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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방석순 2016년 12월 02일 (금) 00:51:35

함께 일하던 후배와 지하철을 탔습니다. 비교적 한산해서 경로석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두어 정거장을 지났는데 20대의 젊은 여성 둘이 우리 앞에 와서 섰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에게 무슨 말인가 건네려는 듯했는데 다른 하나는 한사코 말리는 눈치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우리가 무슨 실수라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한편 궁금하고, 또 한편 걱정되었습니다.
 
드디어 젊은이 하나가 결심한 듯 다가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저기요. 제가 머리 염색을 시켰는데 이런 색깔이 나왔어요? 너무 흉하지 않나요?”
순간 안도의 숨과 함께 쿡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희에 대한 질책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젊은이의 머리털 색깔은 어느 서양 영화에서 본 여주인공처럼 푸른빛이 도는 노란색이었습니다. 꽤 야성적이고 매력적인 색깔이었습니다.
“전혀! 아가씨 얼굴에 아주 잘 어울려요.”
“정말이세요? 저는 원하던 색깔도 아니고 너무 이상해서 배상해 달라고 할까 생각했었는데…”
의외라는 듯, 안심했다는 듯 젊은이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연신 차창에 머리를 비쳐 보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한사코 말리던 젊은이의 머리털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금빛 염색 머리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외양은 그야말로 자유분방합니다. 머리 염색쯤은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금발은 보통이고, 다갈색, 회백색 등 색깔도 다양합니다. 한민족의 본 모습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이 민족의 머리색깔이 원래 저렇게 다양한가, 의아해 할 정도입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다소 엉뚱하고 당돌한 질문에 한동안 가슴이 훈훈해졌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낯선 어른에게 의견을 구하는 젊은이의 용기가 가상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 은근히 고마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내린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 아들이나 딸이 머리를 저렇게 노랗고 파랗게 염색해도 괜찮다고,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아직도 남의 경우와 내 경우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판단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우리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어느 날 귓불에 구멍을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아내가 세상이 뒤집어지기라도 한 듯 놀라서 난리를 쳤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성의 귀고리는 그리 흔하지 않던 때였습니다. 저 역시 그런 아들의 모습이 마뜩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내 편을 들어 귀고리는 안 된다고 말렸던 기억이 납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들에 대해 가질 편견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아들을 둔 아비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적잖이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아들의 친구 하나는 머리를 처녀처럼 길게 기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깎아야겠다고 생각할 때 깎을 테니 말리지 말라”고 일찌감치 집에다 선언했답니다. 그의 장발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아들도 친구들에게 좀 유별나 보이고 싶고, 뭔가 과시하고 싶었겠지요. 아니면 뭔가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요. 어쨌거나 그 속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극구 반대했으니 아들은 꽤나 서운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고 별로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제 생각에 조금이라도 엉뚱하다 싶으면 또다시 반대하고 나서겠지요. 그렇게 한사코 반대만 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무슨 일이건 상의하고 싶을 리 없습니다. 귀를 닫은 사람에게 할 말이 있을 리 없으니까요. 바로 소통의 부재입니다. 마음과 뜻이 통하지 않는 사회의 비극은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습니다. 
 
염색 머리 두 젊은이들과의 조우가 뒤늦게 노소간(老少間) 소통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처음 보는 어른에게 다가와 자신의 용모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런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제 의견을 들려주어야 했습니다. 늦었지만 아들에게도 그 젊은이를 대했듯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좀 더 객관적인 기준으로 응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옳고 아들은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질 리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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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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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0.XXX.XXX.101)
제 아들이 생각납니다.

아들은 팔뚝에 문신을 하고 울퉁불퉁 근육질이지요. 그 몸으로 한국에 와서 목욕탕을 가니 연세드신 어른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더랍니다. 거의 조폭 수준의 몸인데, 얼굴은 곱상해서 그나마 안도한 표정이더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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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10:09:18
0 0
방석순 (223.XXX.XXX.21)
감사합니다.
생각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안도하게 되는군요.
오늘쯤엔 눈이라도 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굳어진 얼굴들이 풀어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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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09:30:16
0 0
유석희 (14.XXX.XXX.1)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두개의 자를 가지고 다니지요.
어떤 때는 눈금이 잔 자, 어떤 때는 눈금이 성긴 자.
편리할 대로 이 자나 저 자를 꺼내어 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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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 08:52:40
0 0
김종우 (121.XXX.XXX.205)
맞습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내 자식과 남의 자식에 대한 평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걸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한다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일단 상대방을 수용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식이든 남이든 그래야 진전이 생기지요. 그래야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것이고요.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우선입니다. 그래야 소통이 가능하지요. 일단 소통이 되어야 부자지간 정도 유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잘 읽었습니다.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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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 08:27:51
0 0
최석권 (58.XXX.XXX.64)
감사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경우 길을 가다보면
저보고 길 좀 가르켜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모를 땐 되게 미안했습니다.
어떤 때는 아예 제가 가던 길을 돌아서서
가르켜 주던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참 훈훈한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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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20: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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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220.XXX.XXX.208)
아마도 필자님이 참 편한 인상과 다정한 눈빛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필자님에게 그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건 것은요.
그리고 맞는 대답을 해주신 것 같고요.
아마 차 안에서 부모 품에 안긴 어린 아이들과도 눈맞춤을 잘 하실 것 같군요.
아드님도 필자님이 그런 아버지인 줄은 잘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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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11:37:26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공감합니다.부모로서의
<양가적> 태도는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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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10:18:0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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