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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의 착한 젊은이들
임철순 2019년 06월 07일 (금) 00:18:51

세상이 온통 자동화, 디지털화하다 보니 노인들은 갈수록 살기가 불편해집니다. 음식점에서 뭘 사 먹으려도 이상하게 생긴 그놈의 기계에 돈을 넣고 주문을 해야 하니 난감합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누르는 데 서툴러 실수를 하거나 다시 시작하다 보면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종업원이나 줄 서서 기다리는 뒷 손님이 도와줘야 하니 늘 눈치가 보입니다.

밤중에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를 탈 수 없습니다. 차는 오지만 손을 들어도 서지 않습니다. 다 예약이 돼 있는 차들입니다. 추운 겨울에 오래 기다리며 애태우는데 방금 어느 골목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나온 젊은이들은 잘도 택시를 타고 사라집니다. 커피 한잔 사 마시려 해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돕는 젊은이들은 참 보기에 좋고 대견합니다. 옛날엔 부모를 위해 저녁에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 문안하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이 효도였지만, 지금은 내 부모든 남의 할아버지 할머니든 ‘디지털 효도’가 중요한 세상입니다. 불지옥이 어디냐고 묻는 할머니를 푸르지오 아파트로 모셔다 드린 젊은이 이야기를 읽고 참 기특하고 상상력도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그 할머니는 왜 불지옥이라고 했을까? 며느리가 싫어서? 아니면 아파트에 사는 게 지옥 같아서?)

다음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젊은이들과 손님이 쓴 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내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노인들의 모습과 커피숍의 풍경이 한눈에 잘 보입니다.

#82세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커피 한 잔 줘,” 그래서 “무슨 커피 드릴까요?” 했더니 곰곰 생각하더니 “그냥 밀크커피.” 그래서 나뭇잎 같은 걸 그려서 카페 라떼를 드림. 그러자 커피 마실 생각은 하지 않고 사진 찍으심.

##예전에 커피숍 할 때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달달한 커피 달라 그래서 카라멜 마끼아또 드림. 며칠 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오심. 여기가 그 커피 맛있는 집이라고 함. 집이 방배동인데 커피 드시러 서너 정거장 떨어진 곳까지 오심. 그때 그거 달라고. 그래서 종이에 써 드림. 집 근처 아무 커피숍이나 가셔서 이 쪽지 주시면 이 커피 나오니까 근처에서 사 드시라고. ㅋㅋ. 할아버지 생각 많이 나더라. 이런 건 노인들 안 좋아해서 안 드시는 줄 알았는데 몰라서 못 드시고 있을 수도 있음. 나중에 캔 커피나 믹스 좋아하시는 어르신들 주변에 계시면 한번 사 드려봐. 엄청 좋아하실 수 있음.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는데 직원이 어느 할머니의 주문을 받으면서 다방 커피같이 달달하며 프림 넣은 게 좋으신지, 탄 밥 누룽지처럼 구수한 게 좋으신지 묻는 거 보고 배려와 맞춤형 서비스에 감탄한 기억이 난다.

사실 아직 덜 늙은 나도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커피를 자주 마시지도 않지만 카페 라떼를 생각하면서 엉뚱하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마끼아또가 뭔지도 잘 모릅니다. 노인들이 알기 좋게 커피 이름을 ‘달달한 놈, 고소한 놈, 독한 놈’ 이렇게 써 붙인 커피숍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커피의 맛을 한마디로 알려주니 주문하기 편리합니다.                

 

다른 젊은이의 글을 더 인용합니다.
####카페에 종종 오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늘 알은체를 하시는데, 나도 그게 싫지 않아 인사드리고 몇 마디 나누곤 한다. 보통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하고 가시는데, 오늘은 카페가 너무 바빠서 쫓기듯 마시고 나가셨다. 그게 마음에 걸려 따라 나가 안녕히 가시라고 크게 인사드렸다. 그렇게 보내 드리고 몇 분 뒤, 할아버지가 다시 들어오셔서 뭔가를 건네셨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숯불갈비였다. “내가 먹으려고 산 건데, 자네가 잘 가라고 인사해서 주는 거야.”
외로움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의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훗날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갈비는 그야말로 1인분이었다. 아주 아주 맛있었다. 내 인사가 이만큼 대단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가족과 자신의 미래 모습에 대해 생각해봤다는 대목이 참 장하고 고맙습니다.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쓴 청년은 오마르 워싱턴(Omer B Washington)의 ‘나는 배웠다’라는 시도 따로 올려놓았더군요. 오마르 워싱턴은 1921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출생의 시인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걸 쓴 사람은 그가 아니라 ‘사하라 사막의 성자’라는 프랑스 복자(福者)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1858~1916)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말이 맞는지 최종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이 젊은이의 인용을 골라서 재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칩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따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글을 쓰는 일이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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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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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20.XXX.XXX.179)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요즘 시대에 가장 큰 덕목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 능력을 키워 나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살기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javascript:newArticleReplySubmitNew(document.newArticleReply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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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10: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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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25)
맞습니다.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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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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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58.XXX.XXX.226)
글 잘 읽었습니다 대표님.
83세이신 시골 아버님을 생각하며, 이 세상이 어르신들이 편하게 살아가기 호락호락하지 않다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누군가는 편하겠지만, 누군가는 고욕일 수도 있는 세상..... 개발의 저편에 가려진 그늘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비오는 금요일, 평상시에는 모처럼 가까이 하지 않는 "복잡한놈"으로 한잔 마시고 시작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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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08: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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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25)
저는 커피를 많이 마시지 않지만 고르다 보면 싱거운 놈 아니면 고소한 놈을 주로 마시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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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22: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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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8.XXX.XXX.61)
잘 읽고 갑니다. 나는 고소한 놈이 좋습니다. 저 독일자유대학 작가파견 3개월 갑니다.(자랑) 6월 21일에 갔다가 8월 25일에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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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08: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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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25)
베를린자유대학 말인가요? 부럽군요. 돌아와서 독일어 좀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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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22: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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