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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뉘르주와 양떼
김홍묵 2017년 07월 04일 (화) 00:00:39

악한 파뉘르주(Panurge). 16세기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Fransois Rabelais 1494~1553)의 풍자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나오는 일화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파뉘르주는 교활하고 잔인하며 사악한 사내로 거짓말과 비꼬기를 잘 하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며, 죽음 외에는 두려워하는 게 없었습니다. 머리도 총명하고 위트가 풍부했지만 그는 그런 장점을 좋은 쪽으로 살리지 못하고, 못된 짓거리만 일삼았습니다.

어느 날 한 상인이 양을 배 가득히 실었습니다. 갑판 위에까지 양이 꽉 찼습니다. 그 배에 파뉘르주가 타고 있었습니다. 상인은 이 사나이의 인상이 좋지 않아 그를 멸시하는 말을 했습니다. 파뉘르주는 상인에게 복수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시침을 떼고 양을 한 마리 사겠다고 흥정해 양떼 중에서 두목격인 가장 큰 놈을 시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 샀습니다. 그리고는 그 양을 번쩍 들어 물속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양은 레밍 쥐처럼 맹목적으로 두목의 뒤를 좇는 습성을 지녔습니다. 파뉘르주의 예측대로 갑판 위의 양떼가 울부짖으며 모조리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양들은 끝내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두 물귀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상인은 얼굴이 노랗게 되어 마지막 한 마리의 꼬리를 잡고 늘어지다가 함께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파뉘르주의 복수는 이처럼 잔혹했습니다.

동물들의 집단 자살 행위는 오늘날에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5년 11월 터키 동부의 밴 지방에서는 1,500마리의 양들이 줄지어 언덕 아래로 뛰어내려 400마리가 즉사했습니다. 2012년 10월 1일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운전자들은 한순간에 벌어진 새떼의 습격에 혼비백산했습니다. 한 무리의 새들이 전선에서 뛰어내려 자동차 앞 유리를 향해 돌진했기 때문입니다. 충돌 사고로 100마리 이상의 새들이 죽었습니다.

이밖에도 2009년 미국 서부 해안에서는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인 펠리칸 수백 마리가 달리는 자동차나 바다 위의 보트와 충돌해 사망했습니다. 2011년 11월 뉴질랜드 남섬 북쪽 해변에선 돌고래 61마리가 숨진 채 모래톱에 밀려왔고, 숨이 붙어있는 것들도 물속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의 노력을 거부한 채 숨을 거뒀습니다. 2009년 8월 스위스 라우터브룬넨 고원지대에서 풀을 뜯던 젖소 28마리가 수백 미터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숨졌습니다.

인간에게도 양과 같은 습성이 있을까?

라블레보다 훨씬 앞서 <영웅전>을 쓴 로마의 플루타크(Plutarch 46?~120?)는 로마인의 성향을 양떼의 습성에 비유했습니다.
“로마인은 양과 같다. 양은 혼자서는 목동의 뒤를 따르지 않지만, 떼를 지어 있으면 서로 간에 애정이 생겨 앞장서는 두목의 뒤를 열심히 따라간다. 그처럼 제군들도 떼를 지어 끌려가는 것이다.”

20세기에 벌어진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의 옥쇄라는 이름의 집단 자살은 양떼의 습성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일제 군부 정권은 전쟁 말기 무조건 항복을 거부한 채 ‘1억 옥쇄’ ‘1억 특공’(당시 일본 인구가 1억 명 정도였음)을 충동질했습니다. 태평양에 널린 섬들의 뭇 기지에서 미군의 공격에 옥쇄나 만세돌격(평균 96% 사망)으로 수십만 명이 죽었습니다. 무기도 식량보급도 끊긴 상태에서 할복이나 수류탄·청산가리 등으로 자살항거를 감행한 것입니다.

