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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리의 내면을 채워야
방석순 2017년 06월 13일 (화) 00:01:07

보훈의 달 6월 대한민국을 찾은 해외의 6‧25 참전용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사방 잿더미의 참혹한 광경을 보고 돌아갔는데 이런 모습으로 변하다니… 이 땅에서 피 흘리며 싸운 보람을 느낀다!”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재외동포들의 감회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학교 졸업 후 줄곧 해외에서 살다가 수십 년 만에야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는 친구는 떠나기 전날 밤 송별연에서 기어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친구들의 환대 때문만은 아닌 듯했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하늘 높이 치솟은 고층건물. 까마득히 높은 고층에서 지하 3, 4층까지 재빠르게 오르내리는 승강기와 자동계단(에스컬레이터). 거미줄처럼 엮인 고속도로와 시골 뒷마을까지 뻗은 포장도로. 전국을 일주하는 자전거도로. 도회는 물론 산간벽지에까지 예쁘게 가꾸어진 공원과 산책길. 주말과 명절마다 고속도로를 메우는 자동차 물결. 언제 어디서나 마음먹은 대로 통화하고 사진 찍고 게임을 즐기는 최신형 휴대전화.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가 언제 이렇게 호사스러운 생활환경을 갖게 되었을까,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그렇게 자랑스러운 편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현대 도시인들에겐 문명 생활의 상징이라고 할 아파트, 자동차,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자세나 태도에는 부끄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공기 좋은 교외의 아파트로 이사한 지인은 마침 1층을 택해 드넓은 정원 가꾸는 재미로 산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따금 위층에서 느닷없이 떨어지는 담배꽁초에 기겁을 한답니다. 끄지도 않은 꽁초의 불이 머리나 옷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왜 그런 건 생각조차 못 하는 것일까요. 과자 봉지, 과일 껍질, 베어 먹다 남은 오이가 떨어지는 날도 적지 않답니다.

2015년도 통계로는 우리나라 주택 총 1천 636만여 호 가운데 아파트가 980만여 호입니다. 전체의 약 60%를 차지합니다. 다가구, 다세대, 연립 주택을 합치면 공동주택은 전체의 80%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공동생활에 필수적인 이웃 간의 이해나 배려, 공중도덕은 잊은 듯이 살고 있습니다. 살인까지 부른 아파트의 층간소음 시비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입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 대수는 지난해 2천 180만 대를 넘었습니다. 화물차나 특수차량을 제외한 승용차와 승합차는 1천 823만여 대로 전체의 84%입니다. 작년 한 해 일어난 교통사고는 23만 2천여 건입니다.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 100대 가운데 한 대꼴로 사고를 일으킨 셈입니다.

이로 인해 한 해 동안 4,622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목숨은 건졌어도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된 중상자를 포함, 부상자는 35만 3천여 명에 이릅니다. 한 달로 치면 1만9천여 건의 사고가 나서 385명이 죽고, 2만 9천여 명이 부상했습니다. 매일매일 637건의 사고가 나서 12~13명이 죽고, 968명이 다치고. 차량 1만 대당, 인구 10만 명당 희생자 등 각종 자동차 사고기록 비교에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OECD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의 원인이 부주의, 졸음 같은 단순 실수 못지않게 우리의 고약한 운전습관 탓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실컷 늑장 부리다가 운전대만 잡으면 급해지는 못된 버릇, 제 잘못은 덮어놓고 남 잘못은 결코 용서 못 하고 욕설 퍼붓고 보복하려 드는 이기심과 편협함이 후회막급의 큰 사고를 부르는 것입니다. 운전면허 시험에서 운전기술보다는 교통법규와 질서의식, 공중도덕을 더 중하게 평가하는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말 국내에 보급된 스마트폰 숫자가 5천 530만 대를 넘었다고 합니다. 5천100만의 전체 인구를 능가하는 숫자입니다. 스마트폰은 해가 갈수록 진화해서 이제 거의 만능의 영물이 되었습니다. 통신, 녹음, 결제, 사진 촬영, 메모, TV 시청, 음악 감상, 경보, 계산, 내비게이션, 게임, 건강관리…

그렇게 갈수록 똑똑해지는 스마트폰이 실상 사람들을 갈수록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길 가다가 걸려 넘어지고 도랑에 빠지고 심지어 지하철 플랫폼에서 떨어지는 사고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잡한 도심 대로는 물론 험한 산길에서조차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옆 사람에게 주는 불편이나 피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철이나 버스 속에서, 음식점이나 공원에서 소음 공해는 물론 미주알고주알 남의 집안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어느 날 버스에서 본 풍경입니다. 젊은 여인 하나가 남자친구의 전송을 받으며 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방금 헤어진 친구와 통화를 시작했습니다. 친구 이야기, 가족 이야기, 회사 이야기… 함께 있는 동안에는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별의별 이야기가 다 이어졌습니다. 버스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는데도 통화를 끝내지 못했는지 멈칫거리더니 운전기사에게 몇 번씩이나 “잠깐만요!” 하며 차를 멈춰 세웠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중산층 기준은 외국어 하나쯤 자연스럽게 하고, 악기와 스포츠 한 가지씩 몸에 익히고, 남 대접할 정도의 요리 실력을 갖추고, 약자를 도우며 공분에 의연히 참여하는 것이라지요. 우리의 중산층 기준은 30평짜리 아파트, 500만 원의 월급, 2,000cc급 자가용, 1억 원의 예금, 연 1회의 해외여행이라고 들었습니다.

해외에서 이 땅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물질적인 발전상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아직 선진국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물질은 그만하면 풍족한 듯합니다. 이제 거기에 걸맞게 우리의 내면을 탄탄히 채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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