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말고 정말 배워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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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말고 정말 배워야 할 것

방석순

2008년 02월 25일 (월) 00:34:52

올챙이기자 시절 퇴근 후 집으로 직행하는 날보다 회사 근처를 맴도는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때로는 일 때문이었지만 거개는 선후배들과 어울리는 술자리 탓이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유난히 지사연하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후배 겁주는 방법도 특이했습니다. 무슨 소재로든 시비를 벌이다가 세가 불리해지면 대뜸 “야~ 넌 나하고 달라” 하고 눈알을 굴렸습니다. 그 말끝에 붙여야 할 부호는 물음표도 되고 느낌표도 되었습니다. “어라! 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단 말이지?” 하는 복합적 경고였으니까요.

한창 따지고 잘난 척할 나이여서 더러는 꽤 오래 공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에이, 대충 넘어가자. 괜히 찍히면 골치 아파’ 하고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었습니다.

심령과학이 어떻다는 둥 재미난 화제를 입에 달고 다니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인용한 서적쪽수까지 곁들이는 재담가였습니다. 정반대로 그 이야기를 되짚어가며 진위를 캐고 확인해 역공을 펴는 후배도 있었습니다. 툭하면 맞붙어 입씨름 벌이는 둘을 향해 선배들은 으레 “야, 이놈들아. 또 싸우냐. 그 까짓것, 재미로 듣고 흘리면 그만이지”하고 나무랐습니다.

이래저래 우리 주변에선 토론이라는 걸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건 비싼 밥 먹고 배 꺼뜨리는 헛수작일 뿐이었습니다. 권위를 세우느라 그랬는지,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토론이라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것 같습니다.

국회에서 소수당이 안건처리를 실력으로 저지한다기에 모든 국민이 납득할 만한 근거와 설득력으로 다수당을 제압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상을 점거하고 의사봉을 빼앗고 마이크를 탈취하는 무력행사인 줄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오염의 위험이나 혐오감을 느끼는 시설의 유치 여부를 놓고 간혹 주민들의 토론회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대부분 토론이 아니라 격한 몸싸움으로 난장판이 되기 일쑤입니다. 평화적이고 건전한 시위문화도 허사일 뿐입니다.

조금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원자구조에 관한 연구로 31세에 노벨상을 받은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2차대전 중 나치의 원자무기 개발에 동원되었습니다. 종전 후 연합국의 조사를 받았지만 곧 범죄혐의가 풀렸고 이후 양자역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가 50년 연구생활을 기술한 회고록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 Gesprache im Umkreis der Atomphysik)’는 물리학의 발전과정 뿐만 아니라 학자로서의 열정과 고뇌, 석학들과의 열띤 토론, 그리고 예술과 철학, 여행과 친교에 관한 깊은 사색이 담겨 있어 과학도가 아니어도 꼭 읽어볼 만한 교양서입니다.

이론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크는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자연과학은 실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실험의 의미에 대한 숙고와 토론과정에서 비로소 성과를 얻게 된다. 과학은 토론을 통해서 성립되는 것이다.’ 본문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와 베르너 슈뢰딩거 등 석학들 간의 불꽃 튀는 토론도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빈의 물리학자인 슈뢰딩거가 1926년 원자론에서 빛의 현상에 대한 문제를 파동방정식으로 풀어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는 슈뢰딩거의 방정식이 원자의 상태 변화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슈뢰딩거는 그런 문제를 자신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쯤은 시간문제라고 장담했습니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해 실망한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학문적 기초를 닦는 데 큰 영향을 미친 덴마크의 닐스 보어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보어는 곧 문제의 파동역학에 관한 토론을 해보자며 슈뢰딩거를 코펜하겐으로 정중히 초대했습니다.

두 사람의 토론은 슈뢰딩거가 코펜하겐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어의 집에서 연일 이른 아침에서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토론에 너무 열을 올린 탓에 며칠 후 슈뢰딩거는 고열감기로 앓아누웠습니다. 보어는 부인이 간호하는 슈뢰딩거의 병상 머리에 붙어 앉아 한 치 여유도 주지 않고 상대 이론의 허점을 공격했으며 슈뢰딩거는 끙끙 앓으며 역공을 폈습니다.

보어도, 슈뢰딩거도, 하이젠베르크도 상대의 이론을 쉽사리 수긍하려 들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격렬한 토론이야말로 과학 이론의 오류를 바로잡는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실용주의자답게 10년 공부에도 말 한마디 못하는 우리 영어교육의 개혁을 주문하고 나섰습니다. 그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으로 요란합니다. 당연한 과정입니다. 어찌 됐건 우리 교육의 잘잘못을 생각하고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어찌 보면 대통령이 나서기 훨씬 전에 학교 스스로가 팔 걷고 나섰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관이 아니라 어느 지역의 교육감, 아니 몇몇 학교의 교장 선생님만 나섰어도 우리의 영어교육은 진작 달라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것이 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의 영어교육은 이대로 가도 좋은가?’ 그런 토론이 몇몇 학교에서라도 진지하게 진행됐더라면 교육 내용이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학교에서 각자의 생각을 옳게 표현하고 바른 자세로 경청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일이 절실합니다. 전 교과목의 영어 교육은 나중에 하더라도 우선 전 교과목의 토론식 수업이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직장에서도, 우리 사회에서도 선의의 문제 제기와 건전한 토론문화가 꽃피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마리 (24.XXX.XXX.49)

미국에서 공부할 때 토론과 프리젠테이션 시간이 있었습니다. 과목에서의 이 점수가
주는 비중이 컸는데 저는 항상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앞에 나서서 얘기하길 꺼리는 개인적 문제뿐 아니라 한국에서 교육받은 폐쇄적 방법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토론문화는 반드시 정착되어야 할 한국사회 특히 교육의 중요과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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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8 00: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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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y (121.XXX.XXX.222)

토론문화에 있어서 선행조건이 있습니다.문제제기는 문제가 뭔지 아는 사람에 의해 주로 제기됩니다.한국국민들의 전반적인 정서가 문제제기자체를 배역행위 또는 불복종내지 부적응 정도로 폄훼하고 남의 잘난 꼴을 못보는 천박한 민생수준인데요.예를들어,"대통령취임 연설문이 왜그렇게 깁니까?지도자는 비젼만 보여주면 됩니다."이런 문제제기를 연설문 작성자들이 받아들일것 같습니까?어림도 없지요!잘썼다고칭찬만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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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6 12: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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