1978년 11월 18일 남미 가이아나에서는 미국인 912명(어린이 276명 포함)이 집단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1956년부터 백인과 흑인의 차별을 반대하는 기독교파 인민사원(Peoples Temple)을 세운 교주 짐 존스가 신도 전원을 독극물 주사나 총격으로 떼죽음 한 초대형 자살사건입니다. 미국에서 남미로 근거를 옮긴 인민사원의 참상을 살피러 온 상원의원 리오 라이언 일행을 사살한 존스가 보복이 두려워 사주한 범행입니다.

동물학자나 사회심리학자들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진 못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의 집단자살 배후에는 정치적·종교적 사주가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생을 포기하고 자살을 택하는 것은 상식이나 일상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의 옥쇄는 천황의 신국(神國)을 수호하겠다는 군국주의자들의 망령이, 인민사원의 참극은 유토피아 망상에 몰입한 사이비 교주의 독선이 빚은 결과물입니다.

특히 정부나 권력자의 선동은 국민의 참화를 더 키울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게이오의숙(慶應義塾:게이오대학의 전신)을 세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4~1901)는 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는 관존민비 사상을 먼저 타파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국민이 국가를 걱정하는 것은 정부이고,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독립의 기력을 잃으면 겉으로 문명의 이기를 갖춰도 이는 민중을 위축시킬 뿐”이라고. 그리고 상비군의 제도화, 학교 설립, 철도 건설 등 메이지(明治) 신정부 이후의 눈부신 발전을 걱정했습니다.

그는 이런 국가 우위 현상을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옛 정부는 무력만 사용했으나, 지금의 정부는 무력과 지력을 병용하고 있다 △옛 정부는 민중의 힘을 눌렀으나, 지금 정부는 민중의 마음을 빼앗았다 △옛 정부는 민중의 육체를 지배했으나, 지금 정부는 민중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옛 정부는 민중에게 귀신처럼 보였으나, 지금 정부는 하느님처럼 보인다”라고.

그러면서 후쿠자와는 “씩씩한 모습의 상비군 모습은 박수의 대상이지만, 민중 위압의 수단으로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정부가 설치한 학교와 철도는 진보의 증거라며 자랑함이 당연하지만, 국민은 오히려 정부의 은혜라 생각하고 더욱더 관의 시혜에 의지할 뿐이다”고 경계했습니다. 어쩌면 만주국을 만들고 중국·러시아와의 전쟁에 이어 미국과의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훗날의 일본에 대한 경고였는지도 모릅니다. (저서 <학문의 향기>에서)

우리나라는 안전지대일까?

1980년대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존 A 위컴은 한국인의 속성을 쥐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AP통신과의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한국 국민들에게는 아직 적합하지 않다. 한국인과 한국 언론은 전두환 정권을 재빨리 지지했다. 한국인은 쿠데타를 일으킨 반역자라도 지도자로만 세우면 무조건 따라간다. 한국 국민성은 쥐와 같아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이 (줄지어) 따라갈 것이다”

항의가 잇따르자 그는 북극지방에 사는 레밍 쥐의 습성을 일컬은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시궁창이나 일반 들쥐와 달리 레밍 쥐는 천적이 없어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먹이사슬의 균형이 깨집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밤중에 줄지어 빙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집단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집단 자살하는 땬 짐승이나 새와는 다르지만 생사를 가리지 않고 우두머리를 따라 내닫는 속성은 같습니다.

새 정부 들어 집단적 요구와 행동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국민적 저항’이라고 선언했는데도 민노총과 전교조는 우리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며 응분의 대가를 내놓으라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의 최저임금 10,000원 공약에 초중고 구내식당 근무자들이 파업하는 바람에 학생들은 빵을 사 먹거나 짜장면을 시켜 먹고 있습니다. 장관 후보 청문회에서 ‘부적격’ 발언을 한 의원에게 문자폭탄을 화살처럼 쏘아댑니다.

먹이사슬의 변혁을 외치는 집단의 선두에 만에 하나 선동가·위선자·아첨꾼·사이비가 끼어든다면 자칫 국민은 희생양이 됩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다운 나라 건설은 물 건너가고 맙니다. 정부가 약속한 원칙과 방향에 어긋남이 있을 때 제동을 걸 수 있는 깨어 있는 국민만이 자유민주주의 조국을 지키는 원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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