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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의 협박 디엔에이(DNA)
정숭호 2018년 04월 20일 (금) 00:26:53

인터넷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된 김모 씨, 필명이 드루킹이라는 그 사람 기사를 읽다가 예전 일이 생각났다. 신문사에서 일하던 어느 가을 아침, 나는 한 다방에서 마주 앉은 사람에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고 있었다. 내가 일하던 신문사와 그가 이끄는 단체가 공동으로 어떤 공익적인 사업을 하고 있었고, 나는 신문사를 대표해 그와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처음엔 잘되는 것 같았는데, 곧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그게 심해지자 그에게 따진 것이다.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하겠다고 한 일은 하지 않으면서 신문 지면을 통한 홍보 효과만 누리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나는 “약속을 안 지키는 이유가 뭐냐?”고 말하면서 준비한 메모를 조모조목 짚어 나갔다. 기자의 ‘갑질’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제시한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 조건을 조건으로 해서 다른 곳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소문도 챙겨봐야 했다. 내가 빠른 말로 따지는 동안 그는 고개를 숙이고 듣고만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곳했다고도 할 수 있는 그의 태도에 나는 더 신이 났고, 내 말의 어조도 더 강경하고 높아졌다. 논리와 증거도 나에게 유리했다.

말을 마치고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보시오’라는 태도를 지으며 물을 한 모금 마시려는데, 그가 고개를 들더니 “말씀 다하셨습니까? 저도 한마디 드리겠습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다른 말은 하나도 없이 “우리가 남 잘되게는 못해도 못되게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정말 한마디만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어떻게 그 자리가 끝이 났는지 지금은 생각 안 나지만 그 비논리, 그 비이성, 그 결연한 살기(殺氣)와 함께 오랫동안 그 단체를 이끌면서 현장에서 익혀온 그의 전략 전술에 비하면 기자를 하면서 보고 익힌 나의 경험과 전투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꼬리를 내린 사람은 나였지 싶다. 상대방의 면전에서, 어떤 논리도 반박도 없이 그저 ‘너 죽고 나 죽자’고 달려들면 잃을 것이 많은 쪽이 꼬리를 내리는 게 인간사 아니던가.

신문사 생활에서 제일 곤혹스러웠던 게 바로 그런 일들이었다. 드루킹은 인터넷을 통해 자기 힘을 과시했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한 종교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나가면 할머니 신도 수백 명이 회사로 몰려와 1층에서 꼭대기인 13층까지 주문을 외우면서 계단을 줄지어 오르내렸고, 종교단체도 아니면서 수행자를 모으던 단체에 대해 그 목적과 과정이 수상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날에는 그 단체 간부들이 편집국장실을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신문사와 그 단체가 함께 벌였던 그 공익적인 사업은 조금 더 진행되다가 ‘적당한’ 선에서 막을 내렸다. 그가 이끌던 단체는 그 후에도 다른 곳의 협찬과 후원으로 공익적인 사업을 계속했다. 그런 소식을 전한 보도를 접하면 그날 아침의 그가 꼭 생각이 났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 눈빛, 조곤조곤한 목소리, 어두침침한 다방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 드루킹! 당신의 협박도 그날 아침의 그를 생각나게 하오. 당신 말처럼 그에게 나는 '날려 버릴 수 있는 기자 나부랑이'나 아니었나 모르겠소. 또 그를 생각하면서 그 세계의 협박 디엔에이(DNA)가 변하지 않았음도 확인할 수 있었소. ‘남을 잘되게는 못해도 못되게는 할 수 있다’는 그 정신, ‘너 죽고 나 죽자’는 그 막가파적 돌진! 그 디엔에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했소.

그러고 보니, 금감원장에서 물러난 그 사람도 그 디엔에이를 보여준 것 같소. 재작년 국회의원을 그만뒀을 때 무슨 연구소를 차려놓고는 국정감사 피감기관 사람들에게 감사를 잘 받는 방법을 가르치며 꽤 많은 액수의 수강료를 받았다니 하는 말이오.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같은 피감기관 사람들이 그가 불러 모을 때 협박받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는 것 아니겠소? 다음엔 누가 언제 어떻게 그 디엔에이를 발현할 것인지가 궁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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