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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의 인간
양혜은 2017년 01월 10일 (화) 00:17:56

얼마 전, 마지막 대학 시험을 치르면서 제 인생은 ‘번외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번외는 ‘계획에 들어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대학 생활을 돌아보니 학기별로 두 번의 시험을 치르고 발표와 리포트 과제를 수행하는 학사 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친 친구들은 대학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학 교육은 고등학생 때와 다를 것 없는 수행평가의 연속입니다. 사소한 차이라면 수업 교재가 더욱 비싸고 두꺼워졌다는 사실입니다.

대학 교육은 학생들을 사고하는 인간이 아닌 계획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줍니다. 주차별 강의계획서에 따라 체계적인 일정 정리를 잘할수록 학점이 잘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주지 않는 교육을 배움이라고 말하긴 싫습니다. 특히, 시험 범위를 완벽하게 외우고 나서 암기 테스트를 받는 무의미한 시험이 싫증 납니다.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지난 학기에는 한 교수님이 모든 학생이 완벽한 답안을 써서 성적을 주기 힘들다는 이유로 추가 과제를 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모두가 완벽한 답안을 제출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사고력이 아닌 암기력을 요구하는 시험 문제를 냈고 모든 학생이 열심히 그 답안지를 외웠기 때문입니다. 취업의 관문에서 학점 또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어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점수에 연연하는 삶은 자신을 작게 만들 뿐입니다.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사실은 공평하지만 ‘모두가’, ‘적당한 노력의 정도’로 잘 받을 수 있는 성적은 어쩌면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모릅니다.    

물론, 저에게는 잊지 못할 수업들 또한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은 부족한 대답을 하면서 사고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학업과는 관계가 없었지만 ‘첫사랑 경험 쓰기’나 ‘유서 쓰기’와 같은 값진 과제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업은 이론에 대한 일방적인 지식 습득으로 전공에 대한 역량을 키우기에도 부족하고 교양수업의 경우에도 토론과 논술 수업이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가에 있어 객관적인 요소가 많을수록 채점이 효율적일 뿐더러 성적에 대한 이의 제기도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리고 점수를 최우선으로 둔 사람들이 많아져버리니, 사람의 가치까지도 점수로 판단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열심히 학교를 다니진 않았습니다. 봄이 오면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서 꽃을 찾아 떠났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에게는 학교 밖이 훨씬 재밌고 유익했습니다. 스무 살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귀한 딸이 아닌 대접도 받아보았고 사회에는 예의 없고 성난 사람들 또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미팅을 해보면서 사람을 사귀고 재밌게 노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설픈 공부를 해보겠다고 들어간 학회에서는 고마운 은사님들과 배울 점 많은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만남들이 저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저에게는 여러 가지 숫자들이 남았습니다. 학점을 비롯한 토익 점수, 자격증 개수, 인턴 경험과 경력 기간 등등. 이 숫자들이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저를 치장해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숫자를 맹신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를 35점 맞고 어머니의 서명을 어설프게 따라 했다가 담임선생님에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취업을 앞두고 저는 다시 점수로 평가될 예정입니다. 서류전형과 토론 면접, 인·적성 검사를 통해 경쟁자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제 가치는 아무도 점수로 매길 수 없다는 걸 새기고 살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미래와 행보는 아무도 예상 못하는 번외의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양혜은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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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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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5.XXX.XXX.202)
혜은씨, 나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요.


인생은 말이죠, 내가 길을 열어가는 것이지요. 이미 닦여 있는 길은 결국 다다르는 곳도 같아요. 재미없잖아요...

내가 지난 해 12월에 사임당의 불륜을 소재로 하여 <사임당의 비밀편지>라는 제목의 소설을 한 편 썼어요.

사임당이 외도했다고 하니 책을 읽기도 전에 한바탕 욕을 퍼부은 사람도 있었어요. ㅎㅎ

하지만 제겐 사임당을 '사람' 만들어주는 작업이었죠.

혜은씨 표현대로 하자면 '번외의 사임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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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07: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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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은 (220.XXX.XXX.91)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번외'의 신아연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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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15: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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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22.XXX.XXX.98)
획일적인 삶이 아닌 삶,
내가 소중하고 내가 즐거워하며 사는 길을 가세요
사회의 통념이 내 인생을 바꿀 순 없어요
그것을 번외의 삶이라고도 하겠군요
그러다보면 귀한 글이 나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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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04: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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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은 (220.XXX.XXX.91)
취업 준비생이 되니 주변에서 모두 똑같은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그럴수록 저는 부지런히 일탈의 재미를 찾아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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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15: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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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사람좋아요 (112.XXX.XXX.204)
힘내세요~! 말씀이 너무 멋지네요. 번외편의 멋드러진 삶을 기원합니다.
한때 강남 우등생 - 지금 중국에서 작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어떤 아저씨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의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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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0 22: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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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은 (220.XXX.XXX.91)
제가 우등생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열심히 핑계를 만드는 지도 모릅니다ㅎㅎ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삶 멋지세요.'어떤 아저씨'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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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15: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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