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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는 떠나고
방석순 2007년 09월 07일 (금) 08:01:04
비 내리는 가을날 오후 메타세콰아어가 터널을 이룬 양재천 뚝방 옆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던 중이었습니다. 래디오 방송 진행자가 파바로티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신장 기능이 정지되고 의식불명의 상태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파바로티. 하늘이 내린 목소리를 가진 우리들 시대의 가장 훌륭한 테너 가수입니다. 엄청난 거구를 이끌고 나와 오케스트라의 반주를 꿰뚫는 천상의 목소리로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는 가쁜 숨을 누르고 하얀 손수건으로 입술을 축이며 두 손 모아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요. 늘 붙어 다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네가 가장 좋아하던 사람이 떠났다네.”
“그래? 조금 전 위독하단 얘길 들었었는데…”
저 멀리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평생 눈길 한 번 마주쳐본 일 없이 세상을 떠난 그의 부음이 마치 의지하던 외삼촌을 떠나보낸 것처럼 마음을 허전하게 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는 내가 가장 기쁠 때 내 옆에서 햇살처럼 밝은 목소리로 축하해 주었고, 내가 가장 슬플 때도 내 곁을 지키며 바다 같이 넓은 목소리로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이미 내 마음의 친구였던 것입니다.

토스티의 ‘사월’, ‘작은 입술’, 가스탈돈의 ‘금지된 노래’, 푸치니의 ‘그대의 찬손(라 보엠)’, 베르디의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일 트로바토레)’… 그의 폭넓은 레퍼토리는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열정적으로 가슴을 헤집고 들어왔습니다.

좋은 음악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합니다. 깊고 순수한 감정을 갖게 합니다. 너무 좋은 음악을 듣고 나면 공연히 슬픈 생각이 드는 이유, 까닭모를 눈물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일 겁니다. 음악은 가라앉은 마음을 하늘높이 띄우기도 하고, 격해진 마음을 바다 속처럼 가라앉히기도 합니다.

기악과 성악을 차별지어 이야기하는 음악 애호가도 더러 보았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조화되고 정제된 음악을 거친 인간의 목소리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의 음성은 악기와는 다른 독특한 색깔이 있어 좋습니다. 저마다 다른 음색과 창법이 있어 더 흥미롭습니다. 기악 연주보다 더 다감한 낭만을, 더 깊이있는 사색을 전해 줍니다.

같은 곡이라도 스테파노의 노래, 코렐리의 노래, 파바로티의 노래, 도밍고의 노래가 주는 감흥이 각기 다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카타리’를 스테파노보다 더 감칠맛 나게 부르는 가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불꺼진 창’은 단연 코렐리입니다. ‘그라나다’는 도밍고가 제격이지요. 그러나 아무도 푸치니의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파바로티처럼 부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파바로티 자신도 그 노래를 가장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오늘 웨일즈의 청년 폴 포츠는 어떤 상념에 잠겨 있을까요. 휴대폰 외판원에서 벼락 스타로 벌떡 일어선 그는 꿈을 심어준 우상 파바로티에게 아마도 ‘네순 도르마’로 조의를 보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35년 10월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노래를 좋아하는 빵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파바로티. 1962년 푸치니의 라보엠으로 데뷔한 이래 40여년 동안 변함없이 맑고 투명한 음색, 높고 풍부한 음성으로 오페라와 칸초네를 불러 전 세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0년 로마에서의 월드컵 전야제 이후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의 ‘스리 테너’ 공연은 옮겨가는 곳마다 클래식을 멀리하던 이들조차 마다하지 않는 인기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파바로티가 떠난 다음 세대의 ‘스리 테너’는 누구일까요. 로베르토 알라냐? 호세 쿠라? 롤란도 비야손? 열정만 가득한, 아직은 덜 영근 이 젊은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오히려 ‘스리 테너’에 대한 추억, 파바로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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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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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ma (208.XXX.XXX.66)
Wow! That's a raelly neat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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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3 20:00:00
0 0
바파로티 (211.XXX.XXX.29)
오늘 고교동창들이 등산을 끝낸뒤에 한 친구의 제의로 구반포의 고전음악카페에서 바파로티 추모 음악감상회를 열었습니다. 낡은 LP판으로 별은 빛나건만을 들었습니다. 거장의 죽음의 무게가 몸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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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8 00:24:3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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