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아연 공감
     
길을 가며, 글을 가며
신아연 2015년 12월 15일 (화) 04:16:48

올해를 보름 남겨두고 2015년 저의 마지막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과 함께 시작한 한 해를 글과 함께 마무리하면서, 오롯이 글과 함께했던 지난 1년을 되돌아봅니다. 권태와 불안, 생존의 절박함이 무시로 밀려올 때마다 글은 제게 생기와 평안과 따듯한 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한마디로 글은 몸을 가진 나와 영혼을 가진 나를 동시에 보듬고 보살펴 주었던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라고 해서 타인과 겨루고 빼앗고 경쟁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다만 무엇을 먹든 뭐든 먹을 게 있다는 것에, 어떻게 입든 적어도 벌거벗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것에, 어디에 몸을 누이든 눈비와 바람을 피할 수는 있다는 것에 자족하는 마음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내게로 돌려야 하고, 쌓아놓은 지식을 지혜의 이름으로 덜어내야 하며,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과 무시당하기를 오히려 자초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우울해질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나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춰주는 섬세한 북소리와 세상 소음을 구분하여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따금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를 형편없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말입니다. 내가 자신들의 음악에 보조를 맞추고 있지 않기 때문일 테지만, 헨리 데이빗 소로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의 봄을 여름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고맙게도 글쓰기는 제게 그런 자각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타인이 아닌 저의 음악을 듣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무리 지어 달려가던 대열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오롯하고 내밀한 나만의 오솔길로 접어들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올 한 해 저의 가장 값진 결실입니다.
 
희망은 땅 위의 길과도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땅에는 길이 없었지만 희망이 길을 만들었고, 나아가 각자의 희망이 각자의 길을 만들어 간다는 뜻이겠지요. 생명은 희망을 잉태시키는 토양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함께 있게 됩니다. 생명의 특성은 마치 길과 같이, 이어지고 연결되면서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작용에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생명의 본질은 변화함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생명이 생명답기 위해서는 자기 변화를 계속해야 하며, 그러한 자기 변화가 곧 성장이며 성숙입니다. 생명을 받아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가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글을 통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지난 1년간을 그렇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흔히 수행이나 수련을 의미하는 ‘도를 닦는다'는 말도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본래적 삶을 다듬는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인(仙人)과 야인(野人)의 도상에 도인(道人)이 있다고 하지요. 길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저는 글을 지팡이 삼아 붙잡고 성장과 성숙의 길, 희망과 생명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이제 2015년을 뒤로하며 잘 살아 낸 한 해를 자축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궁핍했고 인간적으로 외로웠지만 가난한 몸과 마음을 부싯돌 삼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내면의 화톳불 하나를 피워 올린 한 해였습니다. 그 희미한 온기에 의지해  2016년을 맞이합니다. 비록 단 한 보시기의 밥과 바꾸더라도 정직한 글을 쓰며 정갈한 길을 가기로 마음을 정했으니,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처럼 저도 나름의 발걸음으로 '기적처럼' 새해에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새해 첫 기적> 반칠환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3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인내천 (220.XXX.XXX.246)
오랫만에 들렸습니다
시절이 하수상해 페북 공간에서 좌충우돌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그만 계란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충고(?)가 전혀 고맙지 않으니 언젠가는 바위가 깨지겠죠?
결기 넘치는 비장한 글 잘 읽었습니다
사회적 구조가 한 세상살이를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키려는 베트남이 옳았고 빼앗으려는 미국이 틀렸기에 최강 미국이 패퇴했듯이 바위라고 생각하는 불의한 기득권들이 머잖아 약한 민초들에게 박살날 것입니다!
을미적 거리던 한 해가 저물었으니 내년엔 병신같이 살지 말고 할 소리 하고 쓸 글 쓰며 살았음 좋겠습니다! 홧~팅!
답변달기
2015-12-20 21:22:43
0 0
이동익 (210.XXX.XXX.193)
신아연님의 글을 반갑게 읽었습니다.

어떤이는 날아가고
어떤이는 뛰어가고
어떤이는 걸어가고
어떤이는 기어가고
......

그래도 한날 한시에 새해를 ...
우리의 각자 다른 삶도 ....

새해에도 화이팅 하시고
늘 건강 가운데 생활 하시길 ....
답변달기
2015-12-16 16:33:46
0 0
신아연 (14.XXX.XXX.36)
자기 본성대로 살 수 있는 지혜와 영적 에너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할 것 같습니다. 타고 난대로 살 수 있는 행복을 찾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된 새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5-12-17 09:57:38
0 0
박선숙 (223.XXX.XXX.96)
아름다운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내면의 화톳불 하나
피우며 살고 싶습니다.
답변달기
2015-12-16 10:53:43
0 0
신아연 (14.XXX.XXX.36)
말씀 속에서 따듯한 화톳불이 이미 피워져 있네요. 타인에게 아름답게 말을 거는 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5-12-16 11:49:12
0 0
이정민 (14.XXX.XXX.36)
부싯돌로 불을 켜서 화롯불을 지피겠다는 당찬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와 닿습니다.

