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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것, 오래된 것, 빌린 것
신아연 2015년 01월 27일 (화) 00:50:59
지난 주말 아주 흥겨운 ‘혼인 잔치’에 다녀왔습니다.
‘결혼식’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혼인 잔치’라고 말하는 이유는 즐겁고도 ‘쇼킹한’ 격식 파괴로 성경 속의 가나안 혼인 잔치를 연상케 하는 흥겨운 어우러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례 없는 결혼식, 남녀평등의 상징으로 신랑 신부 동시 입장, 폐백 생략, 혹은 나중에 하기, 저녁 시간대의 예식 등, ‘찍어내는’ 결혼식 모습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벤트 대행업체를 통해 신랑 신부를 주인공으로 한바탕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파격’이 지나쳐 ‘과격’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할까요?

하기사 우리 전통 혼례의 자리를 대신한 서양식 결혼 문화 자체가 이미 형식과 격식 파괴의 결과이니 거기에 다소 변형을 가한다고 대수로울 것도 없겠지요.

눈에 익어 자연스럽달 뿐이지 신부 아버지가 신랑에게 딸을 ‘인계’하는 것과, 프랑스처럼 신랑이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입장하는 것도 우리 처지에서는 둘 다 ‘빌려 입은 옷’에 불과합니다. 다만 오래 전에 빌려 입어서 익숙한 옷과 어색한 옷의 차이일 뿐.

같은 이유로 질투하는 악귀로부터 신부를 보호하는 것에서 유래한 미국의 ‘들러리’ 풍습이 우리 결혼식에 아직 차용되지 않은 것, 호주처럼 혼인 신고에 해당하는 절차를 식 진행 과정의 일부로 끼워 넣지 않은 것도 어차피 우리 처지에서는 남의 문화일 뿐, 가져다 쓰면 쓰고 말면 말 일이지요.

좀 더 부연하자면 결혼식의 신성함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하객들은 신랑 신부에게 말을 걸 수 없도록 한 풍습이나, 축의금 대신 신랑신부가 받고 싶거나 필요한 살림 목록을 건네받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선물하는 것 등도 우리에겐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랑 신부를 식장에서가 아니면 언제 또 만나 덕담을 건넬 것이며, 기왕 하는 것,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제일이니까요.^^

폐백으로 간소화, 모형화된 형태 말고 혼인식의 ‘몸통’으로 우리 전통 혼례가 복원되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지만 너무나 요원한 일이겠지요.

이야기가 너무 곁가지로 갔습니다. 다시 지난 주말의 혼례로 돌아가 ‘쇼킹 파격’의 하일라이트를 말씀 드리자면 일단 주례 없는 결혼식까지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어 신부 아버지가 성혼을 선포하고, 신랑 아버지의 엄숙함과 유머가 적절히 조화된 ‘감각 있고 느낌 있는’ 축사로 박장대소를 이끌어 내는가 싶더니, 이어진 신랑 아버지의 축가는 단박에 그날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며' ‘대박전율’을 일게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신랑 아버지가 축가를 부르는 것이 요즘 새로운 유행이라는 말을 듣긴 들었습니다.)

한의사라는 직업이 무색하리만치 평소 가수를 여럿 '울리던' 노래 실력으로 나훈아의 <사랑>을 개사하여 아들 며느리의 이름을 넣어 진솔하고 절절하게 내외의 사랑과 해로를 당부하는 모습이라니! 아, 그 파격적 감동의 여운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신랑 측 혼주가 잔치 분위기를 주도하며 흥을 돋우어 놓으니 하루 온종일, 아니면 보통 저녁 9시에 시작해 밤새 이어지는 외국처럼, 저녁 6시 30분에 시작된 예식이 늦은 밤까지 잔치로 흥겹게 이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혼인 예식이야 어떻든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을 겁니다. 두 사람이 오손도손 잘 살아 주었으면 하는 것, 금슬 좋은 부부로 오래오래 함께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말입니다. 부모 자신들의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않았다면,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중턱에 파경을 맞았다면, 그러면 그럴수록 자식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선가는 신부가 결혼식 치장을 할 때 ‘새것, 오래된 것, 빌린 것’을 혼용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웨딩드레스가 새것이면 베일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쓰고 웨딩 슈즈는 친구에게 빌려 신는 식이랍니다.

