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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들은 생업 이야기
홍승철 2018년 12월 26일 (수) 00:14:28

유튜버가 초등학생들의 선호직업 5위에 진입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변화한다는 또 한 가지 증거입니다. 학생들의 직업 선호도만 변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에 진출한 젊은 세대가 하는 일들에 내가 꿈꾸어보지 못한 분야가 많습니다. 길 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디어아트 전시를 했다는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미디어아트를 어떻게 사업으로 연결하나요?”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좋아서 미디어아트를 합니다.”

아, 나의 무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에게 감히 “그러면 생계는 어떻게 꾸려 갈 것이냐?”고 묻지 못했습니다. 내가 과거의 인물인 듯했습니다. 강남대로나 홍대 근처의 클럽에 드나들 정도의 젊은이가 연예기획사에 외국인 투자자를 알선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는 선배에게 “런던에 점포를 내고 싶으니 잘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젊은이도 보았습니다.

내가 생각지 못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새로울 것 없는 일이지만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직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자기 점포를 운영하면서 투 잡을 한다던 청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느 선배는 카페를 열어서 성공했어요. 번 돈으로 다른 장사에 투자했어요. 카페는 종업원에게 맡기고 말이죠. 새로 투자한 곳에서는 벌지 못했어요. 그 일에 시간을 쓰는 사이에 잘 되던 카페도 벌이가 시들해졌지요. 종업원에게만 맡기다 보니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할 수 없이 선배는 새로 벌인 일은 접고 다시 카페 일에 전념하고 있어요. 그 전처럼 잘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요.”

열심히 살고 있는 인생이 다 존경스럽지만, 요즘의 내 마음에 각별하게 다가온 두 사람이 있습니다. 지하철 합정역 7번 출구 근처에는 야간에 영업하는 이른바 푸드 트럭이 넷 정도 있습니다. 그중에도 떡볶이, 어묵, 순대를 파는 두 곳에 손님이 많은 편입니다.

이 작은 사업을 하는 한 여성은 마음 쓰는 일이 많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일회용 컵에 따끈한 어묵 국물을 따르고 거기에 파 쪽도 넣어줍니다. 삼천 원짜리 떡순이(떡볶이와 순대의 합)를 먹는 손님에게나 오백 원짜리 어묵 두 개 먹는 손님에게나 똑같이 합니다. 종이 냅킨과 이쑤시개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실 물도 갖추고 있는데, 한여름에는 얼린 물통을 놓아둡니다. 스테인리스 상판은 어묵에서 흘러내리는 간장으로 얼룩지곤 하는데 때마다 그걸 말끔하게 닦습니다. 손님이 좀 뜸해지면 가래떡도 보충하고 어묵 꼬치도 더 끼웁니다. 국물의 양과 간도 맞추어 놓아야 합니다.

나이도 적어 보이지 않는 그가 손님들에게는 언제나 밝게 대합니다.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단 한 번 삼복더위 때 무심코 “아이구 더워!”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밤중에도 헉헉거리던 도심의 더위 속에서 그랬습니다. 무릎 앞에 떡볶이며 어묵을 익히고 순대를 덥히는 불이 있으니 덥지 않을 리 없겠지요. 손님이 한 명밖에 없을 때 그가 잠시 차에서 내립니다. 운전석 문 바깥 어두운 곳에서 구름과자를 한 대 피웁니다. 꿀 같은 시간이지 싶더군요. 

양주의 트럭 운전기사는 야채를 운송합니다. 일하다 보니 경매시장에도 관심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거기까지 관여하세요?”
“예, 경매를 살펴보고, 중매인들과도 대화하곤 합니다. 시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필요가 있어요. 배추 값이 한 트럭에 1천5백만 원씩이나 하는 걸 본 적도 있고 단 30만 원 하는 것도 보았지요. 운반비도 경기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나는 3.5톤 트럭을 운전하는데, 좋을 때는 양주에서 구리 청과물시장까지 운임으로 150만 원 받아보기도 했고 좋지 않을 때는 20만 원, 아주 물량이 적을 때는 10만 원 받은 때도 있지요.”
“경매는 이른 새벽에 하지요?”
“시장에서 경매를 일시에 다 하는 게 아니고 종류에 따라 시간과 장소가 달라요.”
“아, 그런가요? 전혀 모르던 일이네요.”
“호박 같은 과채(果菜)가 가장 이른 시간에 시작하는데, 밤 10시에 시작해서 12시 반쯤이면 끝납니다. 상추 같은 엽채(葉菜), 당근 같은 근채(根菜) 등 종류별로 다 별도로 하지요. 무는 근채이고 배추는 엽채이지만 각각 따로따로 해요.”

물량이 워낙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밤새도록 경매가 진행됩니다. 보통 내 일은 오후 2시쯤 시작해서 집에는 오전 2시경에 들어가니 대략 12시간 일하는 셈입니다.”
“어떻게 해서 야채 운송을 하게 되었나요?”
“이 일이 좀 나아 보여서 그랬지요. 처음엔 다른 사람이 처리하는 물량 중 일부를 나누어 받아서 운반했어요. 그 사람은 물량을 나누어 주곤 얼마간의 중간 마진을 취했죠.”
“재하청을 받은 거군요. 그럼 그 사람은 운전을 하지 않나요?”
“하지요. 혼자 다 운반할 수 없으니 나누어 준 거죠.”
“그렇게 남의 물량을 받아서 한 기간이 얼마나 되나요?”
“개인 용달업을 하다가, 야채 일을 2000년에 시작했는데 15년간 그렇게 했고 그 후론 혼자서 하니까 이제 3년 되었군요.”
“그런데 주문을 어떻게 받아요? 주문이 없어 쉬는 날은 없나요?”
“양주의 어느 작목반 작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어요.”
“그럼 이젠 다른 기사에게 물량을 나누어 주기도 하나요?”
“여름 한 철에는 약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물량을 다 채워 주진 못해서 20만 원 정도의 양이었어요. 그런데 이 분야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어, 제가 모르는 분야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호기심이 생겨서 그래요. 말씀 듣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요.”

호기심만으로 대화를 이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대화에서 그의 긍정적 태도가 느껴졌고, 그 태도가 내게도 전염되어 왔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사그라드는 듯한 내면의 에너지를 돋워주었습니다. 

                                                                                                           

 

홍승철 다온컨설팅 대표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경영혁신, 적자사업의 회생 노력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만들어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경영컨설팅을 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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