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는 왜 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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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는 왜 우나

김홍묵

2015년 01월 02일 (금) 01:07:27

뻐꾸기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가슴이 후들후들 떨렸다.
‘뻐꾸우욱 뻐꾸우욱’ 하는 소리도 나고,
‘뻐꾹 뻐꾹’ 마디마디를 끊어서 우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 것이나 다 내겐 서글픈 소리였다.
그 중에도 ‘뻐꾸우욱’ 하는 마디 없는 소리가 더 마음을 흔들었다.
뻐꾸기 세상에도 무슨 원통한 일이 있고,
억울한 일이 있고 슬픈 일이 있는가 봐.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저리 섧게 울랴….

소설가이자 시인인 최정희(崔貞姬 1921~1990) 작품의 한 구절입니다.

세밑(2014년 12월 22일) 혹한에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그 해산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보충의견으로 안창호 조용호 두 재판관이 뻐꾸기와 뱁새의 행태를 거론해 문득 시인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시인이 미리 통진당 해산을 예측했으랴만 원통하고 억울하고 슬픈 뻐꾸기 울음소리가 더없이 서럽게 귓전을 울립니다.

두 재판관은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키지만,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과 새끼를 모두 밖으로 밀어낸 뒤 둥지를 독차지하고 만다”며 “뻐꾸기 알을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한 뱁새는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게 되지만, 그대로 둔 뱁새는 역설적으로 자기 새끼를 모두 잃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통진당(뻐꾸기)이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추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그 전복을 꾀하는 것은 우리(뱁새)의 존립과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는 대역(大逆)행위”라고 적시하고 “이에 대해서는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준엄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뻐꾸기의 행태는 기원전 4세기부터 관찰돼 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인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는 “뻐꾸기는 자신의 둥지를 짓지 않고, 새끼도 직접 기르지 않는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뻐꾸기는 정상적이거나 생산적인 동물로 비치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곽공(郭公) 길국(鴶鵴) 시구(鳲鳩) 포곡(布穀) 획곡(獲穀)으로도 불리는 뻐꾸기는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 등 온대지방에 널리 서식하며, 우리나라에는 5~10월에 찾아오는 여름 철새입니다. 야산 들녘 잡목림 등에서 살며 곤충을 주로 잡아먹습니다. 5월 하순부터 8월 상순 사이에 12~15개의 알을 낳습니다.

은근하고 애절한 울음소리 외엔 외견상 두드러진 특징도 없는 뻐꾸기가 인간의 관심을 끈 건 탁란(托卵)이라는 행위 때문입니다. 산란기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외에도 개개비 휘파람새 산솔새 딱새 지빠귀 같은 작은 숙주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는 숙주 새 어미가 부화시켜 뻐꾸기 새끼가 태어나도 먹이조차 잡아다 주지 않습니다.

탁란 습성 외에도 뻐꾸기는 태생적으로 살생 DNA를 가진 것 같습니다. 뻐꾸기가 뱁새 등 숙주 새의 둥지에 한 개의 알을 낳기 전에 숙주 새 알 한 개를 밖으로 밀어 떨어뜨립니다. 집주인이 알의 수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기만전술입니다. 뻐꾸기는 여러 숙주 새 둥지에 한 개씩 알을 낳고는 주인이 오기 전에 날아가 버립니다.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가 맨 먼저 하는 일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숙주 새 알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2주쯤 지나면 어미 뱁새의 3배 크기로 자라는 새끼 뻐꾸기는 부화한 뱁새 새끼마저 밖으로 차버리고 둥지를 독차지합니다. 알도 품지 않고 먹이도 잡아 주지 않는 제 어미한테 코치를 받았다고 볼 수 없는 생래적 살생 행위입니다.

이렇듯 무위도식하면서도 뻐꾸기가 종족번식을 계속하는 것은 생존경쟁에서 다른 숙주 새보다 한 걸음 빨리 진화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미 덩치에 비해 뻐꾸기 알은 작아 숙주 새 알과 비슷한 크기에다 색깔과 모양도 비슷합니다. 체온(섭씨 40도)이 높아 뱃속에서 반쯤 부화하기 때문에 항상 숙주 새 알보다 먼저 깨어납니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관건입니다.

그렇다면 뱁새 같은 작고 힘없고 덜 떨어진 숙주 새들은 어떻게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을까요? 다행히 그들도 적자생존을 위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뱁새의 경우 80% 가까이는 뻐꾸기 알과 같은 푸른색 알을 낳지만 20%가량은 흰색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또 뻐꾸기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거나 새끼를 굶겨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는 농약 사용 등으로 뻐꾸기 개체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더딘 숙주 새의 진화보다 인간의 영농방식 변화가 생태계 변혁을 가져온 것입니다. 어떤 조류학자는 뻐꾸기가 우는 것은 숙주 새가 새끼들에게 먹이 줄 시간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자기 새끼를 굶기지 말라는 경보이겠지만.

‘뻐꾹 뻐꾹 뻐꾸기의 노래가
뻐꾹 뻐꾹 은은하게 들리네…’

어릴 적 부르던 동요 가사나 뻐꾸기시계의 소리는 은은하고 애처롭게 우리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러나 오는 봄 우리는 또다시 뻐꾸기 노래를 들을 수 있을지, 아니면 어떤 울음소리로 들릴지, 잔뜩 찌푸린 겨울날씨처럼 스산한 기분입니다.

오마리 (24.XXX.XXX.229)

뻐꾸기가 그런 새였군요. 전 그저 아름답게 우는 새로만 알았습니다. 오빠생각 이란 노래에도 나오는
뻐꾸기여서.... 낭만이 확 달아나버렸으나 공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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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4 23: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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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25)

을미년 새해 첫 자유칼럼 감사합니다.
김 필자님을 비롯한 모든 필진님 여러분 새해 복 많아 밪으십시오.<^^!

이리하여 동화적이고 낭만적으로 들리던 이름과 소리의 주인공 뻐꾸기는 무위도식에 살생DNA까지 가진 나쁜 장본인 새로 자리매김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자연 생태계와 우리 사회 현상은 서로 비유는 할 수 있지만 똑 같은 잣대를 갖다댈 수는 없겠지요. 자연생태계에서는 뱁새 보호를 위해 뻐꾸기를 축출해버릴 수는 없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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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2 09: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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