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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 배려석
방석순 2016년 03월 31일 (목) 00:31:54

책장에 가로세로 칸막이가 많으면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책의 성격이나 크기대로 구분해 정리하고 보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칸막이에 막혀서 넣을 수 없는 책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때면 무조건 칸막이가 많아서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서울 지하철엔 날이 갈수록 칸막이가 늘어갑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라고 합니다. 처음엔 각 차량 양쪽 끝부분에 노약자를 위한 좌석이라고 표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차 안이 아무리 붐벼도 젊은 사람들은 아예 거기에 앉아볼 염도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량 한복판 일곱 개의 좌석에 또 노약자 표시가 붙었습니다. 노인, 몸이 불편한 사람, 임산부 등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석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좀 달라졌습니다. 복잡한 찻간에서 그곳까지 노약자 좌석이라고 의식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노약자석이 그렇게까지 확대되는 데 대해 의식적으로 반발하는 눈치도 없지 않습니다. 언제 보아도 그 일곱 좌석엔 전혀 노약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노인이나 병약한 사람이라고 그 좌석을 바라고 다가서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확대된 노약자석 일곱 자리 중에서도 양쪽 출입구 가까운 좌석은 핑크빛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내일의 주인’이 앉는 자리랍니다. 바꿔 말하자면 임신 여성을 위한 자리입니다.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니 누군가 그런 깜찍한 아이디어를 낸 모양입니다.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카펫’, 자리 이름도 그럴싸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핑크빛 표식을 의식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차 문이 열리자마자 먼저 들이닥친 사람이 잽싸게 차지할 뿐입니다. 언제 어느 차에서건 그 자리에 ‘미래의 주인’을 잉태한 여성이 앉은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설령 임신부라 하더라도 아직 부르지도 않은 배를 내밀고 “그 자리가 내 자리요” 하고 앉을 새댁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염려는 말라는 듯 건장한 장정들이 주저 없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앉은 모습은 숱하게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일의 주인석’은 공연한 전시행정의 산물일 뿐입니다. 지켜지지도 않을 도덕률을 만들어 공연히 비도덕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꼴입니다.
 
어느 날 노인과 젊은이, 두 사람이 무언가 긴밀히 대화를 나누며 함께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마침 한가한 시간이어서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노인이 노약자석에 앉으며 청년을 손짓해 불렀습니다.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아휴, 제가 거기 어떻게 앉아요?” 하며 손사래 쳤습니다. 하는 수 없다는 듯 노인이 일반석의 청년 옆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노인은 “이거, 난 여기 앉아도 되나? 젊은이들 눈총받겠는데” 하며 연신 불안해했습니다.
 
어중간한 나이의 노인들에겐 노약자석도 일반석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겐 오히려 배려석이 가시방석입니다. 일반석에 다가서기도 눈치가 보입니다. 그래서 문간에 엉거주춤 섰다가 내리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됩니다.
 
