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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의 세 번째 만남
방석순 2018년 04월 26일 (목) 00:21:32

내일 남과 북의 최고 권력자가 만납니다.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처음과 두 번째 만남에서 서로 주고받은 약속은 무엇이었던가? 그 야단스러운 만남의 결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던가? 자연스레 되짚어 보게 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남북 정상 간 만남이 불신과 반목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그렇다면 ‘서울 불바다’니 핵 미사일 발사 위협에까지 이른 작금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다소 과격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기억에는 요란했던 만남의 껍데기로 빛바랜 기념사진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이 남았을 뿐입니다.

분단 이후 55년 만인 2000년 6월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남의 김대중, 북의 김정일, 두 정상은 이른바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남의 연합제안과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인도적으로 풀어간다.’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제 분야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한다.’ ‘합의 내용의 조속한 이행을 약속한다.’는 5개항이었습니다.

합의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고, 남측에 억류되었던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일시에 북으로 돌아가고, 개성공단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납북자나 국군 포로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안전장치 없이 시작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비판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은 남북 화해, 통일 허상의 들뜬 분위기 속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2007년 10월 남북 최고 당국자가 두 번째로 만났습니다. 노무현과 김정일. 두 사람은 이번에도 평양에서 ‘10·4선언’(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선언문 길이도 엄청났고, 포함된 내용도 가슴 벅찬 것들이었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적극 구현해 나간다.’ ‘내부 문제에 간섭 않고, 통일에 대비해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간다.’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준수하고,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서해에 공동어로수역을 추진한다.‘ ‘정전체제 종식,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관련국 정상들이 참여해 종전을 선언하도록 추진한다.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의 공동성명과 합의가 이행되도록 공동 노력한다.’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해 개성공업지구, 신의주 철도, 평양 고속도로, 남포 조선협력단지 등 경제협력사업을 확대 발전시킨다.’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킨다.’ ‘이산가족 상봉을 확대하고 영상 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한다.’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한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한다.’

그러나 불가침 의무, 핵 문제 해결 노력 등 여러 합의가 공염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동어로수역 설정 합의는 당장 상당한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6·25전쟁에서 피로 지켜낸 우리 해역을 스스로 포기해 어민 생계를 위협하고, 서해 남침에 구실을 주었다는 비판까지 일었습니다.

원래 협상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의 주장만 수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합의 내용이나 그 이행 결과가 양측에게 모두 타당하고 수긍할 만한 것인지는 엄격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만약 국민의 기대나 이해를 넘어선 합의라면, 어느 일방에게 손해를 끼치는 합의라면 그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는,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입니다

남북 대치상황의 극적인 반전과 거듭된 변화를 지켜보면서 일희일비는 금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냇물에 떠내려온 꽃잎 하나로 섣불리 봄이 왔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핵 미사일 한 방의 위협에 라면 사고 땅굴 파며 부산을 떨 일도 아닙니다. 정상 회담 이전에도 이후에도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청와대 기습 미수,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판문점 도끼 만행, 남침용 땅굴, 강릉 잠수함 침투, 연평 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핵·미사일 실험과 발사 위협 등등.

통일은 나중으로 젖혀 두고 당장 한반도 긴장 완화와 상호 이해와 협력의 길을 찾기 위해 남북의 대화나 정상회담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1968년 1월 북한 124군 무장 게릴라의 청와대 기습 시도가 있었음에도 1972년 남북 당국은 은밀한 접촉으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을 담은 ‘7·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했었습니다. 김일성 사망으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1980년부터 이어진 남북 간 끈질긴 접촉으로 1994년 7월 처음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데 비하면 접촉 시도조차 보이지 못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특히 남북관계에 무심하고 무능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합니다.

과거와 달리 이번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 의제는 분명합니다. 북핵 폐기와 체제 유지입니다. 기대만큼 걱정도 없지 않습니다. 과연 북이 지금까지 엄청난 땀과 돈을 들여 자구책이라며 만들어 놓은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혹시 상대에게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는 게 아닐까. “나도 한 건 했어!” 생색만 내려다 덤터기 쓰는 건 아닐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에 구멍을 내어 우리만 ‘왕따’당하지는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일은 먼저 만남 자체를 자신의 공적으로 치부하려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의 눈을 훔치는 속임수요, 국민의 기대와 믿음에 대한 배신입니다. 만남에 앞서 과거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도 숙고해야 합니다.

조급히 성과를 노려서 될 일도 아닙니다. 상대는 어리지만 세습 권력을 지키기 위해 혈육과 측근도 가차 없이 처단하고, 핵 미사일 개발을 위해 인민을 굶겨 죽이는 비정상적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확인하고, 수용 가능한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민이 납득하고 세계가 이해하며 이행 가능한 합의 이외의 어떤 정치적 허사(虛辭)도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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