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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재해석(2)
김창식 2015년 10월 14일 (수) 03:50:34
지난 9월 21일자 ‘시조의 재해석’에 이은 두 번째 글입니다. 당시 양사언, 이방원, 정몽주의 시조를 다루었죠. 오늘은 선조 때의 문인 임제(林悌, 1549~1587) 백호(白湖)가 주인공입니다.

임백호는 조선조 최고의 풍류객이요, 로맨티스트라 일컬을 만합니다. 특이하게도 양반 계층과 기생 간에 오감직한 소재로 시조를 썼어요. 저 유명한 ‘청초 우거진 골에’는 임백호가 평안부사로 부임해 갈 때 개성의 황진이 무덤가에 들러 잔을 붓고 읊었다는 시조입니다. 시조의 전문을 보죠.

#4.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느냐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위 시조를 한마디로 간추리면 “어쩌다가!”입니다. 임백호는 그 일로 파직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설마 그러기야 했겠어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호방하다고 해야 할지, 개념이 없다고 해야 할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해야 할지? 미인과 천재는 단명(短命)이라, 임백호 또한 700 여 수의 시를 남기고 39세에 요절했다고 하니 그런 아이러니가 없습니다. “웬일이니!”

황진이(黃眞伊)가 누구인가요? 정사에 나오는 인물도 아니고 출몰연도도 불분명하지만 그녀처럼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인물도 흔치 않을 것이에요. 제도권에 신사임당이 있었다면 재야에는 황진이가 있었다고 할까, 최고의 미모와 재능, 도전정신으로 ‘넘사벽’을 구축한 아이돌이었어요. 황진이는 간단한 캐릭터가 아니니 다음 기회에 상세히 다루려고 합니다.

어쨌거나 임백호의 ‘부박한’ 언행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래 ‘북천이 맑다커늘’은 풍류객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읽는 사람의 얼굴이 뜨듯해지는군요.

#5. 북천(北天)이 맑다커늘 우장(雨裝)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위 내용은 임백호가 기생 한우(寒雨), 즉 ‘찬비’에게 건넨, 고답적이고 은유적인 ‘작업 멘트’입니다. 현대어로 풀이하면 좀 구차스럽긴 합니다. “어떻게 좀 안 되겠니?”이니까요. 한우 또한 보통내기가 아니었나봐요. 아래처럼 화답하는군요. 한우 역시 권력층이면서도 문재 출중하고 델리킷한 성격의 임백호에게 호감을 느낀 듯합니다. 아래처럼 화답하는군요. “얼어 죽긴, 그럼 안 되지!” 그에 뒤따르는 속내는 아마도, “근데 돈은 있어?(쇼 미 더 머니!)”

#6.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로 얼어자리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을 어디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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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59.XXX.XXX.90)
좋은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필이 글의 초보가 쓰는 글이 아닌 것으로 배웠는데 그 시인이 뭔가 착각하신 듯합니다. 안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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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2:39:09
0 0
송신철 (24.XXX.XXX.90)
김창식님
"근데 그좋은 재주를 가지고 왜 하필 수필을 쓰세요? 시나 소설을 쓰시지" 하신 시인이신 여성 문우의 말씀 마음에 닿습니다. 여러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김창식님의 그좋은 재주를 인정하신일이시고, 그재주를 하잖은 부문에
쓰시는것을 아쉽게 생각하시는 일이신데. 여기에서 큰 사회조류를 찾아낸것이
"하필 수필을 쓰세요? 시나 소설을 쓰시지" 한대목으로 시나 소설의 지위가 수필보다 우위이다라는 생각을 엿보고 아하 문학에도 장르의 높낮이가 있구나 처음 알아낸 점입니다.
어찌되었던 김창식 수필가님 시인이신 여성문우께서 그 좋은 재주를 인정하신것으로만 보면 그여성문우께서도 좋은 재주를 가지고 계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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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03:39:38
0 0
식당여자 (125.XXX.XXX.33)
선생님, 한우라 하셔서 저는 그 한우가 이 한우(韓牛)인 줄 알았습죠.(식당 여자란!ㅎㅎ)

후학 가르치시느라 칼럼 쓰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항상 Cheer u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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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8 00:11:19
0 0
김창식 (110.XXX.XXX.252)
韓牛나 寒雨나, 노가리나 코다리나. 후식은 "냉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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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17:28:10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