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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북한을 보니
김홍묵 2016년 08월 18일 (목) 00:50:58

찜통더위에 보름 전 러시아를 다녀왔습니다. 4박 6일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보는 패키지 투어라 실은 주마간산 여행이었습니다. 좀 시원하겠거니 했던 기대와는 달리 한낮 모스크바의 기온이 섭씨 30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25도까지 치솟아 피서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현지 음식이라곤 으깬 삶은 감자에 돼지고기 메인과 배추 수프, 당근 김치 정도여서 먹거리가 가장 초라한 외국 관광이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도시에 널린 성당과 궁전들은 그 나라의 역사를 음미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러시아에서 볼 만한 것은 성당과 궁전뿐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닌 듯했습니다. 특히 성당은 도시공국으로 흩어져 있던 러시아를 하나로 통합한 종교의 상징들입니다. 또한 피터 대제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한 후 지은 신도시의 궁전은 강력한 러시아의 발판을 마련한 터전입니다. 종교적 통일, 신도시 건설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러시아가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980년 키에프러시아 왕위에 오른 블라디미르는 986년 자신을 개종시키려는 여러 계파 대표들을 만났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이유를 묻자 유대교 대표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화가 나서 그 죗값으로 우리를 이방인들 사이에 분산시켜 놓으신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왕은 유대교가 민족의 종교적 통일을 위한 장래성이 없다고 퇴짜를 놓았습니다.
 
이슬람 대표는 “이슬람교도들은 내세에서 마호메트로부터 미녀 70명씩을 받는다”고 유혹했습니다. 블라디미르왕은 7명의 아내 외에 800명의 첩을 둔 색정가로, 미녀 이야기엔 다소 솔깃했지만 음주가 금지되어 있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술은 러시아의 기쁨이다. 우리는 술마시는 즐거움이 없다면 살아가지 못한다”며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관해선 로마 교회와 비잔틴 교회의 차이점을 비교하도록 두 곳에 사신들을 보냈습니다.
 
독일로 가서 로마 교회 의식을 살펴본 사신들은 아무런 감동도 영광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비잔티움의 소피아대성당 미사에 참석했던 사절들은 “그 성당의 의식은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라디미르는 988년 드디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왕명으로 이교의 신들과 우상숭배를 금지했습니다. 또 나무로 만든 온갖 우상들을 불태웠습니다.
 
동토의 땅이라 자연과 조상을 숭배하는 농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블라디미르는 기독교 개종을 강력하게 밀어 붙였습니다.10세기 말 인접국인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헝가리 등이 모두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이들 나라와 같은 종교를 가지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상업적 야망을 충족시키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비잔티움 문화는 키에프러시아의 미술 분야와 교회건축 에 반영되었고, 오늘날 러시아 정교회 성당 건축양식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원초연대기>의 기록들입니다.
 
또 하나, 블라디미르왕은 남슬라브족 방언들 중 기독교 전도사 키릴과 메포지가 만들었다는 키릴문자를 여러 종교의식을 위한 용어, 즉 ‘교회 슬라브어’로 채택했습니다. 키릴문자 덕택에 수많은 유럽 종교와 문학 번역물이 출판되고, 러시아의 문화 유산을 기록, 보존, 전파하는 기본 체계가 세워졌습니다. 종교, 언어, 전통의 통일은 민족적 동질성과 국가사상의 자주성을 갖추면서 키에프러시아의 발전과 안정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대성당(1555~1560년 완공)을 비롯 크렘린궁 안의 성모승천사원, 우스펜스키사원, 블라고베셴스키사원, 아르항겔스키사원 등은 키에프러시아 때 비잔티움 문화 영향을 받은 러시아정교의 성쇠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독특한 양파지붕 건축양식들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성이삭성당(높이 101.5미터), 로마의 성베드로성당을 본떠 만든 카잔성당, 피의 성당과 피터·폴성당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은 피터 대제입니다. 1672년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와 두 번째 황후 나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피터는 어린 시절 크렘린 밖 외인촌에서 자라며 외국인 기술자들과 자주 접촉했습니다. 12세 때부터 석공술과 목수일, 말에 편자를 박는 방법, 대포를 주조하는 일 등 기술을 익혀 젊은 나이에 10여 가지의 전문 특수 기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의식 대신 실리적 과학적인 것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1695년 23세 때 그는 모스크바 정부의 흑해 진출로 확보를 위한 터키 요새 아조프(크리미아반도 북동쪽) 포위작전 때 포병으로 처음 실전에 참전했습니다. 하지만 함대가 없는 러시아는 공격에 실패했습니다. 군항과 함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겪은 그는 이듬해 보로네즈 군항에서 서둘러 함선을 만들고 수천 명의 해군을 동원해 아조프를 공략 함락했습니다. 이 전쟁은 피터가 자신을 유럽 여러 나라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해 이복형 이반이 죽고 피터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권좌에 오른 그는 터키의 압력에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는 토대 마련에 진력했습니다. 1697년 봄, 피터는 서유럽 여러 나라에 동맹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자신도 포병 하사관으로 가장해 프로이센 고위 지휘관에게 대포 조작 기술을 배우고, 덴마크에서는 선박 건조 기술과 해부학 응용과학까지 익혔습니다. 도중 신분이 노출되기도 했지만 그는 신하들에게 유럽의 선진 과학 습득을 강조했습니다.
 