온기가 전해오는 글귀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2016년을 맞이하는 신아연님의 작은 소망이 저에게도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모두 따듯한 마음으로 희망의 길을 걸어갑시다.
답변달기
2015-12-16 01:00:46
0 0
초롱이 (120.XXX.XXX.25)
올 한해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답변달기
2015-12-15 23:50:22
0 0
신아연 (14.XXX.XXX.36)
격려해 주시니 내년에도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5-12-16 09:10:57
0 0
김종우 (121.XXX.XXX.50)
좋은 글 감사함으로 잘 읽었습니다.
새해에 더 좋은 글과 따뜻한 마음으로 만나기를 빕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궁핍했고 인간적으로 외로웠지만 가난한 몸과 마음을 부싯돌 삼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내면의 화톳불 하나를 피워 올린 한 해였습니다."
그렇게 정리하셨군요. 어렵고 힘들었지만 백합처럼 청초하고 우아한 님을 그려봅니다. 건강하고 멋진 님의 새해를 위해 기도합니다.
답변달기
2015-12-15 13:28:28
0 0
신아연 (14.XXX.XXX.36)
감사합니다.

인연의 힘을 믿고 세월의 치유를 믿습니다. 그렇게 한 해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잡아주신 손길을 가시로 찔렀다는 회한을 마음의 빚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왕좌왕했지만 길을 찾은 느낌이 비로소 듭니다.

백합은 고사하고 한포기 들풀처럼 이리저리 밟히며 살지만 받은 생명에 감사를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답변달기
2015-12-15 13:53:14
0 0
김종우 (121.XXX.XXX.205)
물론입니다. 생명이 있으니 희망이 있지요.
새해 더 좋은 날들을 기대합니다. ^&^
답변달기
2015-12-20 08:04:12
0 0
김재화 (14.XXX.XXX.36)
지난 한 해 잘 사신 거 축하 드립니다~

더구나 좋은 글 쓰며 사셨으니,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겠습니까!
답변달기
2015-12-15 12:40:35
0 0
신아연 (14.XXX.XXX.36)
고맙습니다. 글이 복이라 하시니 기쁩니다.
답변달기
2015-12-15 13:47:09
0 0
김숙자 (125.XXX.XXX.85)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너무 마음에 와 닫는글이였습니다.
답변달기
2015-12-15 10:25:21
0 0
신아연 (14.XXX.XXX.36)
고맙습니다. 독백같은 글에 공감해 주시니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답변달기
2015-12-15 13:32:46
0 0
박병모 (210.XXX.XXX.250)
한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그 길을 관조해보는 시간을 갖게끔 해주는 글로 다가옵니다 ,
정직하게 내 분수를 지키며 글을 지팡이삼아 살았다는 말에공감하며 나만의 오솔길을 찿은걸 축하드립니다.
비그친후 추워진다하니 감기조심 하세요~
답변달기
2015-12-15 10:23:40
0 0
신아연 (14.XXX.XXX.36)
한국에서 새로 살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다짐한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훈련을 하겠다는 것이 그중 하나이고,

배고파서 밥 먹는 걸 두고 욕심부린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딱 고만큼만 세상에 손 벌리겠다 결심한 것도 있습니다.

작은 물질이라도 형편 껏 남들과 나누겠다는 것도 제게는 중요한 다짐입니다.

그 세가지를 가지고 길을 떠나니, 친절하고 따스한 사람들을 이미 만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격려해 주시고 불끈 용기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5-12-15 13:45:27
0 0
이정원 (203.XXX.XXX.62)
세상 몸부림친다고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수단이 다른데도 도착시간은 같다는 세월의 아이러니를 깨닫고 갑니다.
세모에 더욱 건강하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로 마음의 양식을 나무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5-12-15 10:17:37
0 0
신아연 (14.XXX.XXX.36)
그 지혜를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반 시인의 시는 깜짝 놀랄 통찰과 지혜를 담고 있는데 저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아파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따듯한 격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5-12-15 13:35:11
0 0
꼰남 (112.XXX.XXX.25)
외롭고 가난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지성이 함께 했다면 참으로 행복했을 거 같고요.
올 한 해 그런 모습, 그런 글이 많은 위로가 된 점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5-12-15 08:46:27
0 0
신아연 (14.XXX.XXX.36)
낮은 처지에, 더 낮은 곳에 있으면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면서 전에 못 보던 것을 봅니다. 그것이 삶의 진짜 얼굴이라고 저는 '우기고' 싶습니다.

꽃을 찍을 때도 그렇지 않나요?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한 해 동안 빠짐없이 글을 읽어주시고 따스하게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5-12-15 09:57:40
0 0
장예종 (14.XXX.XXX.250)
선배님 늘 응원합니다.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시고
새해 바라시는 모든 소망 가득하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5-12-15 07:55:17
0 0
신아연 (14.XXX.XXX.36)
고마워요, 예종후배!

새해에도 변함없이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의 아름다운 아내, 자애로운 엄마의 모습을 이어가기 바래요.

새해에는 시드니에 한 번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나게 되면 좋겠군요.
답변달기
2015-12-15 09:55:15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