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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우나의 직원
임철순 2019년 04월 09일 (화) 00:08:28

내가 다니는 스포츠 센터의 사우나는 규모가 꽤 큽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이용자가 아주 많습니다. 이곳 직원은 일거리가 많아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정규직도 아닐 것입니다. 

최근 사우나의 직원이 바뀌었습니다. 입구와 라커 주변이 좀 깔끔해지고 덜 어지러워진 이유를 궁금해 하다가 담당자가 바뀐 걸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50대로 짐작되는 그 직원은 얼핏 몽골 사람을 연상케 합니다. 체격은 그리 크지 않지만 뼈대가 굵어 단단해 보이고, 머리가 짧고 얼굴은 둥근 편인데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왔습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는 한마디로 끝없이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보지 못한 날은 더러 있지만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있거나 손님과 잡담하는 걸 본 적은 없습니다. 운동복을 크기별로 개어 쌓아놓고, 젖은 운동복과 수건이 담긴 빨래 통을 바퀴 굴려서 옮기고, 탕 내의 각종 물품을 정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휴지를 새로 끼우느라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누구나 잘 아는 일이지만 사우나 손님들은 물건을 함부로 쓰고 아무데나 버리고 물을 아끼지도 않습니다. 몸의 물기를 다 닦지 않은 채 여기저기 걸어 다녀 바닥에 물을 떨어뜨리고, 흠뻑 젖은 수건을 걸레처럼 발로 질질 밀고 다니다가 아무 데나 팽개쳐둡니다. 스킨로션을 온몸 여기저기에 처바르거나 머리를 말리다 선풍기를 켜놓고 가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즤네 집 거면 그렇게 하겠어?). 같은 손님인 내가 화가 날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 직원은 찡그리는 일 없이 늘 뒤치다꺼리를 잘해 손님들을 미안하게 만듭니다. 사우나는 수영장 이용자도 함께 쓰는데, 수영 강습이 끝난 초등학생 손님들이 들어오면 뛰고 떠들어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꼬마손님들에게 아버지나 삼촌처럼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줍니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지 않고 사우나 입구에 벗어놓는 사람들도 많아 늘 경황없는 상가(喪家)처럼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쉴 새 없이 쓸고 닦자 요즘은 그런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는 마주치는 손님들마다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나가는 사람에게는 “안녕히 가십시오”나 “또 오세요”가 아니라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합니다. 며칠 전엔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가 “회원님, 잠깐만요” 하고 불러 세우더니 내 뒤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말려 들어간 바짓단을 펴주기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탕 내의 벽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오기에 마침 옆에 온 그를 붙잡고 이야기했더니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를 자세하게, 좀 지루할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더군요. 내가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자 안심시키려는 취지였습니다. 사우나시설의 구조와 현황에 대해 정밀하게 파악하지 않고는 해줄 수 없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자신이 속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의 노력에 대해, 그 방법에 대해, 사람을 고르고 쓰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보다 먼저 있던 직원도 게으른 사람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성실했지만 지금 직원과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누구든 어느 조직이든 변화와 개혁은 솔선수범과 상호 소통 없이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자신이 몸담은 곳을 더 낫고 생활하기 좋게 바꾸는 것은 언제나 말이나 구호보다 부지런하고 사심 없는 실천입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먼저 직원의 흠을 잡거나 여건만 탓하고 있으면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사우나는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게 있는 곳이 아닙니다. 수건이 걸레로 보일 정도로 해진 것도 많고, 운동복은 정말 세탁을 했는지 의심스럽게 불결하고 낡아 보여 그만 버렸으면 싶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열악한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습니다. 때를 미는 것은 그의 담당이 아니지만 나는 그를 보면서 조금씩 내 때가 벗겨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직자들이 이런 사람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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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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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남 (121.XXX.XXX.79)
요즘 보기드문 참으로 진정성 있는 분같아 마음이 훈훈합니다
어떤일이든 자기일에 충실한다면 이사회가 조금더 풍성해 지겠지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철순선생님 파이팅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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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14: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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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0.XXX.XXX.41)
어제도 일부러 그 직원을 유심히 살펴보고 왔습니다.
제가 괜히 잠낀 혹해서 잘못된 글을 쓴 게 아닌가 싶어서.
근데 한결같은 모습이어서 안심하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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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17: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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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j56 (114.XXX.XXX.209)
참 훌륭한 사람 이네요
그 사람이 있는곳은 안정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생활할 수 있겠네요
이런 좋은글 블로그 에도 올려 주면 좋겠어요 주필님 소식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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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12: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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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0.XXX.XXX.41)
블로그 글 쓰는 방식이 바뀌어 불편을 겪고 있어요. 순전히 그런 이유로 올들어 한 건도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익숙해질 수 있도록 잘 공부해서 다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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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17: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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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게 (61.XXX.XXX.66)
웃기는게 뭐냐면
생각이 자꾸 번져 나가 장관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인데

