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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끝
김창식 2015년 11월 04일 (수) 03:07:57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어요.”
“아, 예. 저… 감사합니다만….”

한 문학 단체의 모임에서 합석하게 된 여성과 오고 간 인사말입니다.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 '글 좋다는 말'은 일종의 요식 행위이자 인사 치례입니다. 그래도 기분이야 나쁘지 않았죠. 한편 얼굴이 달아오르며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한 두어 번쯤 만난 듯싶지만 누구인지 이름을 알 수 없어서였지요. 어찌 이런 실례를! 하지만 그런 일이 다른 문우와의 사이에도 간혹 있었던 듯싶습니다.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지 않은 채 글로만 아는 경우이지요.

그렇더라도 그녀에게 누구냐고 단도직입으로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나를 익히 알고 있는 눈치였거든요. 관심을 갖고 내 글(어떤 글인지는 모르겠지만)을 읽어주고 칭찬까지 해주었는데, 그녀를 까마득히 모른다면 말이 안 되죠. 여성의 제 1 표징인 자존심을 건드리는 셈이니까요. 벌집과 여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엄청난 재앙이 들이닥치잖아요. 그럴 땐 별 방법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요령껏(기술적으로) 그녀가 누구인지 탐색해야죠. 그런 시도는 대개 무위로 끝나곤 하지만.

아니면 눈치 안 채게 다른 사람에게 슬쩍 신상정보를 묻는 구차스런 방법도 있죠. 한번은 그랬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답니다.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고 ‘소금깨방정’을 떨며 아는 체를 했다가 머쓱해졌어요. 이름을 가르쳐 준 사람을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는 것이 어릴 때부터 그녀와 함께 자랐다는 그 사람은 그녀의 본명을 가르쳐 주었거든요. 하지만 문단에서 통용되는 공식적인 이름은 다른 이름이었어요. 먼저 등단한 같은 이름의 사람이 있으면 나중 사람은 이름을 바꾸어 사용해야 해요. 그것이 예의이자 불문율입니다.

글머리에 나오는 여성 문우가 잠깐 자리를 뜬 사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이름을 알아내었습니다. 그 여성이 돌아왔을 때 새삼스럽게 아는 체를 하며 반가움을 표시한 것까지는 좋았지요. 이야기가 더 진행되었습니다.

“어쩜 글을 그렇게 쓰세요?”
“아, 예. 그저 그냥.”
“11월의 정서를 잘 짚어내셨는더군요.”

오호라, 그제야 감이 잡혔어요. 수필전문지에 발표한 글인 <11월의 비, 11월의 노래>를 읽은 모양이었어요. 글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11월은 끼인 달, 이도저도 아닌 달, 꿈속의 외침처럼 막막한 달, 안주 없이 들이키는 쓴 소주 같은 달. 눈물은 눈물로 씻고 싶고 울기 시작하면 목 놓아 울고 싶다. 절망의 늪에 한 발을 들여놓고 있을 때보다 절망 속에 침잠할 때가 안온하다. 몸이 고통스러우면 마음의 괴로움이 설 자리를 잃어 견딜 만하니까. 눈물도 얼어붙는 겨울의 명징(明澄)함이 차라리 견디기 쉽다. 그래서 최백호도 ‘가을엔 떠나지 말라’고 노래했나 보다.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라’고.’

“감사합니다. 글을 좋게 봐주셔서.”
대충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시인인 그녀는 또 이렇게 덧붙였어요.
“근데 그 좋은 재주를 가지고 왜 하필 수필을 쓰세요? 시나 소설을 쓰시지.”

근자에 수필 인구가 엄청나게 늘었지만(협회가 추산 등단 수필가 5,000 여명), 문학적 질과 수준은 오히려 저하되었다는 말을 따갑게 듣고 있습니다. 또 수필이 ‘글 좀 아는’ 아마추어가 대충 쓰는 신변잡기나 사회적 명망가나 학자, 또는 타 장르의 예술인이 심심풀이로 끼적이는 만만한 장르처럼 비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차제에 수필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개인의 경험, 사상, 감정, 관념, 관점, 주장을 짧은 산문 형식으로 진솔하게 서술하면 일단 수필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좋은 수필은 허구가 아닌 상상력을 동원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치밀한 사유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며, 문장은 정확하고 일관성이 있어 미적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제 면에서도 한갓 신변의 일이나 일상의 경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유와 근원적인 정서로 나아가야 하지요.

시인인 그 여성 문우와의 착잡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답니다. 위 내용을 굳이 말하진 않았거든요. 같은 글을 쓰더라도 문학적 기질에 따라 걸맞은 장르가 각기 다르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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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25)
<11월의 비>
저는 이 칼럼을 통해서 읽은 거 같은데요?

근데 비슷한 실수를 또 한번 더 하시네요.
이 칼럼을 그 여자 문우 님이 읽으시면 어쩌려고요.^^*

오늘 글은 꽁트를 겸한 같습니다.
허걱! 저도 실수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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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10: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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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그런 난처한 경우가 종종(사실은 자주) 벌어지곤 합니다, 꼰남님.
그 여성 문우님이 읽어도 상관 없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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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16: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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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211.XXX.XXX.19)
참 난감한 경우지요. 저도 시조시인들이 만나는 어떤 모임에서 그런 일을 당한적이 있습니다. 똑같이 여성한테서요. 결국 동문서답 하다 망신만 당했지요' 모르면 물어가라는 속담대호 '실레지만 뉘신지?'했더라면 그런 창피는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례짐작이 망신을 주는 수훈 갑이라는 걸 그 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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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0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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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52)
동병상련의 정을 느낍니다, 이정원 선생님.
글로만 사람을 기억하다 보니 문학모임에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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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16: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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