옛날 버스나 전차 안에는 노약자 배려석 따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도 노인이나 몸이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오르면 젊은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주곤 했습니다. 노인들이 도리어 “공부하기도 힘들 텐데”하며 사양하기도 했습니다. 누구든 무거운 가방이나 짐을 들고 있으면 받아서 무릎에 올려놓아 주곤 했습니다. 책가방을 받아준 아주머니 치마에 잉크가 흘러 무안했던 일, 여학생 무릎에 올려놓았던 책가방 쇠고리가 교복치마에 구멍을 내 민망했던 일은 지금껏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요즘엔 꼬부랑 할머니가 올라와도 ‘이건 보장된 내 자리’라는 듯 꼼짝도 않는 젊은이들이 태반입니다. 노약자석이 따로 있으니 내 알 바 아니라는 것이지요. 거기 빈자리가 있건 없건 상관없습니다. 더러는 그 복잡한 찻간에서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고, 더러는 꼬아 앉은 다리를 뻗어 흔들며 앞에 선 사람 따윈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복잡한 지하철 찻간에 자꾸만 노약자석을 늘려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노약자석 표시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오히려 자진해서 성큼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던 미덕이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지하철에 늘어가는 칸막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마음의 칸막이를 만들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보다는 요리조리 규제를 피해 제 잇속만 차리는 마음보를 만들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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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호 (218.XXX.XXX.23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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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1 07:35:04
0 0
방석순 (39.XXX.XXX.20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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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1 08:52:02
0 0
김종우 (121.XXX.XXX.50)
맞습니다. 규제는 자꾸 마음의 규제만 늘어나게 만듭니다.
서로 불편한 마음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 올가미에 조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어쩌면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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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1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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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10.XXX.XXX.58)
좋은 일도 강요하면 하기 싫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지요.
최소한의 규제 외엔 각자의 양식에 맡기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물리적인 칸막이보다는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 기풍을 만드는 데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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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20: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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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203.XXX.XXX.62)
방선생님 안녕하세요?
봄입니다. 밖으로 나오라고 봄은 손짓하는데 몸이 괴로우니 모든게 귀찮아 서제 침대에 누원서 빈둥빈둥 참을 자거나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어지럼증 때문에 컴도 멀리하고 책보는거도 신드렁합니다.
사실 지하철에 가면 저같은 노인네는 (79세가 노인인지 아니지 모르지만)으례 한 쪽 구석에 있는 노인 자리로 습관적으로 향합니다.
비어 있으면 앉지만 자리가 없어도 그자리에 서서 가지 일반석이 비어 있더라도 선듯 그자리에 가 앉지를 못합니다.
노인석이 있듯이 젊은분들도 앉아 있어야할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쪽 자리는 넘겨 보지도 앉습니다.
사실 절은이들도 하루살이에 피곤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편히 앉아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노인석이 비었다고 덥썩 앉는 젊은이는 드뭅니다.
마찬가지로 젊은이 좌석에 애써 앉으려는 덜 늙은 노인들을 보면 그 자리는 젊은이들에게 내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에서 그 정도 나이이면 서서 가는게 건강에도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연민의 정이 듭니다.
물론 상노인네들에게는 가급적 자리를 양보하는게 맞지만 지하철 공짜인 65세는 지금은 젊은이로 봐도 무방한데 그 정도의 나이 사람들도 으레 노인대접 받기를 바라는 눈치를 보면 얄밉기까지 합니다. 마찬가지로 극노인이 떠밀리며 서서 욕을 보는데 눈 감고 자는척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그 또한 얄밉기그지 없습니다.
가급적이면 노인은 노인석으로 가서 그 쪽에 자리가 있으면 앉고 없으면 서서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65세 이상 노인이 700만명이라는데 모두 노인대접 받으려 일반석까지 찾이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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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09: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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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10.XXX.XXX.58)
아직도 불편하시다니 걱정이군요.
말씀하신 데 대해 크게 공감합니다.
어른부터 언행에 모범을 보여야 할 텐데...
새봄 맞아 얼른 쾌차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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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19: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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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25)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보아야 할 일
지하철 칸에도 있었군요.
노약자 석에 앉은 노안들끼리 종종 고성의 상소리 언쟁이 벌어지는 거 보면
윗물부터가 아닌 거 말입니다. 그래서 자업자득인 세태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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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09:34:01
0 0
방석순 (110.XXX.XXX.58)
윗물이 맑아야... 지당하신 말씀!
정말 나이 든 게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물질 문명에 뒤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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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19: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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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XXX.XXX.12)
안녕하세요. 평소 칼럼을 즐겨보고 있는 1인입니다. 다만 오늘은 제 개인적인 의견과 조금 달라서 저도 몇자 남겨봅니다.

일단 교통약자배려석..
배려란 마음에서 우러 나와야 하는 것이지, 강제가 아닙니다. 젊은사람들이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할 의무는 없으며 그들도 자리에 앉아서 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제 값주고 당당히 교통을 이용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욕해선 안됩니다. 옛날엔 미덕이 있었는데 요즘은 왜 예의가 없냐며 탓해선 안됩니다. 정작 질타 받아야 할 것은 짧아진 정년과, 늘어난 수명에 따라 상응하는 노인 복지 시설이 부족을 탓해야 합니다.



이른 정년 퇴직으로, 갈곳은 없고 시간은 많은 노인들이 무료함을 달래고자 일단 밖으로 나옵니다.
수중에 돈도 많이 없고, 일단 지하철은 공짜니까 종로로 향합니다.
아직은 아침저녁이 쌀쌀하여, 일단 종로3가의 맥도날드에서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고, 3시간을 그곳에서 때웁니다. 탑골공원으로 향합니다. 친우분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지만 별 영양가는 없습니다.
그냥 집에나 가자는 생각에 다시 지하철을 탑니다. 하필 퇴근시간에 겹쳤습니다.
나는 이렇게 서서 가는데 앉마있는 젊은이를 보니 울화가 치밉니다. 나는 젊은이들을 혼내기 시작합니다.
" 젊은 사람이 말야! 어? 앞에 노인이 있으면 자리를 비켜야지!!! 나와!!"
앉아있던 젊은이가 궁시렁대며 자리를 비켜줍니다.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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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08: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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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10.XXX.XXX.58)
좋은 의견, 지적에 감사합니다.
댓글 뒤쪽은 역설적으로 그런 노인 행태를 비판하신 것이겠지요.
저 역시 자리를 양보 않는 젊은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양보를 강요하는 듯한 노약자석 확대가 꼭 필요한 것인지, 도리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지도록 역효과를 내지는 않을지, 염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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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19: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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