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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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기억

허영섭

2014년 04월 25일 (금) 04:32:06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가 개봉된 것은 1965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해서였습니다. 술꾼인 아버지 때문에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간 가운데 철부지 세 동생을 보살피며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이윤복 군의 일기를 토대로 제작된 영화였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광화문 국제극장에서 상영되어 서울에서만 무려 2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49년 전, 어느덧 반 세기 전의 일입니다.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순식간에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동네마다 순회하며 상영되었으니까요. 극장 시설이 변변치 않던 당시 밤중에 동네 공터에 대형 장막을 치고 무료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아직 초등학생으로서 서울 미아리고개 너머에 살던 나도 그렇게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나도 울었고, 보는 사람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이윤복을 정말로 만난 것은 내가 <뿌리깊은나무> 잡지의 기자로 활동하던 1979년에 들어와서입니다. 영화가 나온 뒤 10여년이 지나면서 그의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취재하려던 뜻이었습니다. 결국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대구 앞산 동네에 살던 그의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바로 그 일대였지요. 이윤복이 어린 시절 앞산에 살면서 껌팔이에 밥 동냥을 다니며 남의 집 염소를 먹였던 것입니다.

구두닦이에 나섰다가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한 번은 찬밥 덩어리라도 얻기 위해 깡통을 둘러메고 같은 반 여자친구네 집인 줄도 모르고 문을 두드렸다가 어쩔 줄 몰라 했던 장면도 등장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어려운 형편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던 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가난하고 헐벗었을망정 꿋꿋하게 견뎌냈습니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 명덕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그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경구중학교와 능인고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율산알미늄에 취직해 있던 그는 나보다 오히려 두 살이 위였습니다. 그때는 일기집의 출판 인세로 나름대로 집도 장만하고, 식구들도 다시 힘을 합쳐 열심히 살아가던 무렵이었습니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못지않게 일기집 자체가 최대의 베스트셀러였으니까요.

그렇다고 그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직장에 취직하기까지 외판원으로 전전해야 했으며, 어렵게 잡은 직장마저도 율산그룹이 해체되면서 일자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취재하러 방문했다는 얘기에 난감해 하면서도 뭔가 할 말이 적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속으로만 삭이기에는 답답한 사연들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날 저녁, 스무 살 후반의 두 젊은이는 대구MBC 근처의 어느 여관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안주라야 오징어 다리에 불과했지만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우여곡절의 살아온 과정을 털어놓는 동안 창밖으로는 여름날의 빗줄기가 시원스럽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도 모처럼 후련해진 것 같았습니다. 초면의 쑥스러움은 금방 이해와 친근감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자주 만났습니다. 그가 서울 신길동 친척집에 올라올 때면 늘 연락을 취하곤 했습니다. 서울역에서 대구행 기차표를 미리 끊어놓고는 근처 남대문시장 해장국 골목에서 급하게 몇 잔씩 주고받기도 했지요. 그가 서울에서 직장을 잡으면서는 더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도 <뿌리깊은나무> 잡지의 강제 폐간으로 전경련을 거쳐 신문사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였지요. 그러나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가 아니라 이미 친구로서였습니다.

그를 만날 때마다 안타까웠던 것은 안정된 생활을 찾아가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해서는 커다란 멍에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가난하게 살았다는 이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눈길이 그때의 시각에 고정되어 있다는 자체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겠지요. 평범하게 살아가려 했으면서도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가 1990년 서른여덟의 한창 나이에 만성 간염으로 세상을 뜨게 된 데도 그러한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필름이 유실됐던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가 복원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대만에서 필름이 발견되어 디지털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지요. 며칠 전에는 시사회도 열렸고, 내달에는 한국영상자료원 창립 40주년 기념영화제를 통해 일반에도 공개될 예정이라 합니다. 시사회 기자회견에서 “마치 죽은 친구가 다시 돌아온 듯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는 김수용 감독의 얘기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윤복이 남긴 일기집의 한 구절을 다시 머리에 떠올립니다. “어머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니 유난히 어머니가 보고 싶어집니다. 나는 가만히 누워서 어머니가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가신 것은 무슨 마음으로 나가셨나 하고 생각합니다. 순나는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만 윤식이와 태순이는 어머니 얼굴을 알지 못하고 매일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밖에 찾지 않습니다.” 애처롭지만 담담한 표현이 더욱 가슴을 울립니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눈물을 참아가며 코흘리개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던 이윤복의 얘기는 경제발전으로 먹고 살기가 훨씬 나아진 지금에도 훈훈한 감동과 교훈으로 널리 기억될 것입니다.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보릿고개 시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영화의 복원을 계기로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찢어지고 흐트러진 상처가 보듬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장석철 (223.XXX.XXX.139)

허 영섭 위원님,
잊혀졌던 옛 이야기를 생생하게 일깨운 위원님의 글을 읽고 , 제가 고 2때 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 사는 이런저런 모습과 추억 속의 실화 등으로 우리에게 무언가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주는 글을 쓰시는 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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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09: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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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1.XXX.XXX.44)

저로서는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였습니다.
장 대사님께서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군요.
여기에는 대사님의 대학 동기인 신영수 부장도 어느 정도 관여되어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들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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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05: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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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58.XXX.XXX.64)

주인공 이윤복 씨는 땅 위에서의 그 큰 슬픔을 다 지우지 못하고 저 하늘 나라에서 또 하나의 슬픈 별이 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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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5 15: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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