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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
신아연 2016년 12월 26일 (월) 00:27:35

지난달에 제가 쓴 글, ‘책을 읽겠느냐, 짐승의 길을 가겠느냐’에 대해 공감을 표해주신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짐승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아무쪼록 책을 읽어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연한 다짐과도 같이. 그러나 책읽기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요? 무턱대고 읽는대서야 뭘 얻을 수 있으며, 독서를 통해 얻어야 할 것은 진정 무엇일까를 새삼스럽게 자문해 봅니다.

동양 철학자 박희채의 <장자의 생명적 사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환공이 대청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윤편이 뜰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묻겠습니다. 왕께서 읽으시는 책에는 무슨 말이 쓰여 있습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 지금 살아있습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수레바퀴나 깎는 놈이 웬 참견이냐? 그럴싸한 이유를 댄다면 괜찮겠지만 그렇게 못한다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미루어 그렇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는데, 엉성하게 깎으면 헐거워서 견고하지 못하고, 너무 꼭 맞게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너무 꼭 맞지도 않게 깎는 기술은 손의 감각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만 알 뿐이지 말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무엇인가 비결이 있기는 하나 제 자식에게도 가르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이 되도록 이렇게 수레바퀴를 직접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 역시 깨달은 바를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맞춤한 수레바퀴의 상태는 오직 숙련된 손의 감각, 느낌이나 마음으로만 알 뿐이지 이른바 ‘매뉴얼’이 만드는 게 아니라고 윤편은 말하고 있습니다. 윤편의 이 말은  권위 있는 사상가나 지도자의 가르침, 명망 있는 상을 받은 서적, 현재 인지도 높은 필자의 저서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집어드는 자세를 경계하게 합니다. 아무리 검증된 진리, 인류 문화사의 최고봉에 이른 사상이나 이념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수용하고 그대로 따라 살다가는 거기에 매몰되어 자기를 잃고 삶의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편의 말처럼  깨달은 자들인  공자, 맹자, 석가, 예수의 사상까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장자 자신도 다 믿지는 말라는 뜻일 겁니다.
 
삶의 길잡이인 매뉴얼, 즉 책을 읽는 것은 개성 있고 독특한 자기 생각, 심도 있고 독창적인 사유와 표현의 집을 짓기 위함입니다. 자기 내면에서 생성된 사유를 통한 힘만이 고유하고 실존적인 개별자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공이 읽고 있는 성인의 말씀은 그러한 사유의 집을 짓는 재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만 이어 올린 지붕이나 집채로는 변화하는 시대의 비바람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지식을 위한 지식, 시대착오적 지혜 등에 대해 윤편은 찌꺼기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어쩌면 윤편은 소위 먹물들, 가방끈 깨나 긴 사람들의 허위의식, 식자들의 지적 허영심을 지적하는 데까지 나가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지식층의 말과 행위의 불일치, 위선과 몸 사림, 자기 보신 등을 비꼬면서 말입니다.

지인의 SNS상태 메시지에는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란 말이 떠 있습니다. 우리의 독서는 길을 아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짐승의 길을 버리고 사람의 길을 찾기 위해 책을 읽되 궁극적으로는 ‘길을 걷기 위해’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 짐승의 길이 아닌 사람의 길을 가는 자세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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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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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武 (171.XXX.XXX.10)
그래도 책은 읽어야죠.
채운 뒤라야 버릴수 있죠.

책은 읽는 것은 사람이 되고저 해서죠.
사람을 넘어서기 위해서가 아니죠.

신 선생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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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23: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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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武 (171.XXX.XXX.10)
여전히 쉰소리 뿐인 사람이 올리 글,
답글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동명 이인 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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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23: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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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현 (119.XXX.XXX.179)
신아연 선생님의 글은 쉽고 가려운 곳을 긁어줍니다. 자작 시 한 편 붙입니다.

제비

푸른 빛 번지는 봄날/ 제비가 찾아 와/ 처마에/ 무허가 집을 지으면/ 정 많은 형님은/ 집 아래 받침을 붙인다/가슴에 돌아 와 집짓는 그대는/늘 푸름 퍼 올리는/ 사랑하는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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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7 06: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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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1.XXX.XXX.82)
따스한 격려 말씀에 자작시까지 주셨네요.

정 많은 형님을 둔 그 제비가 부럽네요.^^

저는 지난 주에 <사임당의 비밀편지>라는 제목으로 첫 소설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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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7 21: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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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11.XXX.XXX.82)
신 작가님의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을 읽기전에는 저의 선입견에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뜻의 글 인줄 알았어요.

읽어보니 나의 무식이 폭로가 되는군요. 장자의 이야기가 참 깊습니다.

