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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학’ 개론
이정원 2017년 04월 05일 (수) 00:00:52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꼰대’라는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즉 일반적인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며 학생들의 은어로는 ‘선생님’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늙은이’라고 하면 직장을 그만둔 60세 이상의 사람들을 말하며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대략 1,000만 명 정도의 이른바 ‘꼰대’들이 살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학생들이 말하는 꼰대로서의 선생님은 사실 별로 술안주감이 안 되는 제한적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자유를 구속하는 도덕 선생님쯤으로 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꼰대’라고 부르는 것은 학생들의 애교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선생님 보고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중고생들이지 대학생만 해도 교수 보고 ‘꼰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상사나 간부를 칭하는 ‘꼰대’도 불평불만의 배출구쯤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문제는 늙은이로 부르는 60세 이상의 ‘꼰대’에 있습니다. 옛날이라면 지금의 60세 이상은 모두 ‘꼰대’로서 ‘고려장’을 당했을 나이입니다.

그러나 ‘꼰대’라는 말에 속상해하거나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꼰대’라는 말 속에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지혜와 연륜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꼰대’들에게는 젊은이들이 체험하지 못한 소중한 자산이 있으니 곧 경험입니다. 경험은 젊은이들이 가 보지 못한 길을 가 본 ‘꼰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 있는 나침판이며 지혜의 보고입니다. 정글을 헤쳐가자면 누군가 앞장서서 살이 베이고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겪으면서 나가야 그 일행은 목숨을 구합니다.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무릅쓰고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 간 사람들이 바로 개척자요 지도자며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소위 ‘꼰대’ 세대들입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꼰대’를 ‘수구 꼴통’이라고 낮추어 부르며 지금의 무대에서 사라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꼰대’들은 이 나라를 이만큼 키워온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필자가 중고생이던 195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57불이었습니다. 가난에 헐벗고 굶주리며 초근목피로 연명했습니다. 하루에 왕복 수십 리를 걸어서 통학하며 등잔불 아래에서 공부했습니다. 철 따라 농사도 지었고 휴일이면 산에 올라 낫에 손가락을 베이며 땔나무를 마련했고 가정교사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아버지가 귀한 소를 팔아 마련해 준 등록금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예전 장충체육관이 필리핀 기술자들이 지은 것이라면 이해하겠습니까? 6·25 때 겪은 고생 얘기를 하면 라면이나 피자를 먹지 그랬느냐는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이건 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한 세기 차이입니다. 독일에 가서 노인들 시체를 닦은 간호사와, 1,000미터가 넘는 지하 갱도에서 석탄을 캔 광부와 월남전에 참전해 고엽제를 들이마신 국군장병들이 있어 오늘의 부를 축적한 역사적 사실들을 잊은 채 이미 당신들 세상은 지났으니 물러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한국을 세웠고 그 여력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결혼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들딸들은 덜 고생하고 오늘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잔소리 그만하고 알량한 부모의 권위마저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산업화에 희생된 ‘꼰대’들이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리가 없으면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계단이 없으면 2층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1+1은 2라고 ‘꼰대’가 가르치지 않았으면 지금의 IT니 융·복합이니 하는 4차 산업혁명도 없었을 것이고 국민소득 2만 8,000불로 집집마다 자가용을 굴리는 풍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생 고생하여 풍요의 시대를 열어놓고 나니 역사의 뒤안길로 ‘꼰대’들을 퇴출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말이야…" 이 말이 가장 듣기 싫다고 젊은 세대들은 말합니다. ‘우리 어렸을 적이…’ 없이 어떻게 이처럼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변 없이 그냥 이 무대에서 내려가라고 합니다. 소위 무조건입니다.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고은 시인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고 읊었듯이 ‘꼰대’들이 만들어 놓은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세대들이 막상 사다리를 없애버리면 무엇을 타고 내려오려고 그런 막말을 합니까?

