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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서 삶의 길을 묻다
이정원 2017년 11월 10일 (금) 00:58:46

나에게는 93세로 작고하신 양부님과 87세의 양모님이 생존하고 계십니다. 굳이 양부모님이라고 밝히는 것은 내 나이가 80으로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최소 100세는 넘으셔야 하는데 양아버지와 13세, 어머니와는 7세 차이이고 보니  많은 분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부모님은 김포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오셨습니다. 양부님은 작년 봄에 발병한 심각한 당뇨병 때문에, 양모님은 19년 전에 시작된 중증 치매 때문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양부님이 퇴원하실 때 주치의가 절대로 집으로는 퇴원하지 말라는 권고에 따라 의사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셨고, 양모님은 아무도 못 알아보시고 말씀도 못하시며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중환자시라 누군가가 반드시 수발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양부님 곁에 계시는 게 서로가 마음의 안정을 얻고 치료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으로 2016년 5월에 김포에 있는 요양병원 특실에 두 분을 함께 모셨습니다.

양부님은 고령으로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시어 단장을 짚고 겨우 1층 매점에나 가시는 정도이셨습니다. 보청기를 끼셔도 귀가 어두워 텔레비전 음량을 최대한 올려야 뉴스라도 보지만 어찌 소리가 큰 지 옆방에서 항의까지 한다고 간병인이 귀띔했습니다. 두 분 모두 자기 의지력을 잃고 새장 속에 갇힌 십자매처럼 모이를 받아먹는 신세가 되셨으니 인생이 참으로 무상함을 실감합니다.

요양병원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가 되면 아무리 좋은 병원, 좋은 병실에 입원한들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폐쇄 공간 속에서 남은 삶을 보내야 합니다. 그 옛날 살림이 궁핍할 적에 한 사람이라도 먹는 입을 줄여야 한다고 늙으신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속에다 버리고 왔다는 고려장 얘기가 실감 납니다. 고려장이 한국의 민도를 폄하하려는 일제의 황국사관이 날조한 거짓말이라고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요양병원에 갇힌 노인들을 보면서 ‘현대판 고려장’을 떠올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환자들 자신일 거라고 봅니다.

삼시세끼 밥 먹고 바깥출입을 못한 채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거나 우두커니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만 물끄러미 내다보는 신세라면 어디에서 참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사람은 단장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바깥세상으로 나들이를 해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자유라는 것이 그래서 삶에는 절대적 실존이요 선이며 지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세상과 단절해서는 금은 재화가 길가의 돌보다도 못하게 느껴집니다. 나쁜 일을 하면 감옥에 가두어 세상과 단절시킨 채 고독과 싸우게 하는 것은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여 다시는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못하게 반성의 참회를 하라는 교도 행위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자유를 차단당하는 형벌이 얼마나 인간에게 혹독한 고문인지는 환자가 되어 무심한 창밖을 바라보면 깨닫습니다.

그 병마와 싸우시던 양아버지께서 병석의 어머니를 두고 지난 6월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밤낮으로 고생하셨고 한편으로는 오래 사시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오셨는데 심장마비로 유언 한마디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새벽 3시에 연락을 받고  택시로 병원으로 가서 인공호흡을 시키고 있는 의사 덕분에 가까스로 임종만 지켜보았습니다. 불쌍한 아내를 홀로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양어머니를 찾아뵙고 보니 남편의 죽음을 모르시는 안타까움에 눈물이 납니다.

인생무상을 절감합니다. 나이를 먹고 양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지나온 내 과거가 이리 그립고 남은 미래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습니다. 건강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양병원에 올 때마다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뭉크의 절규를 양부님 눈에서 읽었고, 수잔 헤이워드의 “나는 살고 싶다”는 생의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흔드는 양모님의 손가락에서 발견합니다.

양아버지의 영면을 목격하면서 내가 이제부터 해야 할 우선순위를 손꼽아 봤습니다. 우선 올해로 금혼을 맞았으니 50년 전에 면사포를 쓴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앨범에서 들춰보며 신혼여행 중의 달콤한 추억을 회상해 봐야겠습니다. 다음은 해외여행입니다. 마침 45년 된 대학교 신문사 선후배 동인 모임인 ‘호경회’에서 11월 중순에 라오스를 관광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여자들이 결정하고 남자들은 따라가는 상황입니다. 두 사람 몫으로 3박 5일에 250만 원을 냈습니다. 5명의 회원이 부부동반으로 10명이 가는데 나이가 74세에서 88세까지 연로한 분들이라서 여행 스케줄 중 버스로 5시간이 걸리는 관광지를 비행기로 가기 때문에 경비가 비싸진 것입니다. 건강이 최고라는 평소의 지론을 확대하여 최근 시작한 1시간씩 걷는 건강 보법도 꾸준히 실천해야겠습니다.

나는 양아버지의 죽음과 양어머니의 병상 생활을 지켜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동행자는 반려자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평소 “당신을 지켜줄 사람은 나뿐이다”라고 다시 한 번 큰 소리도 쳐보고 “내 마지막 소원은 당신 무르팍을 베고 눈을 감는 것”이라고 아첨도 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이지만 절대로 사전 증여하지 말고 우리 먼저 쓸 곳에 쓰고 남으면 물려주자고 손가락도 걸어야겠습니다. 재산을 일찍 물려주고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는 이른바 ‘배 주고 뱃속 빌어먹는 신세’가 된 경우를 신문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1년 5개월 남짓 요양병원을 드나들며 인생에 대한 많은 교훈을 배웠습니다. 새장의 새는 아무리 목청을 뽑아도 그건 노래가 아니라 울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실존’을 터득했습니다. 둘 중에 누군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면 남은 하나는 얼마나 외롭고 고독할까 생각하며 남은 인생에게 내가 어떻게 마지막 삶을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지 그 길을 고민해 봅니다.

 

 

                                                                                                                             

   

 

이정원
시조시인. 1939년 충남 예산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고대신문 편집국장 역임. 공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강남지부 회원.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등 수상. 시조집으로 ‘얼레와 어금니’ 등 3권과 산문집으로 '코드 55'와 ‘피아노 치는 시인’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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