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박상도 맞장구
     
차라리 학력고사를 부활시킵시다
박상도 2016년 11월 23일 (수) 02:25:39

2017년 대입 수능시험이 끝났습니다. 작년보다 많이 어려웠고 그 결과 과목별 등급 컷이 많게는 7~8점씩 내려갈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학력고사 세대인 필자에게는 ‘등급 컷’이란 말이 매우 낯섭니다만 요즘 대입에서는 이 등급 컷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수시전형에서 합격선에 들었어도 특정 과목의 수능 등급이 1등급 또는 2등급 안에 들어야만 합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예 수능점수를 고려하지 않는 수시전형도 매우 많습니다.
 
해마다 수능시험 날이 되면 관공서는 출근 시간을 한 시간씩 늦추고 은행 영업시간과 심지어 증권거래 시간까지 한 시간씩 늦춥니다. 수험생들에게는 일생을 좌우하는 첫 관문일 수도 있기에 사회적으로 많은 배려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사실 수능 점수로만 대학에 들어가는 비율은 20퍼센트 안팎에 불과합니다. 수시전형의 비율이 70~80퍼센트에 육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칭 일류대의 경우 수시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능 날 경찰 오토바이 뒤에 수험생을 태우고 고사장으로 향하는 장면들을 뉴스시간마다 단골로 보여주며 긴박한 느낌을 주고는 있습니다만, 수능과 상관없이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이미 너무 많이 늘어난 상태입니다.
 
최근에 불거진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는 수시전형이 멍석을 깔아준 결과입니다. 아래 내용은 2015학년도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전형의 모집 요강입니다. 이 전형은 수능점수는 물론이고 고교 성적도 평가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엊그제 구속이 결정된 장시호 씨는 1998년도에 연대에 입학했는데, ‘양가집 규수’라는 별명으로 알 수 있듯이 주요 과목 성적은 전부 ‘가’였고 음악이나 체육에서 ‘양’이나 ‘미’를 받았습니다. 262명 정원에 260등이었는데 당당히 연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연대는 보관기간이 지나서 입학 당시의 서류는 폐기한 상태라고 합니다.
 
대입 수시 전형은 정성적(定性的) 평가입니다. 합격과 불합격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어떤 전형보다도 ‘공정성’이 담보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합격 과정을 보면 도대체 어느 한 구석도 공정성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어느 누구도 대입 전형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연 부정 입학한 사람이 이 두 사람만 있을까?” “이참에 전수조사라도 해봐야 되는 거 아냐?” 요즘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수시전형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양하고 대학마다 기준이 들쭉날쭉해서 대학 교수들조차도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할 정도라서,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는 개연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양하고 복잡해지면 오히려 허점이 생깁니다. 아는 사람만 교묘하게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악의적으로 특정 수험생에게 편의를 봐주더라도 표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선∙후배 기자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예전의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아?”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지금의 대입 체계에 대한 비판 여론은 기자의 시각에서도 학부모의 시각에서도 매우 높았습니다. 우리 교육이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현재 우후죽순처럼 솟아나오고 있는 갖가지 미사여구로 치장된 교육 관련 구호가 아니라 그 결과만 봐야 합니다. 서울의 금천구와 중랑구 두 곳은 지난 5년 동안 서울대 진학자 수가 10명을 넘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중랑구의 인구는 41만 8,341명으로 강남구 인구 57만 8,862명의 72%지만, 올해 서울대 신입생 수는 7명으로 강남구 출신 신입생 248명의 2.8%에 그쳤습니다.
 
부에 따른 대학 입시의 차별적 결과는 ‘지금 우리가 정말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왜곡을 바로잡아야 할 사람들이 이 왜곡의 잠정적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겁니다. 부자일수록, 권력에 가까울수록 현재의 대입 수시전형에서 받게 되는 이득이 큽니다. 학력고사점수만으로 대학 입시의 당락이 결정되는 시대였다면 정유라, 장시호 같은 경우가 절대로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대학 수시 전형은 스펙과 자금의 싸움입니다. 정유라가 "돈 없고 힘 없는 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얘기한 것은 절대로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들을 보며 열패감에 젖었을 다른 선량한 학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이들을 선발하면서 탈락시켰던 다른 경쟁자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 줘야 하나요?
 
