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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김창식 2015년 06월 25일 (목) 00:28:54
지난 번 자유칼럼(2013년 6월 19일)에 ‘사진 속 얼굴’이란 글을 써서 한 문우의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입대해 민간인 유격대를 이끌고 싸우다가 임진강 북단 강화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 때 전사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유복녀로 태어난 문우가 성장하여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여 성과를 일구어낸 과정입니다. 문우인 P씨가 직접 쓴 글을 중심으로 전말기를 재구성해봅니다.

ㅡ 강화 군청에 도움을 요청해 지역에 거주하는 유격대 전우들을 수소문하여 만났다. 대원들은 죽은 전우의 딸을 기특하게 여겼다.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묻었다는 옛 전우를 만났다. 인천 시립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그는 노쇠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가물가물한 기억을 헤집어 묏자리로 여겨지는 지점으로 인도했다.

애통한 마음으로 봉분 없는 묘에 술 따르고 절을 올란 후 흙을 한 줌 퍼왔다. 햇볕에 말려 창호지에 쌌다. 죄송한 마음으로 유골함에 담아 아버지의 이름을 새겼다. 그렇게라도 고향 선산 조부모님 옆에 묻어 드릴까 하고 준비해두었다. 결국 개인 힘으로는 유해를 찾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연락이 닿았다. 감식단 책임자는 숭고한 호국보훈사업인지라 마지막 한 분까지 모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2009년 10월, 감식단이 강화지역으로 와서 개토제(開土祭)를 지낸 후 굴토를 시작하였다. 그들도 직계 가족이 있다는 소식에 고무되어 의지를 굳혔다. 발굴팀 장병들은 금속탐지기를 비롯한 삽, 호미, 붓 같은 장비를 메고 험한 산 현장에 도착해 굴토를 시작했고 몇 시간 후 뼈로 추정되는 개체를 수습했다.

한편 유해발굴감식단에서는 나에게서 DNA 감식을 위한 샘플(혈액과 타액)을 채취했다. 과학적으로 유전자 감식을 하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했다.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기다리던 2011년 4월, 감식단으로부터 아버지와 나의 DNA가 일치한다는 연락이 왔다. 왈칵 가슴이 복받쳐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수십 년간 참았던 설움이 통증으로 치밀어 올랐다.

며칠 후 밤잠을 설치며 기다리던 내게 감식단 책임자가 확인서를 들고 찾아와 직접 전해주었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점심 대접까지도 사양하는 관계자들의 등에 대고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이 감사 표시의 전부였다. 아버지의 유해는 2011년 11월, 대전 국립현충원에 모셨다.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안장식을 거행했다.

60여 년에 걸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랑스러움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늦었으나 이제는 외롭지 않을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공적을 기려 훈장을 받아드리고 싶었다. 아버지의 전투 기록과 서류를 준비하여 국방장관님께 서훈청원서를 올렸다. 2003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전쟁유격전사’에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영웅적인 전과가 신청서에 포함되었다.