그 장관이란 자들 잘해봐야 1년 2년 하고 짤리는데
솔직히 우리 인생에서 장관이 정말 중요한가?
우리 인생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주는 자는
사실,
사장들이고 '오너들'이고 그 자손들이지
30년, 40년, 50년을 오너로, 2세, 3세로 군림하면서
당신들이 입사했을 때부터 애들 출가시키고 늙을 때까지
당신의 운명을 쥐고 있는 자들

그 자들에게도 이 글의 취지를 말해줄 수 있다면
인정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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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6: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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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0.XXX.XXX.41)
그러니까 자네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글을 퍼뜨려주시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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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17: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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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 (175.XXX.XXX.29)
이런 분들 가끔 봅니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분들. 어디서 무엇을 해도 다 잘 하실 분들이지요.
가슴을 울려주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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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3:17:02
1 0
임철순 (211.XXX.XXX.59)
생각이 자꾸 번져 나가 장관 이야기까지 하고 싶어지는 걸 참고 썼어요. 굳이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메시지는 그냥저냥 전달될 수 있을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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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20: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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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원 (58.XXX.XXX.64)
선배님의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주변의 일상을 유심히 관찰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사점을 적절하게 던져준 글이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파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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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1: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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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59)
별일 없지요? 별일 없는 게 중요해요. 별 볼 일 없다고 하면 큰일! ㄹㄹ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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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20: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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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구 (220.XXX.XXX.64)
진국이네요. 근데... 아런 작원을 알아보는 선생님도 참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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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0: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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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59)
그분을 아는 사람도 저와 같은 생각이라고 말해주어서 다행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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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2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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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51)
우리나라 목욕문화 예절 공중도덕심이 나쁜 건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행 길에서 예의 없는 것도 마찬 가지이지요. 그러니 스포츠센터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3만불 GDP 라고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고 합니다만 시민의 민도가 높아야 선진국이지요. 물론 20% 정도의 예의 바른 분들, 배려하시는 분들을 보면 반가워 그 분 얼굴을 한 번 다시 보게 됩니다. 아이들의 문제는 부모들의 문제 입니다. 안하무인격 독불장군 같은 아이들을 교육시킨 건 그 부모들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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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09: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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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59)
오마리님이 늘 답답해하는 문제 중 하나가 그런 거지요. 그래도 많이 나아지고 있는데, 말없이 솔선수범하는 분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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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2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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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211.XXX.XXX.253)
작은 회사지만 사업을 이끌고 있는 사업부장으로서, 다시금 나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하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그 사우나를 가 보고 싶기도 합니다.
가끔 노경아 부장 통해서 고문님 소식 전해 듣고 있습니다만 기회되면 탁주라도 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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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08: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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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59)
감사합니다. 혹시 任이신가요? 빈자가 저에겐 유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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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08: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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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211.XXX.XXX.253)
맞습니다. 풍천임씨 29대 손입니다. 정헌공파입니다.30일에 뵙겠습니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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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0 07: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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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223.XXX.XXX.228)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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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07: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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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59)
자유칼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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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09: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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