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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기저귀
정숭호 2019년 03월 29일 (금) 00:07:15

원래 오늘은 ‘애바리들의 더듬수’라는 제목으로 자유칼럼을 쓰려고 했습니다. ‘이익을 좇아 발밭게 덤비는 사람’이 ‘애바리’입니다. ‘발밭게’의 원형(原形)인 ‘발밭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붙잡아 이용하는 소질이 있다’라는 말이니, 애바리는  ‘이익이라면  염치고 체면이고 눈에 띄면 무조건 움켜쥐고 마는 사람, 이익에는 악착같은 사람’이라고 해석해도 되지 싶습니다. ‘더듬수’는 사전에 없는 단어지만 사전에 나오는 애바리보다 더 많이 쓰일 겁니다. ‘어리석은 척, 모르는 척하면서 제 실속은 다 챙기는 짓’을 말하지요.

‘애바리들의 더듬수’라는 글 제목은 그저께까지 사흘 동안 열린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떠올랐습니다. 장관 후보자 일곱 명 전부가 애바리더라고요. 부동산투기 의혹이 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남긴 차익의 규모와 해먹은 수법도 보통 수준을 훨씬 넘으니 이들을 애바리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 사람들 애바리 짓은 부동산투기 말고도 많습니다. 논문 표절과 자녀들 취업 특혜, 병역 특혜도 자기와 가족들의 이익만 챙기려 한 짓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이익을 본 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봤을 테고.

이 사람들, 애바리 짓이 탄로 나니까 이제는 더듬수로 나옵니다. “사려 깊지 못했다”, “죄송하다”, “반성한다”, “송구스럽다”, “드릴 말씀이 없다”는 따위의 말로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저 더듬수! 더듬수의 압권은 천안함 폭침을 두고 “우발적 사건”이라고 말해 국민 속을 뒤집어 놓았던 사람이 청문회에서는 “북한에 의한 폭침이 맞다, 학자의 입장은 진화한다”고 떠벌인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장관이 그렇게 하고 싶소? 묘비에는 ‘장관’이라는 글자가 새겨지겠지만, 묘비보다 더 오래 남을 역사에는 지금 쏟아지는 비웃음이 어떻게 기록될지 생각이나 해봤소?”라고 묻고 싶습니다.

 ‘애바리들의 더듬수’ 전에 ‘국민은 데자뷔, 그들은 자메뷔’를 오늘 칼럼 제목으로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데자뷔(deja vue)’는 등장한 지 오래돼 우리말이나 다름없이 사용되는 프랑스 말입니다. ‘이미(deja) 본 것(vue) 같은 느낌’이라는 뜻의 ‘기시감(旣視感)’으로 번역해 쓰지만 인사청문회와 관련해서는 ‘내로남불’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됩니다. 청문회에서 새로 찾아냈다는 의혹, 이 의혹들에 대한 답변이 전혀 새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애바리 짓, 즉 부동산투기와 취업 및 학위와 관련한 불법·탈법·편법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지요. 이 정권에서 열린 청문회만이 아니라, 과거 다른 정권에서 인사 청문회가 열렸다 하면 빠짐없이 나온 메뉴들입니다. 더듬수로 넘어가려던 것도 마찬가지고요. ‘공수(攻守)’, 즉 여야와 등장인물만 달라졌지, 그 외에는 똑같은 질문, 똑같은 답변의 되풀입니다. 그러니 ‘내로남불’, 그러니 ‘전에 본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네?’, 즉 데자뷔, 기시감이 생겨나는 겁니다.

이번 청문회에서 내로남불, 데자뷔의 원형(原型)으로 꼽힐 사람이 누군지는 아시지요? 4선 의원을 지내면서 마흔 번 이상의 인사 청문회에 나서 고위 공직 후보자들을 모질게 다그쳤던 이 사람은 지난 정권에서는 한 장관후보자에게 “당신 생활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더라, 그 돈 생활비로는 너무 많아, 누구 줬냐? 그 사람이 당신 장관 시켜준 거 아니냐”고 몰아붙였는데,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는 자신이 똑같은  질문을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국회의원 하는 동안 재산이 크게 늘었는데 남은 돈은 별로 없으니, “이봐요, 당신도 그 돈 생활비로 다 쓴 거 아니잖아? 얻다가 썼어? 뭐에 썼어?”라는 질문을 받은 겁니다. 이것 말고도 다른 내로남불 짓이 많은 이 사람은 더듬수 대신 맞불작전 비슷한 수법으로 비난을 피해 가려 했습니다. 요건 ‘앙바틈한 ’사람이 부리는 ‘야비다리’라고 하고 싶습니다. ‘짤막하고 딱 바라진(앙바틈한)’ 사람이 ‘제 딴에는 가장 만족하여 부리는 교만(야비다리)’이라는 뜻입니다. 

저 앞에 써놓은 ‘자메뷔’ 역시 프랑스 말입니다. ‘결코 ~~가 아니다’라는 뜻의 ‘jamais’와 ‘보았다’의 ‘vue’를 합한 겁니다. ‘절대로 본 적이 없다’라는 뜻으로 ‘미시감(未視感)’이라고 번역해서 씁니다. 이미 여러 번 해봐서 익숙하기 짝이 없는데도 또 닥치면 처음 겪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 ‘미시감에 빠진 것 아닌가?’라고 할 겁니다. 제가 이 글 제목을 ‘국민은 데자뷔, 그들은 자메뷔’라고 하려 했던 건 장관 후보자 일곱 명 모두가 자메뷔 증상에 빠져 있고, 그중에서 이 사람이 제일 심각한 것 같아서입니다. 이 사람은 앞서 말한 것처럼 과거 청문회에서 자기가 한 짓, 자기가 남을 몰아붙이고 인격적으로 욕보인 것을 다 까먹었기에 저렇게 적반하장으로 뻔뻔스러워진 것이 아니냐, 이게 제 생각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철판 깔린 얼굴이 따로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애바리들의 더듬수’나 ‘국민은 데자뷔, 그들은 자메뷔’로 제목을 삼고 글을 써 내려갈 생각이었지만 요 며칠 사이에 청문회에 관해 날카롭고 잘 쓴 칼럼이 쏟아진 터라 다른 제목, 더 입에 착 감기고 독자들 눈을 끌 제목이 뭐 없나 하며 여기저기 검색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치인과 기저귀는 자주 갈아야 한다. 이유는 똑같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풍자를 찾아냈습니다. 제목감으로 딱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문은 “Politicians and diapers must be changed often, and for the same reason.” 입니다.

(트웨인은  “당신이 바보라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당신이 국회의원이라고 상상해보라.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Reader, suppose you were an idiot. And suppose you were a member of Congress. But I repeat myself.”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 사람들이 바보는 아닌 것 같아서 '정치인과 기저귀'를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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