느 때 같으면 언제나 끝나곤 하던 그곳까지 와서도 멎지를 않는다.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깊은 속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지금 그 깊은 속으로 향해 들어가고 있다.’

 계속해서 말테/릴케는 ‘나는 보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렇다. 나는 이제 비로소 시작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는 행위는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나는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우기로 했으니 무엇이든 일을 시작해야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그 다음에, 드디어 그 유명한 문장이 나옵니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려야만 될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가능하면 아주 오래오래 살아서 우선 꿀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 가서는 아마 10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이 아닌 것이다(감정이라면 젊었을 때에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시는 경험인 것이다.’

 릴케의 글은 아름답습니다. 그 대목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추억만 가지고는 아직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몸짓이 되며, 이름도 없는 것이 되어 그 이상 우리들 자신과도 구별할 수 없게 됨으로써 비로소 아주 우연한 순간에 한 편의 시의 최초의 말은 그런 추억의 한 가운데서, 추억의 그늘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진은 시와 다르지만 오래 오래 살아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과 추억을 모아야 좋은 작품을 빚어낼 수 있는 점은 같을 것입니다. 백수(白壽)에 가까운 나이까지 오래오래 살아온 강신율씨의 전시회에 그런 의미를 붙여 주고 싶습니다. 그가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

 보고 모으고 남기고…이것이 모든 사람의 삶이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남기는가는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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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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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121.XXX.XXX.63)
나이든 사람은 '무엇때문에 여전히 세상에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에 가슴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진한 휴머니즘과 경로정신을 본받아 저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르신들을 공경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경험과 추억의 그늘에 숨어 있는 의미를 보고 모으고 남기고...매번 감동의 연속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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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18: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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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70.XXX.XXX.239)
호수에 슬며시 부는 바람처럼, 물 위를 차고 나르는 물새의 깃털처럼......

오늘의 말씀은 신선합니다. 호수의 여운이 이 글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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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11: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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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 (222.XXX.XXX.246)
평소 임 선생님의 칼럼을 즐겨 읽고 있습니다만 오늘 이야기는 압권이네요. 오래 살아 온 이들은 그 자체로 존경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편의 시, 최초의 말은 추억의 한 가운데서, 추억의 그늘로 부터 나오게 된다"는 말로 정리하시는 것. 그것이 연륜인 것 같습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아참 노래는 세월 따라 늙어가는지 모르지만 목소리는 제일 늦게 늙는다고 하더군요.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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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3 1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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