자기 스스로의 판단과, 먼저 살아 본 사람의 조언과, 타인의 기대 등을 적절히 조화하여 지혜로운 결혼 생활을 이끌 것을 상징적으로 호소하는 신부를 향한 ‘결혼의 민낯’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혼에는 고통이 있지만, 독신에는 행복이 없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생각납니다. 지혜로울 수만 있다면 결혼 생활에서 ‘고통 있는 행복’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No pain, no gain’을 명심할 일입니다. 혹은 ‘pain’만 있고 ‘gain’은 없는 결혼 생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연애의 무덤이 결혼’이 아니라 ‘고통이 결혼의 무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은 인륜대사’라고 하지만 이집트에선 ‘결혼은 절반의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부부 화합의 길이 오죽 험난하고 지난하면 신앙생활에 비유를 했을까요?

그럴수록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이 담긴 개사된 나훈아의 <사랑>을 잊지 말길 바라며, 신랑, 신부, 행복하게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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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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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형식이 내용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형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럴수록 형식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정성을 쏟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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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 21: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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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25)
ㅎㅎㅎ 신부 측 집안 기 안 죽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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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10: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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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시종 화기애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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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 21: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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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 (112.XXX.XXX.157)
전통혼례에 한표.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쉽게 만나고 쉽게 결혼하니 쉽게 헤어지는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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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07: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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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전통혼례를 완전히 복원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폐백 만으로는 반의 반쪽도 제 역할을 못하죠. 전통 혼례가 부활된다고 헤어짐이 줄어들 건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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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07: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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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성 (210.XXX.XXX.50)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결혼식 풍경이 선합니다. 많이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여러 방면에서 느끼게 됩니다.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이 담긴 나훈아의 <사랑> 개사를 기억하신다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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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8 14: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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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제가 언제 그 분을 뵈면 가사를 얻어오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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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07: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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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여우 (112.XXX.XXX.157)
자기 스스로의 판단과, 먼저 살아 본 사람의 조언과, 타인의 기대 등을 적절히 조화하여 지혜로운 결혼 생활을 이끌 것을 상징적으로 호소하는 신부를 향한 ‘결혼의 민낯’이 아닐까 싶습니다. - 오늘 중요한거 배웠어요. 저 자신은 아니지만 누구에겐가 꼭 알려주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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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8 11: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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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공감 감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해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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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0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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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12.XXX.XXX.157)
NO pain, no gain ! 명심하겠습니다.
파격적인 결혼잔치에 신랑, 신부 주객이 얼떨덜 했겠군요. 그래도 그날 만큼 가슴 벅찬날은 없겠지요? 좋은 날 행복하게 잘 살겠지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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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21: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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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아주 재미있고 시종일관 웃음바다. 날씨마저 아주 포근한. 멋있고 흥겨운 결혼식이었습니다. 딱 그날처럼 일생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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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07: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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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221.XXX.XXX.177)
잃어버린 반쪽을 맞아 온전한 하나를 만드는 결혼은 유의미한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형화되고 천편일률적인 주례 주도의 결혼식 보다는 하객들과 가족들의 진정한 축하를 받는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는게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축가! 멋있겠죠?
신랑 신부의 어렸을 적 사진전시도 좋겠고 듀엣으로 하객들에게 들려줘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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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18: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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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결혼식 형태가 점점 달라지고 다양하게 가미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참에 전통 혼례가 부활했으면 하는 생각도 그래서 들었습니다. 기존의 예식장으로는 만들어내기 힘든 분위기일테지만요. 어쨌든 가족과 친지의 참여가 점차 늘어나는 이벤트는 보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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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22: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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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맨 (112.XXX.XXX.157)
새겨들을 이야기네요. 별생각없이 해오던대로 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파격은 용기있는 사람만이 할수있습니다. 저는 이벤트를 좋아하지만, 사람을 힘들게하는 이벤트는 싫어합니다. 특별한 사이도 아닌 사람들에게 청첩장 돌리는 행위가 거기에 속하겠지요. 하지만 누구의 결혼식도 저를 초대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지만, 정작 저희집안 대사에는 극소수만을 모시지요. 그것이 저의 성격인것 같습니다. ㅎㅎ 모르는 사람이지만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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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12: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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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그렇게 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초대에는 기꺼이 응하되 남들에게는 되도록 부담 안 지우기. 한국은 예식 등 행사가 보통 많은 게 아니더군요. 저야 뭐 갈 곳이 별로 없지만 다들 어떻게 얼굴 내밀고, 봉투 내밀고 다니는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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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07: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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