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한만수 몽당연필
     
연애편지를 쓰던 밤
한만수 2016년 07월 07일 (목) 01:37:13

언젠가부터 손으로 만년필이나 볼펜 등으로 종이에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명색이 작가인 저도 컴퓨터 모니터 화면이 아닌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웬만한 분량의 내용은 직접 컴퓨터에 저장하려고 키보드를 두들깁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주소를 메모하거나, 글을 쓰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한 문장 정도의 단어를 비망록에 짤막하게 기록하는 것이 전부인 날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크리스마스나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카드며 연하장 진열장을 내놓은 가게를 찾곤 했습니다. 요즈음은 결혼 청첩장까지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내는 시대이다 보니까 카드며 연하장 사업도 사라져 가는 업종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집배원의 황토색 가방안의 내용물은 거의 편지이거나 신문이었습니다. 요즈음은 각종 고지서며 광고물이 집배원의 가방이 터져나가도록 채우고 있습니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쓰는 날은 노랫말처럼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일이 흔했습니다. 가슴을 설레며 썼다가 지우기를 수십여 번 한끝에 완성본을 곱게 접어서 책갈피에 집어넣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편지 내용을 보면 너무 유치하고 부끄럽고 민망해서 찢어버리기를 수십 번.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쓴 편지를 우체통에 집어넣고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학원”이라는 잡지에 짤막한 시를 투고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투고자의 신분이 100프로 공개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가을쯤에 서울 여고생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하루에 적게는 10여 통 많게는 20여 통의 펜팔편지가 왔습니다. 그것을 들고 학교에 가면 급우들이 달려들어서 서로 마음에 드는 편지를 고르느라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군대에 가서는 선임들의 편지를 대필해 주느라 한세월 보냈습니다. 전역 후에는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부모님 전상서’ 라는 편지보다는 전화번호를 누르는 일이 편해졌습니다.
 
전화를 거는 일이 많아질수록 명함 크기의 전화번호 수첩이 필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며, 친척, 거래처의 전화번호쯤은 저절로 암기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편지가 본격적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핸드폰이 생활화되고 나서부터 일 겁니다. 속칭 ‘개목걸이’ 라 부르는 핸드폰은 편지의 추억만 삼킨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나 즉시통화를 할 수 있다는 이점은, 개인의 시간을 철저하게 앗아가 버리기 시작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전화 통화에 직장으로 달려가는 일은 흔하고, 모처럼 조용히 시간을 보내려고 교외에 나갔다가 전화를 받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거나, 엄숙해야 할 시간에 웃음이 터지는 일어 벌어지기도 합니다.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편지를 쓸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기 집 전화번호도 쉽게 생각이 나지 않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나서부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연인의, 혹은 지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까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웬만한 일은 카카오톡을 이용하거나 메시지 기능을 통해 문자로 날려 버립니다. 간단한 내용도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다 보니 안부는 생략해 버립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安否)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안부는 불필요한 내용이 되어 버렸습니다.
 
편지가 사라져 가면서 ‘고독’,이니 ‘우정(友情)’, ‘외로움’, ‘벗’ ‘삶’ ‘인내(忍耐)’ 같은 낱말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별빛까지 외로움에 떨고 있는 시간입니다’ 라는 투의 말이 가슴을 깊숙이 울리던 낭만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의 책상 앞 벽에 어김없이 붙어 있던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라는 말도 보기 힘듭니다. 그 시절 인내의 참뜻을 알고 있는 분들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만큼이나 발전시키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는 공로도 색이 바래졌습니다.
 
요즘 세대는 ‘우정’ 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외로움’이라는 말 따위는 생각할 가치조차 못 느낄 겁니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을까요? 하루가 멀다고 매스컴을 장식하는 묻지 마 범죄나, 근친폭행, 이며 각종 흉악범죄의 근원이 ‘우정’이나 ‘인내’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이발소며 식당, 복덕방이나 약국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가 생각나는군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4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ㅋㅋㅋ (223.XXX.XXX.118)
모든 걸 돈으로 환원시키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누굽니까
대학보고 기업이 즉시 쓸 인재를 키우라 강요하고 취업 중심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정권을 만들었습니다
누굽니까
그런 대학만 바라보게 애들을 키웁니다
누굽니까
그래서 그렇게 키워진 애들은 다른 걸 생각하지 않는 애들이 되었는데 그런 애들 꼬라지를 맘에 안들어 합니다
누굽니까
요즘 애들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다 당신들이 그렇게 키웠느니라
좋은 날은 결코 안 오리니 당신들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니라
답변달기
2016-07-07 21:06:48
1 1
자작나무 (221.XXX.XXX.190)
옛 선지자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지요.
답변달기
2016-07-07 11:51:29
0 0
꼰남 (112.XXX.XXX.25)
그러니까 소싯적 뮨재를 잘 살리셔서 작가가 되셨군요.
비슷한 청춘사절을 보냈으나 저는 독자가 되었구요.^^
ㅎㅎㅎ 이 또한 안생유전이겠지요.
잊었던 옛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필자님의 글을 읽는 오늘 아침이 바로 굿 모낭입니다.
답변달기
2016-07-07 09:08:41
0 0
한 팡세 (175.XXX.XXX.69)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늘 좋은 날 되시길 빕니다.
답변달기
2016-08-03 08:13:25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