" 네 자신을 알라"는 철학자의 글귀로 제 자신을 알아가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모쪼록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지행합일을 이루도록 힘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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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22:03:42
0 0
신아연 (211.XXX.XXX.82)
도움이 되는 글이었다면 더없이 보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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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7 21: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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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soners (223.XXX.XXX.192)
당신들은 죄수들입니다
박정희 감옥의 죄수들입니다
반좌파 감옥의 죄수들입니다
자유대한이라고 적힌 감옥에서 이게 자유인가? 의심을 절대 품지 못하게 세뇌된 채
동원되어 서성입니다
손에 태극기가 들려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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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8:55:10
1 0
dada (112.XXX.XXX.116)
언젠가 제가 말했던 것 같은데, 신아연 작가님의 글은 무엇인가 깨닫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독후에 느끼는 어떤 아련함 같은 것입니다. 부득이 말을 하자면 애수가 스민 잔잔한 여운이나 울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글의 <장자>에 나오는 윤편 이야기는 시사점이 많다고 봅니다. 실재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나 사상은 그 시대의 가장 맑은 거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대상을 어떤 이념이나 편견 없이 그대로를 비추는 ‘맑은 거울’말입니다.

제가 이번 성탄절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구입해 읽은 책은 신아연 장편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신 작가가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진정한 기자 정신과 작가가 대상을 그려내는 긴장감, 느슨함, 그리고 촘촘하게 엮은 서사구조와 깊은 통찰이 느껴졌습니다. 첫 소설을 신사임당으로 정한 것도 참 흥미롭습니다. 신사임당, 신인선, 신아연... 어쩌면 이 소설은 신사임당의 삶이 오늘의 신아연 작가 삶에 투사되어 나온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신사임당을 다시 느끼게 했는데, 그것은 마치 노자 <도덕경> 1장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을 떠올렸습니다. “사임당을 사임당이라고 하면 항상 그러한 사임당은 아니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조선시대 천재적 재능을 가진 한 여성이 자신에게 맞지 않지만 그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아픈 현실을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신인선’에 빙의되어 드러내는 형식, 내면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심리소설이었습니다. 큰 박수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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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3: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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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도 (210.XXX.XXX.37)
다다님 글에 공감하면서도 제생각은 다릅니다. 옛날에는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수레바퀴 장인이 필요했겠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정밀기술로 그정도 뿐아니라 그보다 더 정밀한 것도 얼마든지 할수있기 때문에 윤편의 수레바퀴 이론은 오늘날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하셨는데 과연 뭐가 그런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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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4:31:03
0 0
신아연 (211.XXX.XXX.82)
제 첫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의 첫 서평을 주셨습니다. 모든 처음이 그러하듯이 다다님이 주신 서평은 제게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서평도 가능하구나! 하는. 아,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표현을 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것이 아니니까요.^^

최선을 다한 작품이란 점에서는 부끄럽지 않게 세상에 내 놓습니다.

축하의 큰 박수에 감동의 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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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8 08:33:26
0 0
김종우 (121.XXX.XXX.50)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기록이지요. 기록이 있기에 발전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경험, 생각, 느낌이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 전해줄 수 없어도 기록이 있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나름 새로운 경험과 느낌을 만들며 또 다시 기록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발전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당연히 다릅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도 다릅니다. 물론 배우는 사람들도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그렇게 수정 첨가 삭제하면서 발전해간다 봅니다.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다면 쓸모없는 지식이지요. 나름 삶으로 표현하든지 새로운 것을 만들든지 해야 가치가 나타날 것입니다. 짐승이 되지 않는 길이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더 멋진 글로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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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2: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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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1.XXX.XXX.82)
역사도 기록된 것으로만은 역사라고 할 수 없겠지요. 역사의 의미를 오늘에 되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또한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깨어 있으면서 발 디딘 현실을 두루 살피며 삶을 꾸릴 수 밖에는 없지 않을까요?

격려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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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7 21:51:38
0 0
김윤옥 (219.XXX.XXX.41)
개,돼지로 산지 한참 되었습니다
그 개,돼지를 등쳐서 호의호식하는 무리들을 비웃으면서.
넉넉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조윤선이가
'박근혜가 자신의 정신적 멘토'라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 했습니다.
그간의 불의부정이 터지기 바로 직전의 일입니다.

그 먹물 많이 먹은 조윤선이 지금은 그 멘토랑 엮일까봐 전전 긍긍하는 꼴을 보아야합니다.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결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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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0:32:28
1 0
꼰남 (220.XXX.XXX.208)
짧은 글에 강한 메시지가 들어 있군요.
작가 님이 최근 새로 펴내셨다는
<신사임당의 비밀편지> 구매 욕구가 팍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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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0:29:04
1 0
신아연 (211.XXX.XXX.82)
소설을 내고 부쩍 성장한 느낌입니다.

한 해 동안 제 글을 빼지않고 읽어주시고 댓글로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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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7 21: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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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광 (210.XXX.XXX.250)
자신들에게 주어진 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얻기위해, 길에게 길을 묻습니다. 무수한 이정표가운데, 진리의 길을 걸어야만하기때문입니다. 한해동안 인고의 여러 활동가운데 고생많으셨습니다.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도 많은 작품과 활동가운데 뵙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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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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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1.XXX.XXX.82)
'다니니까 길이더라'는 말도 있긴 하더군요. 길이 있기에 가는 것이 아니라 다니니 길이 되더라는 거지요. 그것이 진리에 도달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좀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게는 찾고자 하는 '길'이 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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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7 21: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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