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사진_(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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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사진

김창식

2014년 05월 30일 (금) 01:38:41

내일 모레가 6월의 시작입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죠. 나라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을 예우하여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기간이기도 하죠. 그러니 6월은 연중 가장 ‘숙연한 달’, 옷깃을 여미게 하는 달입니다.

대문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도랑을 따라 유년의 소롯길을 걷습니다. 골목 끝에 이르러 언덕바지로 한 걸음 내딛으면 거짓말처럼 운동장이 펼쳐져요. 공설운동장이라기보다 넓은 공터였지만요. 잡풀과 키 작은 숲으로 울타리가 쳐 있는 곳이었죠. 그곳에 ‘운동장할머니’가 살고 계셨답니다.

당시 어른들을 호칭할 때 불경스럽게도 함자를 따 이름을 부르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출신 지역이나 사는 곳, 직업을 따다 호칭했죠. ‘동밖(동구밖)할머니’ ‘곡자회사할아버지’ ‘능주숙모’처럼요. ‘운동장할머니’는 ‘고흥녹동댁’이라 불린 친할머니의 막내 동생이었어요. 대가족의 일원인 우리 할머니나 둘째인 ‘냇가집할머니’와 달리 식구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항상 힘이 없고 슬퍼 보였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가끔 할머니를 찾곤 했지요. 집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무어 할머니를 위로한다든가(애가 뭘 알겠어요?) 그런 기특한 이유가 아니라 할머니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나를 보면 “입이 심심하냐?”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군님석(주전부리)’을 건네주곤 하셨거든요. 양 끝을 포장종이로 오므린 ‘비과’, ‘눈깔사탕’, ‘센베이’, ‘오꼬시’ 같은 간식거리였죠. 아직도 그때의 그 황홀한 맛을 잊지 못합니다.

점방에 딸린 살림방은 좁고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어요. 귀퉁이 궤짝 위에는 빛바랜 흑백사진이 벽에 기대 놓여 있었답니다. 천으로 만든 헬멧으로 귀를 감싸고 쌍안경은 이마 위에 빗댄 조종사 사진 말이죠. 사진 속 인물이 젊기도 했지만 초롱초롱한 입매와 꽉 다문 입술이 강한 인상을 주었어요. 헌데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소슬한 바람이 살갗에 끼쳐오곤 하더라니까요. 유현(幽玄)함이나 비장미 같은 것이 어린 나에게도 전해졌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사진을 그윽이 바라보거나 쓰다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눈물이 그렁그렁했어요.

사진 속 젊은이는 내겐 이모부가 되는 사람으로 보통 유명한 조종사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당시는 그냥 흘려들었죠. 아래 내용은 나이가 들면서 관심이 가고 해서 어른들에게도 다시 여쭈어 보고 자료 검색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인터넷 신문들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더군요.

“1926년 12월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출생한 이상수 공군 중위(당시 계급)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신예 전폭기 F-51을 조종, 총 21회 출격하였다.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를 위한 통영상륙작전에서 해병대를 지원해 4척의 적 보급선과 400여명의 적군을 살상했다. 그밖에 북한의 신의주, 용암포, 곽산, 중화, 신안주, 만포진 등지로 출격하여 목표물을 공격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이상수 중위는 평양 시내 김일성 관저와 북한군 사령부를 폭격하였고 다시 북한군사령부의 별관 건물을 목표로 출격하던 중 적의 포화에 피탄되어 산화했다. 이에 정부는 이상수 중위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해 1951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고 대한민국 공군 출격 조종사 중 전사자로는 유일하게 2계급 특진의 영광을 주어 공군 소령으로 진급시켰다.”

그렇답니다. 그 사진 속 조종사가 ‘이상수(李相垂) 소령(1926~1950)’입니다. 국가보훈처와 전쟁기념사업회 선정 ‘10월의 호국인물’이기도 하며, 용산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 그의 흉상이 다른 6ㆍ25 전쟁 영웅(17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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