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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평안하십시오
김양수 2007년 09월 06일 (목) 10:17:56
지난 휴일 하루 날을 잡아서 아내와 조상 묘소에 벌초(伐草=省墓)를 다녀왔습니다.
풀을 베는 동안 지독히 더웠던 여름의 끝물, 극성스럽던 매미 울음소리도 잦아들어 그런지 이따금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이 등줄기를 타는 땀 기운을 식혀 주곤 했습니다. 키 넘게 자란 억새와 엉겅퀴, 찔레 가시로 범벅이 된 봉분은 내 차지였고 돌담 울타리에 얽히고설킨 덩굴들을 뜯어내는 것은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금방 베어 낸 풀에서 나는 아릿한 생풀향기, 뿌리를 묻었던 흙에서 나는 흠흠한 흙 내음이 늦더위를 물리치고 치르는 힘겨움을 말끔하게 씻어 주기에 족했습니다. 벌초를 마치고 준비 해 간 제물을 차려 놓고 술잔을 올리는 제례를 치렀습니다. 모처럼의 아내와 단 둘이 드리는 성묘여서 그런지 맑은 술잔에 어리는 구름 서성임이 한 세상을 살았던 할머니의 현신처럼 가슴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제례를 마치고 아내에게 배례를 하면서 무슨 말씀을 드렸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 평안하십시오/우리 사는 것도, 아이들 장래도 잘 보살펴주십시오/ 그리고 내년에도 변함없이 할머니를 뵐 것을 기원 했다는 것입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자손들의 발복을 소망 하는 필부의 소박한 의식이야말로 인지상정이겠지만 이런 기원이 비단 우리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듣고 나서 나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70여 평방미터의 할머니 유택을 말끔하게 단장을 해 놓고 돌아오면서 할머니의 평안을 비는 아내의 소망이 오래 지탱하기는 어렵다는 예단에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졌습니다. 다른 지방과는 달리 추석 성묘를 음력 8월 초 하루를 전후 해 벌초로 대신하는 제주도의 독특한 성묘 문화가 최근 일고 있는 장묘문화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제주도의 벌초 문화는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조상의 묘소 벌초 때문에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학교마다 벌초방학을 하고 먼 타관에 나가 있던 후손들까지 동참해 이 기간에 벌초 인력만 35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입니다. 말 그대로 분묘마다 벌초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채로운 풍경이 연출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짧게 유추해도 고려 이후 효 사상을 바탕으로 한 유교문화의 흐름에 풍수지리설이 접목되면서 대 물림하는 벌초 문화는 유구한 풍습으로 자리 매김 됐습니다. 이 전통이 수백년을 잇는 동안 한라산을 축으로 386개의 오름 정상에서 해안바위틈까지 터 잡은 묘지는(유연분묘 36만여 기, 무연분묘 14만 기)48만여 기로 조사됐습니다. 분묘 면적만 1천 3 백 30만여 평방미터로 제주도 전 면적의 1.3%를 차지한 셈입니다. 

벌초 문화의 원류를 짚어보면 오름에 기대어 살다 오름으로 돌아가는 섬 특유의 지역주민 공동체 의식에 지역적 유대감을 다지는 정체성으로 면면히 이어졌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불변일 것 같았던 분묘 조성 의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산자와 죽은 자의 동일성, 자연과 인간의 합일사상에 기초한 조상 숭배가 새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는 변화의 조짐이 구체화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장문화의 전통이 좁은 땅을 더 좁게 하고 바쁘게 사는 후손들에게 짐을 지워 준다는 공감대 형성에 납골당이 들어서 화장을 희망하는 사람도 늘고 게다가 수목 장(樹木 葬)까지 원하는 망자의 유언도 적지 않게 거론되는 게 요즘의 상황입니다. 거기에 장묘문화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에 40% 이상이 화장(火葬)을 선호하는 추세이고 기 분묘도 화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경향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낡은 풍습은 버리고 국토보존과 후손들의 현재적 삶을 실리적으로 꾸리자는 거지요. 딱히 어느 누구, 혹은 후손들을 탓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섬의 일부이던 무덤들이 이장(移葬)이나 합장(合葬)을 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더 없는 안쓰러움입니다.
또 , 종교보다도 거룩하게 조상에 의지하던 아내, 벌초 뒤에 "할머니의 평안 하십시오"를 읊조리던 아내에게 질정할 수 없는 실의의 빚을 남겨야 한다는 게 더 큰 아픔입니다. 

아내와 더불어 봉분 위에, 제절에 할머니가 생전에 근심하던 마음의 끈처럼 날아드는 풀잎들을 다시 한 번 걷어 낸 다음 묵념을 하고 유택을 뒤로하면서 나는 이 같은 벌초가 몇 해나 더 유지될까 하는 자문에 찔릴 것 없는 죄스러움으로 가슴 저림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김양수 : 현재 JIBS(제주방송)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78년 KBS에 입사한 후 보도본부 문화부차장, 제주총국 보도국장, 제작 부주간, 시사보도팀장을 역임했다.1990년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바람도 휴식이 그리울 것이다’ 등 4권의 시집을 냈고 국제펜클럽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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