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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 病 死 (1부)
오마리 2007년 11월 03일 (토) 09:43:26


언젠가부터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바쁜 직업이어서 여성이면 누구나 즐기는 미용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보니, 간단한 헤어 컷이나 염색조차 혼자 해결합니다. 출근 화장은 10분, 아침에 잠깐 거울 보면 저녁 세수 때 되어서야 거울을 다시 봅니다. 매사 그 부분에서만은 후다닥 하며 수 십년 살았기에 이런 변화는 생각지 못한 일입니다.

   
  August Macke (독일, 표현주의):바쁜 일상을 살아온 여인의 화려하게만 알려진 겉 모습을 조명한 듯한 작품.  
이젠 옷차림도 예전 같은 맵시가 없습니다. 처져가는 몸의 근육은 나이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생머리만 묶어도 싱싱했던 모습은 점점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키까지 줄어들어 예전의 옷들이 어울리지 않는 쇼크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몸의 화학구조가 변하고 균형의 틀이 깨져 신체의 실루엣이 무너지기 시작한 탓입니다.

얼굴은 주름살이 제멋대로 퍼져가고, 눈두덩은 퀭해지고, 볼 살이 늘어집니다. 치아의 질병과 변화는 나이와 비례하여 예전의 모습을 잃게 하고 그것은 턱 윤곽의 큰 변화를 초래합니다. 치아의 구조가 변하니 음성도 변하고 발음 발성도 변합니다. 낭랑했던 20대의 음성은 어디로 가고 “생선 사세요”하는 좌판 아주머니의 피곤에 찌든, 쉰 듯한 음성으로 바뀌어 갑니다.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신체적 아름다움, 즉 여성미를 포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모두 늙어가는 거야라고 아무리 스스로 위안하고 태연하려 해도 쉽지 않은 일인 것을 절감합니다. 아니 내가 어떻게 이런 얼굴로 늙어갈 수가 있지? 가끔은 믿어지지 않아 거울을 들고 앞으로, 옆으로, 뒤로 미친 짓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Oskar Kokoschka(오스트리아, 표현주의):그 여인의 뒷 모습. 치열하게 일하고 살아야 하는 여인의 꾸밈, 과장, 화려함이 없는 초로의 얼굴.  
거기에다 사진은 진실만 얘기한다는 무서운 현실에 부딪쳐, 사진 찍기가 무섭다 못하여 찍은 후 들여다볼까 말까 하는 공포까지 생깁니다. 그래서 과거 지향적인 병까지 생겨 집안에는 10년 전 사진만 진열합니다. 그럼에도 이율배반적인 것인지 빨리 늙어갔으면 하는 때도 있습니다. 아마 여성으로서의 일반적인 기대나 집착에서 해방되고 싶은 염원도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0여년 전 타블로이드 신문에 파파라치가 찍은 1950년대의 대 스타, 많은 남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름다운 그레타 가르보의 늙은 모습이 게재되었습니다. 마귀할멈같이 늙은 그녀의 모습에 경악한 적 있습니다. 그녀는 무대를 떠난 후 종적을 감추고, 그녀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고자 하였으나 그만 파파라치에게 찍히고 만 것입니다. “미인에게 원수진 여성은 미인이 늙을 때만 기다리라”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외양 뿐만이 아닙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물의 인식력이 느려지고 지각이 둔해져 많은 육신의 변화 이상으로 엄청난 정신적 기능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취침 시간이 뒤바뀌거나 잠이 없어지고 무서움이 많아지니 의심을 자주 합니다. 눈이 나빠져 더러운 것에도 덤덤해집니다. 언어의 발음과 표현이 점점 어눌해져 갑니다. 잊어버리기 잘 하고 계획성이 떨어지며 관리능력도 점점 부실해집니다. 일의 추진력에 힘을 잃고 집중력이 산만해지며 분실을 잘 합니다. 방향감각도 둔해져 운전이 무서워집니다. 매사 자신감도 점점 상실해 갑니다. 잘 슬퍼지고 삐치기도 잘 하고 사소한 일에도 서운해 합니다.

   
  Henri Matisse(프랑스, 야수파):이제 정말 늙어가는 여인의 외양적 추함과 우울과 방황을 담은 그림.  
物極則必反(물극즉필반), 달이 차면 기울어지듯이 모든 사물은 차오르면 반드시 기울어진다는 게 주역의 핵심 논리입니다. 이 논리는 우주가 존재하는 한 변함없는 영원한 진리로서, 어떤 생물체건 벗어날 수 없는 천지창조 때부터의 숙명일 것입니다. 이런 거대한 섭리에 반하여, 티끌과 같은 먼지에 불과한 인간이 늙어지지 않으려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희극인 것입니다.

젊음은 주어지고 늙음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어진 젊음은 다 써버렸으니, 앞으로 남은 늙음은 어떻게 수용하며 어떠한 형상으로 이루어갈 것인가. 이 생각에 몰두한 결론은, 우선은 심플한 삶으로 주변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벌인 것들은 가지를 치는 일입니다. 사념을 없애기 위하여 젊은 날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어려워서 포기했던 주역공부를 하며 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어렵지만 무욕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그러기를 1년여, 작ㆍ금년 사고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늙어감으로써 얻어지는 장점 또한 풍성한 것임을 발견하게 합니다

   
  Pablo Picasso(스페인, 입체파):많은 감정의 기복을 극복하고 사색과 명상으로 마지막 삶을 해학적으로 수용하며 살아가는 모습.  
젊은 날의 외양은 아름다웠을지언정, 지금처럼 사물을 보는 시야가 넓지 못했고 관용의 폭도 좁았습니다. 뿐더러 예지의 빛도 흐렸음을 자각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젊음과 바꿀 수 없는 노령의 유일한 대작품, 마지막 잎새 같은 것입니다

이제, 너는 예전의 젊음과 그 상황으로 돌아가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젊은 날의 고뇌, 치열했던 삶과 갈등의 시간을 다시 헤쳐갈 자신도 없을 뿐더러, 지금 늙어가고 있음이 정신적으로 여유로우며, 곧 영원하고 완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들은 뉴욕 MOMA뮤지엄에서 찍은 것으로, 각 작품을 필자가 부분적으로 발췌하고 나름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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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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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 (211.XXX.XXX.129)
봄도 가을도 갈수록 짧아지는구나.
그렇게 봄 가을은 짧아지고 있건만
libero님은 더욱더 시인이 되어가네.
오마리님 사진 고른 솜씨는 놀라울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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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5 16: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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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99.XXX.XXX.82)
정말로 공감 합니다. 사진 찍느것도 무섭고요.거울 보는것도...내 몸의 실루엣도 내가 아닌것 같아요, 공감....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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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4 14: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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