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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지(法隆寺)에서 <상>
오마리 2008년 01월 26일 (토) 00:02:11
   
  백제관음상  
유치원에 다닐 무렵 큰오빠가 외국 유학길에 사다 주신 만화경은 내게 꿈의 산실이었습니다. 잔디 위에 사슴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나라(奈良)공원과 후지(富士)산이 보이는 하코네(箱根)의 벚꽃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등이 총천연색과 3D(입체)로 보이는 만화경은 나를 황홀하게 하였습니다. 극장에서 보던 영화보다 더 아름다웠던 만화경을 가진 그 때부터 여행의 꿈은 시작된 것입니다.

만화경 속의 세계 각국 명물 중 나라시의 나라공원은 수십 년 지난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왜 나라공원만이 유난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는 가야 하는 곳으로 각인되어 왔는지는 내 자신도 의문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사슴이 푸른 잔디 위에서 평화로워 보인 탓이었는지, 아니면 국사시간에 배운 고구려 담징(曇徵)의 벽화가 나라시의 호류지(法隆寺)에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후 일본 여행을 자주 하면서도 답사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인지 호류지만 미루었던 것을 드디어 작년 봄 간사이(關西) 공항 근처에서 머물며 백제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호류지의 국보 5층탑  
가장 큰 의미를 둔 곳은 아즈카(飛鳥ㆍ백제문화라 알려짐)와 호류지였습니다. 오사카(大阪)와 간사이 공항의 중간지점 덴노지(天王寺)에서 긴테츠(近鐵) 전철로 바꿔 타고 호류지를 향하는 동안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드디어 호류지를 가는구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의 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곳 호류지, 그리고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말로가 이곳에 소장된 백제관음상을 본 후 “만약에 이 지구가 끝날 때 단 하나의 보물을 구해야만 한다면 호류지의 백제관음상을 구하겠다”고 말했다는 백제 관음상과 첫 상면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류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일본 최초의 세계문화 유산입니다. 백제인의 손으로 창건된 이 절은 특히 고구려 담징이 금당에 그린 4불정토도로 유명했으나 1948년 화재로 타버리고 안타깝게 희미한 일부만 남아 있는데, 그 벽화는 여실히 한국 불화의 모습입니다. 특히 금당은 한국의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건축미에 압도 당하여 큰 숨만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류지의 금당  
평범한 자재, 색상과 삼층의 지붕선은 소박해 보이나, 전체적 비례와 균형에서 보여주는 화려하고 절묘한 조화미는 백제인의 섬세한 심미감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금당 주변의 탑들과 살짝 배흘림기둥에 가까운 수많은 기둥의 긴 회랑, 또 흙길에서 백제인의 숨결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금당을 나와 너무나 한국적인 경내의 건물들에서 마치 내 집에 서 있는 느낌으로 서성거렸습니다. 그리고 경내에서 무료로 주는 차 한 잔을 마시며 백제관음상을 만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고 고요하기만 한 별채 전시관에서 나는 그를 만났습니다.

   
  한국 전통미를 갖춘 별당   
그는 머리 뒤로 원형 광배(光背)를 두르고 중생을 구제하는 생명수가 든 감로병을 들고 있는 몇 척 장신의 관음이었습니다. 목재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원형 광배 위의 음각과 선, 어깨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옷자락의 선은 신이 만든 여성미에 가까워 신음할 정도였으며, 차라리 오랜 세월에 바래진 채색은 더욱 깊은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적인 관능미가 물씬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단 하나인 관음상의 둘레를 빙빙 돌며 보고 또 보는 동안 잃어버린 백제의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호류지를 나와 입구의 찻집에 홀로 앉아 차 한잔을 시키고 생각에 젖었습니다. 나는 호류지 이곳이 왜 평화로운가, 특히 호류지 밖의 입구조차 왜 푸근하기만 한가. 어린 시절의 내 집 툇마루에 앉아 있는 느낌, 고생 끝에 친정에 돌아온 따사로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곳은 일본이 아니라 1950~60년대의 사직동, 삼청동, 자하문, 능금을 따던 세검정 근처 어디쯤인 것도 같았습니다.

아쉬워하며 돌아오는 열차 속에서 문득 내일 다시 호류지에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꼭 해야만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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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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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99.XXX.XXX.82)
아름답습니다.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선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이 너무 모자란....우리 한국 사람들 안되면 조상탓이나 하고 그러지말고 항상 훌륭한 조상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선생님 덕분에 자긍심을 느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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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8 14: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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