‘꼰대’들에게는 아직 다 풀지 못한 지혜의 보따리가 있고 소중한 경험이 남아 있습니다. 역사는 단절이 아니라 계승입니다. 좋은 가치는 취하고 못 된 가치는 버리는 과정이 역사의 진화입니다. 자기 살을 발라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자신은 빈껍데기로 죽어가는 우렁이 ‘꼰대’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등을 떠다미는 요즘 젊은이들이 내 자식들인지 깊은 자괴심마저 들 만큼 마음이 허전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산을 남겨 놓는 건데 하고 후회한들 버스 지난 뒤 손 흔들기입니다. 그 옛날, 상사들에게 시달리고 자식들한테 치받치며 악착같이 돈을 번 결과가 결국 ‘꼰대’소리를 들으려 한 행동이라면 되돌릴 수 없는 젊음에 속울음을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이미 ‘꼰대’의 권위는 상실했습니다. 설 수 있는 영토가 없습니다. 이제라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꼰대’ 소리를 들을지에 온 촉각을 세우고 온라인에 떠도는 ‘꼰대’가 덜 되기 위한 ‘꼰대의 6하 원칙’이라도 전투적 긴장감 속에 암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꼰대의 ‘6하 원칙’ : WHO(내가 누군지 알아), WHAT(뭘 안다고), WHERE(어딜 감히), WHEN(왕년에), HOW(어떻게 나한테) WHY(내가 그걸 왜)를 속으로 주기도문처럼 외우기를 60세 이상의 ‘꼰대’들에게 감히 권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이 자리라도 유지합니다. 60살이 넘은 1,000만 명의 ‘꼰대’들이 젊은 세대에게 합창합니다. “내 인생을 돌리도…”라고.

그리고 적어도 세 명 이상의 아들딸들을 키우며 공부와 취직과 결혼과 집장만에 모든 것을 내준 ‘꼰대’들에게 사회보장제도 같은 노후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고 광야로 나가라면 후일 당신들의 자식들이 똑같이 주장할 때 그것을 용납하겠는지 묻습니다. 한두 명의 자식들 사교육에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 부모 공양할 돈은 없다고 합니다. 교육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그리고 노인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꼰대’의 빈곤은 악순환을 거듭할 것입니다. 국가와 젊은 세대들은 ‘꼰대’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습니다. 그 옛날 고려장하러 부모를 지고 간 지게를 버리려 할 때 아들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왜 버려요? 이다음 아버지 고려장할 때 아버지를 떠메고 산으로 들어가려면 이 지게가 또 필요한데요.”

                                                                                                                             

   

 

이정원
시조시인. 1939년 충남 예산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고대신문 편집국장 역임. 공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강남지부 회원.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등 수상. 시조집으로 ‘얼레와 어금니’ 등 3권과 산문집 '코드 55'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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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31 (222.XXX.XXX.192)
60세 이상의 직장 그만둔 사람만 꼰대가 아니라 앞뒤 꽉 막히고 융통성없는 독불장군을 꼰대라고 부름. 그래서 20대 30대도 꼰대가 될 수 있음.

그리고 젊은 사람들 눈에는 당연히 늙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니까 꼰대가 될 수 밖에 없음. 젊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업무 지시하는 상사도 모두 꼰대가 되는 것임.

그리고 꼰대라고 부르기 전에 늙은이들의 역사적인 업적을 생각해달라고 하는데, 당연히 젊은이 입장에서는 경험이 풍부하니까 존경과 두려움, 즉 경외심을 가지고 늙은이들을 대해야 하는데 글에 나와있듯 늙은이들이 습관적으로 꼰대 6하원칙을 씨부리니 존경심을 가질래도 가질 수 없고 두려움만 가지느라 경외심이 무너지는 거임.

결론은 꼰대라고 불리는 당신은 정말 꼰대이기 때문에 불리는 거임. 꼰대가 아니면 그렇게 불릴 이유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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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 00:02:32
0 0
ㅋㅋㅋ (223.XXX.XXX.8)
뭐래니 ㅋㅋㅋ
뭘 꼰대들이 다 만들었대니 ㅋㅋㅋ
하여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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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6 21:36:23
0 0
오마리 (203.XXX.XXX.57)
참 이상하지요
왜 한국에서만 이런 비속어가 나와 세대 갈등을 부추기지요
외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앞 서간 세대의 공은 공대로 실은 실대로 객관성을 가지고 말하며 대체적으로
노인에 대한 예의는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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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6 03:43:43
0 0
21321 (222.XXX.XXX.192)
외국에도 다 하나씩 늙은이를 비하하는 속어가 있으니까 전혀 이상해할 필요 없으십니다 ㅎㅎ
답변달기
2017-04-07 23: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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