그런데 지금 교육부는 물론이고 각 시도 교육청의 현안을 보면 뜬구름만 잡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교육과정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데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진정한 교육’을 위한 과정으로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를 홍보하기 위해 1억 원의 협찬금을 들여 방송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진정한 교육’은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30여년 전에도 무수히 들었던 얘기입니다. 30년 동안 달라진 게 근본적으로 없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제대로 된 교육은 고사하고 입시관리만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 3 때 17일만 출석한 정유라가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대에 특혜입학을 했는데, 학사관리의 최종 책임이 있는 서울 교육청에서는 문제가 표면화되자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 조희연 교육감이 직접 나서서 감사결과를 발표하는 촌극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을 혼자 다 책임지는 것처럼 전국 방송을 통해 홍보하는 경기도 교육청의 이재정 교육감은 초∙중∙고등학교 등교 시간을 혁신적으로 9시로 옮기더니, 도내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학습을 폐지하고 예비대학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야단법석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흔듦의 목적이 순수한 교육적 목표가 아닌 정치가로 변한 교육감과 그를 도와서 선거에서 힘이 되어준 주변 사람들의 이익과 재선을 위한 것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필자의 상식으로 교육감을 TV에서 보게 되는 경우는 그가 범죄행위를 저질러서 검찰에 출석할 때 외에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정치적 목적으로 풀어내려고 했기 때문에 정유라, 장시호라는 괴물을 만든 것입니다.
  
지금은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한 때입니다. 땅에 떨어진 입시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다른 어떤 혁신적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보다 더 교육적으로 시급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구도 제2, 제 3의 정유라, 장시호가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리사욕으로 망가져버린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를 개선하는 데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걷지도 못하면서 춤을 추고 있는 꼴입니다. 며칠 전 수능 시험을 본 수험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8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문똑똑 (175.XXX.XXX.161)
안녕 하세요.
역시 냉철한 판단의 통탄의 말씀 귀감되는글입니다
저는 예비고사 시절에 대입본고사를 치렀던 시절의 시절었대죠.
그때는 예비고사 커트라인이 있어서 예비고사에 합격하지 못하면 본고사는 원서접수도 할수 없었던 시절 이었었지요.
요즈음 어지러운 시국속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에 맞는 학교에
가고 꿈을 펼칠수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함니다.
날씨가 추워졌어요
우리 아나우님 건강하시구요.
년말도 잘~~보내세요
감사함니다
답변달기
2016-11-30 12:17:48
0 0
아메리카노 (175.XXX.XXX.199)
교육은 백년지대계란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고요, 상황이 심각한거 같아요 큰일이네요 점점..
겨울이 시작됐으니 감기조심하세요~
답변달기
2016-11-23 20:58:06
0 0
홍태식 (123.XXX.XXX.38)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적확하게 짚어내는 식견과 안목이 놀랍습니다. 박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상입니다. 그리고 오늘 글은 구절구절 마음에 와 닿으면서, 닿는 순간 통증을 유발합니다.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말입니다. 이제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저는 홧김에 차라리 예비고사 시절로 돌아가자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대학 입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득한 자들만이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라도 껴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또 차라리 대학본고사로 돌아가자고 어깃장을 놓고 싶은 심정이기도 합니다. 교육부의 밥줄 노릇이나 하는 입시제도의 수시 변경, 이런 우행을 반복하느니 아예 기교를 부리지 않는 우직한 본고사가 낫다는 강변이 입에서 맴돕니다. 박 선생님의 명철함에 다시 경의를 표하고 건승을 빕니다.
답변달기
2016-11-23 11:10:41
1 0
lim (218.XXX.XXX.231)
저도 동의합니다. 학력고사가 훨씬 낫습니다.
답변달기
2016-11-23 10:29:57
0 0
꼰남 (220.XXX.XXX.208)
역사는 되풀이 된다?!
답변달기
2016-11-23 09:51:45
0 0
silverthorn (223.XXX.XXX.94)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공정성이 대학입시의 가장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수능이 미국 입시의 SAT시험을 본따서 만든시험인데 지금 미국에서는 대부분 수시라든지 입학사정관전형이라고 우리도 따라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것은 미국 입시에서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학생부 자소서 고등학교 내신 그리고 SAT시험을 다 반영해서 학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그니까 우리나라 수시처럼 수능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전형은 이름없는 대학이거나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거죠 ~
정리하면. 우리나라도 다시 공정한 대학입시 제도를 만들려면 수능이나 학력고사를 누구나 다 치르게하고 수능만 반영하든지 수능과 논술을 반영하든지 수능과 고등 내신을 반영하든지 수능과 특기자 전형을 반영하든지 등의 다양한 입시 전형은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제 2의 장시호 정유라를 막는 길일 것입니다. 편법 수시로 대학에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자괴감에 파져서 수시축소 정시확대를 계속 외치지만 반영이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내년 입시부터라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지 나라가 바로서는 길일 것입니다.
답변달기
2016-11-23 09:03:14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신뢰성의 위기>는 교육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 걸쳐서 항존하는 일종의
고질병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정직성이란 미덕이 조금치라도 남아
있는가? 있다면, 사전 속에서나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답변달기
2016-11-23 08:23:07
0 0
이관우 (39.XXX.XXX.244)
동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의 분별력은 어려운 것을 해결하는 능력도 들어가야 합니다.
본고사가 있을 경우, 그만큼 이해도가 높아지면 그에 따른 변별력도 높아지겠지요.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치른 세대로서, 우연이 아닌 세대를 열어가는 세대를 만들려면
현 예비고사의 약점을 보완하려면 본고사가 필요합니다.
답변달기
2016-11-23 07:14:07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