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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도망갔다
김수종 2017년 07월 03일 (월) 00:00:42

얼마전 제주도에 갔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지가 저녁을 같이하자며 시내 외곽 ‘도깨비 도로’ 근처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에 있는 초밥집이 유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밥집은 그날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난처해진 친지는 “좀 멀지만 같은 주인이 같은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식당이 ‘삼양해수욕장’에도 있다.”며 그리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삼양해수욕장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아스라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삼양해수욕장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반세기 전 제주도에 해수욕장이라면 삼양해수욕장과 함덕해수욕장 등 두 곳 정도였는데, 삼양해수욕장은 제주 시내에서 비교적 가까워서 여름이면 사람들이 많이 가는 피서지였습니다.

당시 삼양해수욕장은 검은 모래로 유명했습니다. 제주도 토박이에게는 해변의 현무암을 보며 살았기 때문에 검은 모래가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었지만, 대천이나 해운대 해수욕장에 익숙한 서울 사람들에겐 별난 곳이었습니다. 서울의 문인들이 삼양해수욕장의 검은 모래에 빨가벗은 몸을 푹 묻고 피부를 단련한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습니다.

아, 그런데 반세기 만에 찾아간 삼양해수욕장의 옛날 경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해초가 다닥다닥 붙었던 검붉은 현무암 해변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가 되었습니다.

해안가 도로를 따라 펜션, 아파트, 상가 빌딩이 줄을 지어 늘어섰고 온갖 음식점과 카페의 간판이 저녁놀과 어울려 이방의 도시에 들어선 느낌을 주었습니다. 야트막한 방파제를 따라 바다 쪽으로 갔더니 방파제 아래 조그만 모래톱이 나타났습니다. 저 모래톱 흔적이 그 유명한 삼양해수욕장의 검은 모래사장이라니 몸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삼양해수욕장이 옛날 모습대로 남아 있을 수가 없는 일들이 그동안 제주에서 벌어졌습니다. 제주도 인구는 당시 30만 명에서 지금은 65만 명이 되었고, 연간 1,500만 명의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니 제주도가 옛날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시는 해초나 소라를 따거나 농작물을 길러야 먹고살았지만 지금은 빌딩을 짓고 카페나 음식점을 해야 먹고사는 제주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튿날 오랜만에 친구의 가게를 찾았습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그 가게 이름은 ‘자연사랑’입니다. 옛 가시초등학교가 폐교되자 빌려서 꾸민 사진 갤러리입니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 ‘자연사랑’ 서재철 관장은 그사이에 머리가 더 하얗게 세었습니다.

“그동안 연락도 없고 어디 외국이라도 머물다 온 건가?”
“외국은 아니고 저승 문을 얼씬거리다 왔네.”

작년 크게 다쳐 인사불성이 되고 장기입원으로 전화연락도 못 했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자 서 관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랬구나. 이제 우리 다른 하늘 아래서 사니 죽어가도 서로 알 수가 없어. 자주 연락하며 살자.”

   

그는 갤러리에 흑백사진을 걸어놓고 전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시회 이름은 ‘기억속의 제주 사람들’입니다. 옛날 제주도 풍물 사진이었습니다. 4월 1일 시작된 전시회는 오는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서재철 관장은 젊은 날 제주도의 일간 신문에서 사진기자로 원숭이처럼 나무와 암벽을 잘 탔습니다. 한라산을 1,000번 올랐다고 장담할 정도로 제주도의 자연과 사람을 찾아 수십만 번 셔터를 눌렀던 사람입니다.

20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그는 제주 시내에 ‘자연사랑’이란 간판을 붙이고 사진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골프를 같이 치면서 그는 “이제 현장 기자는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왜?”하고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몇 달 전 한라산 숲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작업을 하다가 떨어졌어. 높지 않은 나무이고 낙엽이 폭신한 땅바닥에 떨어져서 다치지 않았는데, 옛날 같으면 벌떡 일어나 다시 올랐을 텐데 그냥 멀거니 푸른 하늘만 쳐다보게 되더라고. 일어나기가 싫었어.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의 사진기자 생명이 다한 거라고. 그렇게 많이 한라산을 오르고 나무를 탔는데 떨어져 본 것은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사진 갤러리나 만들어 살고 싶다.”

그런 말을 하고 몇 년이 흐른 후 그는 초등학교 폐교를 빌렸다며 가시리로 그 간판을 옮겼습니다.

기자직은 그만뒀지만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아 매년 몽골을 다녀오고 지난 5월에는 히말라야 동부 지역을 보름간 여행하고 왔다고 합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기억속의 제주사람들’을 관람했습니다. 사진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말테우리(목동)가 시골 들판에서 20여 마리의 말을 몰고 가는 광경이었습니다. 목동이 막대기로 등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여유로운 이미지였습니다. 억새가 하얀 것을 보면 가을 풍경입니다. 지금은 제주도 어디에서고 찾을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입니다.

“제주도에 저런 때도 있었구나.”

내 말에 서재철 관장은 “내가 기자 초년병 때 찍은 거야. 1970년대 초중반.”

“그래? 저 사진 찍은 곳이 어딘데?”
“구좌읍 하도리야. 목동이 말을 몰고 물 먹이러 가는 걸 찍었던 기억이 난다.”
“하도리가 어디쯤이야. 사진을 보니 바닷가는 아닌 거 같고.”
“하도리도 모르나? 네 고향이 제주라고 말할 수 있어?”
“많이 들어본 마을이지만 바닷가로 알고 있는데. 저런 곳은 없을 텐데.”
“하도리는 철새 많이 오는 바닷가야. 그쪽으로 지금 카페, 식당, 펜션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월정해변 들어봤지? 거기서 하도리가 멀지 않다. 요즘 월정해변은 강남 뺨친다. 평당 1천만 원 한다던가.”
“저 말들이 풀을 뜯던 곳이 그렇게 변했다는 거지?”
“저 사진을 찍은 곳을 나도 정확히 몰라. 그땐 해변 가까이에도 저런 들판이 많았거든. 이젠 말길이 없어졌고 포장도로에 아마 카페나 펜션이 많이 자리 잡았을 거야.”

차를 타고 월정해변을 돌아보았습니다. 바다색깔은 하얀 모래 위에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해변은 온통 이상한 카페 건물이 즐비했습니다.

제주도 어딜 가나 해변엔 제주도가 없습니다. 제주도가 도망가 버렸습니다. 마치 서재철 관장의 까만 색 머리털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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