2012년 6월 27일, 1사단 사령부 연병장 단상 수여식 자리에 앉았다. 그날 아버지는 일병에서 상병으로 진급하였다. 나는 아버지 대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영예로운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군 지프에 승차하여 사병들의 열병식을 사열했다. 사단장은 나의 목에 훈장을 걸어주며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습니다"라고 위로해 주었다. ㅡ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우리만이 일군 것이 아닌 듯합니다. 전란을 치르며 굳건하게 나라를 지켜 낸 이름 없는 순국선열과 국군용사의 피와 땀, 고귀한 희생이 배어 있는 것이니까요. 문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와 장병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애국자가 아닌가 하는 감사한 마음도 들었답니다. 군인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고, 국가와 국민은 군인의 명예를 지켜주었으니까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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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58.XXX.XXX.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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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21: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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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이 사연의 주인공(원저자)인 문우님이시군요.
현충원 참배기는 또 다른 깊은 감동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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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10: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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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121.XXX.XXX.90)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이야기가 있는 줄 정말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찾으려한 그 분도 훌륭하고 애써주신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 분들에게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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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17: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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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유해발굴감식단의 노력에 비해 성과는 미흡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유족들이 DNA 자료 제출을 꺼려서라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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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19: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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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태균 (222.XXX.XXX.91)
김창식 선생 글이 마음에 들어 애독합니다. 근데 오늘 찡한 글에선 '한국전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당연히 '6.25전쟁'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외국인이라면 몰라도. 더 정확히 말하면 '6.25 남침전쟁'입니다. 용어에 신경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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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7 18: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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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감사합니다, 맹태균 선생님. 다만 공식 명칭이'6.25 한국전쟁'이고
'한국전쟁' 또는'6.25 전쟁'도 혼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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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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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술시 (117.XXX.XXX.104)
국민의 이름으로 관련된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국가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길이지요. 많은 국가가 이 부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진행하고 있지요.우리는 특히 성장하는 애들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더 많은 공지를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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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6 11: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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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비술시 선생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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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18: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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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안 (181.XXX.XXX.57)
안녕하세요? 외대 서어과 65학번으로 현재 (일시적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늘 컬럼을 받아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시는 것 감사드리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한가지 '아버지의 이름'과 그 전편인 '사진 속 얼굴'이 우리 세대엔 찡한 내용이어서, 동기생이기도 한 아내에게 읽게 했고, 마침 이곳 시간으로 6. 25여서 집사람이 경북여고 36회 카페에다 올렸습니다. 무단 전재가 금지되어 있는 줄 알기에, 이렇게 독자가 있고, 그 독자의 아내가 자신들의 폐쇄된 카페에 올렸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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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6 09: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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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반갑습니다, 고부안 선생님. 65학번이면 저보다 선배님이십니다.
저는 독어과 66학번이거든요. 복도나 운동장에서 조우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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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18: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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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58.XXX.XXX.58)
자유칼럼을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자유칼럼그룹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칼럼을 두루 널리 읽히고자 운영되고 있습니다. 상업적, 영리적 목적이 아니라면 일반 독자 개개인의 블로그, 카페에 전재되는 것을 전혀 문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자유칼럼 전재 기준을 알려드리고자 필자 본인보다 앞서 답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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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6 10:33:39
0 0
차덕희 (121.XXX.XXX.51)
눈물이 어리고 콧물도........
많이 늦은 감이 있어도 훈훈함이 느껴지는데요.
대한 민국이 일찍 서둘렀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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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16: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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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차덕희 선생님. 공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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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18: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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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길 (119.XXX.XXX.74)
이렇게 흐뭇하고, 기분좋고, 기쁜 눈물나는 이야기도 있구나. 우리나라에.
아버님을 잘 모신 그 분께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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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15: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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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이중길 선생님, 감사합니다. 절실한 마음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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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18: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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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근 (211.XXX.XXX.200)
먼저 조국을 지키기위해 헌신 전사하신 문우님 부친의 명복을 빕니다.
깊이 감사드리고, 한편 사죄드립니다.
지금서야 시신을 수습한 후손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이름 모를 산하에 뭍혀 잠드신 선배전우님들의 시신을
단 한분 까지라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 벌여야합니다.
이게 정신 제대로 박힌 국가와 국민이 할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안계셨다면 우리는 김정은 밑에서
지금쯤 고사총에 맞아 죽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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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15:00:42
0 0
김창식 (110.XXX.XXX.252)
최석근 선생님 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우에게 최석근 선생님의 위로와 댓글 내용을 잘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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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18: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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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남 (112.XXX.XXX.25)
우리 나다도 제대로 잘 하고 있군요. 필자님 문우님의 글에 따르면요.
아주 당연한 것이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니 그 동안 참 많이 부끄러웠지요. 우리가 그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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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0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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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그렇습니다, 꽃남 선생님. 당연한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부끄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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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18:19:48
0 0
강돈영 (121.XXX.XXX.23)
감동입니다. 머리가 맑아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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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08:50:45
0 0
김창식 (110.XXX.XXX.252)
강돈영 선생님, 공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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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18:21:0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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