서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피터는 과감한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군대 규모를 늘리는 한편 귀족의 군 복무기간을 농민출신 병사와 같이 종신으로 변경시켰습니다. 교회의 상징인 종을 녹여 대포를 만들고, 방어용 무기를 공격용으로 개선했습니다.
일종의 군사적 명령인 “짜르 폐하를 위하여!”라는 관용구를 버리고 “나라를 위하여!”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의 초기 개혁은 오로지 강력한 러시아의 구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습니다.
 
1703년 핀란드만으로 흐르는 네바 강 하구를 차지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새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전제군주로서의 독재로 수많은 사람의 강제노동과 혹독한 세금으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그의 강력한 해군과 육군은 1721년 스웨덴 함대를 격파하고 핀란드를 강타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제국을 선포하고 피터는 임페라토르(imperator; 황제)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습니다. 1725년 53년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러시아 개조의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발트 해의 강국으로 자리를 굳히자 피터를 바보, 천치, 폭군 등의 표현으로 업신여겼던 유럽 국가들도 점차 그를 러시아 황제로 인정했습니다. 피터가 창설한 육해군의 많은 승리는 러시아를 군사적으로나마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러시아를 제외한 어떤 동맹도 유럽의 세력균형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가혹한 독재에 대한 비난도 많았지만 19세기 자유주의 지식인들과 21세기 스탈린주의자들조차 피터 대제를 ‘러시아의 선구자’이자 ‘위대한 애국자’로 떠받든 이유입니다.
 
블라디미르와 피터라는 러시아 선각자들의 상념에서 벗어나자 못하고 있는 염천에 문득 북한정권의 선택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왜 같은 유럽 유학파이면서도 피터 대제와 달리 김정은은 국제적 미아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조롱거리가 되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대규모 스키장과 물놀이 시설, 과학기술센터를 건설하고 핵과 미사일로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존엄‘한 지도자인데도 말입니다.
 
고모부 장성택 등 당·군 간부들의 대량 숙청과 무자비한 공개처형 때문일까요? 새 수도 건설 현장에 뼈를 묻은 노동자, 혹세에 반발한 농민반란에 가담했다 처형당한 귀족들, 개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심한 고문 끝에 옥사한 황태자, 결혼 11년 만에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다고 강제로 수녀원에 보내진 귀족 가문의 아내…. 피터의 잔인성과 압제로 죽은 사람 수는 김정은 공포정치 희생자의 몇 십, 몇 백 배에 이르는데도 말입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포로가 되기도 했고, 반란으로 나라가 쪼개질 위기도 겪은 피터의 파란만장한 일생에 비하면 김정은의 북한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김일성광장을 가득 메운 김정은 찬양 퍼레이드, 목선을 타고 서해 기지 시찰에 나선 그를 바닷물에 뛰어들며 전송하는 주민, 연로한 몸으로 무릎을 꿇은 채 귓속말로 보고하는 고위 장성,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 기쁨을 드렸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다. 원수님께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같은 신민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전제군주 피터를 “그가 행했던 모든 일이 결과적으로 러시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긍정 평가하듯, 김정은도 “그가 행한 모든 일이 국가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했다”는 찬사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한여름 밤의 꿈에 지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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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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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권 (58.XXX.XXX.64)
러시아가 총칼로 강할지 몰라도
그 드넓은 땅을 적절히 개발하지 못하고 있음에 안타깝습니다.
요즘같은 찜통 더위에 잔인한 시베리아가 왜 이리 탐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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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2 23:37:33
0 0
김종우 (121.XXX.XXX.50)
예, 그것이 우리의 꿈이고 정작 본인의 꿈은 무엇인지 그것이 문제이겠지요.
짧지만 러시아에 대한 역사와 정교회에 대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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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16:59:03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패러그래프>가
다소 모호하군요.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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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16:17:10
2 0
소운 (125.XXX.XXX.55)
김정은 찬양(합리화)의 글로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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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12:01:48
1 1
꼰남 (220.XXX.XXX.208)
저는 제목을 보고는
나선특별시 러시아 쪽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고
느낀 것을 쓰신 글인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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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11:26:28
1 0
별별천문대 (59.XXX.XXX.178)
한나라의 뼈대가 어떻게 형성되어 발전해 오는지, 잘 읽었습니다. 장문의 글을 통해 이웃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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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09:13:51
1 0
청유 (14.XXX.XXX.184)
좋은글 읽으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금의 이스탄불은 처음에는 비잔티움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다가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바꾸었습니다. 동로마의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을 이름이 길다하여 일반인 들은 "스탄불"로 불렀습니다. 1453년 오스만튀르크가 동로마를 멸망시킨 뒤에도 스탄불 이라고 불리다가 어느 때인가 부터 스탄불에다가 이슬람을 의미하는 "이"를 붙여 "이스탄불"이라고 불리며 현재에 이러렀습니다.
한나의 도시가 세개의 이름을 가졌으나 시대별로 구분해서 사용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330년 이전에 관한 것이면 비잔티움으로, 330~1453년 동로마제국 시대의 역사에는 콘스탄티노플로, 1453년이후 오스만터어키 시대 관련이면 이스탄불로 부르는게 좋다고 봅니다. 해당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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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07:34:31
1 0
자작나무 (221.XXX.XXX.190)
동감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이 이스탄불로
개명된것이 1930년이라는
의견도 있는데,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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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16:48:43
1 0
한 팡세 (118.XXX.XXX.250)
한 나라의 종교가 통일되면 문화의 꽃이 핀다는 부분이 적극적으로 공감이 가네요.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같은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해답을 미루기로 하고,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답변달기
2016-08-18 07:30:2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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