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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에서 만난 호주매화, 마누카(Manuka)를 보며
박대문 2019년 12월 12일 (목) 00:26:10
 
 마누카 (도금양과) 학명 Leptospermum scoparium
 

세상은 넓고 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은 매우 좁고 한정적입니다. 배우거나 체험할 수 있는 통상적인 것과 일반적인 견문 안에서만 안다고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일반적 상식으로 3월은 봄이고 11월은 늦가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반대쪽에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낮이면 그곳은 밤입니다. 또한 적도를 넘어 남쪽에는 3~4월이 봄이 아니라 9~10월이 봄이며 온갖 꽃과 새싹이 피어는 계절입니다. 우리 땅은 낙엽이 지는 가을이지만 그곳은 꽃이 피는 봄입니다. 산타클로스 하면 흰 눈과 썰매, 빨간색의 모자와 빨간 외투, 빨간 장화 차림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남반구에서는 러닝셔츠에 빨간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산타가 심심찮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상식 밖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을이 깊어 성큼 겨울로 들어서는 11월, 북반구의 반대쪽인 남반구를 향하여 11시간 반 동안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이었습니다. 옷깃을 파고드는 쌀쌀한 날씨에 두툼한 패딩을 입고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오클랜드 공항에 내리니 햇살이 따사롭고 날씨가 포근했습니다. 사방천지에 훈훈함이 감돌았습니다. 거리의 가로수에는 파릇파릇 한창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넓은 벌판에는 푸른 풀 더미 속에 하얀 난쟁이 데이지 등 들꽃이 마치 민들레 꽃밭처럼 펼쳐있었습니다. 라일락, 만병초, 겹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11월이면 으레 온 산천이 벌겋게 물든 단풍의 계절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분명 11월에 각종 꽃이 피고 푸른 잎새가 돋아나고, 목장의 양들이 저마다 새끼 양을 데리고 노니는 봄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1월이라는 기존의 계절 감각과 전혀 다른 상황 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차창에 스쳐 가는 수많은 산들꽃,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재스민, 서양골담초, 미나리아재비 등이 만발한 뉴질랜드 산과 들의 봄 풍경에 푹 빠졌습니다. 붉게 붉게 단풍이 물들어 가야 할 11월에, 다투어 피어나는 꽃과 담록의 새 이파리를 보고 있노라니 11월의 상식적 감각은 이곳 현장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만의 상식은 오직 그곳에서만의 상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또렷하게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이처럼 헷갈린 계절에 피어나는 많은 꽃 중에서 유달리 관심을 끌었고 기억에 남는 꽃이 하나 있었습니다. 로토루아(Rotorua) 호수 근처, 테푸이아(Te Puia)의 마오리 민속촌에서 만난 꽃입니다. 로토루아 호수는 우리의 아리랑만큼이나 뉴질랜드 국민이 즐겨 부르는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연가’라는 제목으로 번안(飜案)되어 잘 알려진,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 노래입니다. 로토루아 호수 인근 테푸이아 민속촌 일대는 뜨거운 물이 간헐적으로 높이 솟아오르는 간헐천과 진흙 열탕이 펄펄 끓고 있으며 하얀 수증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화산지대입니다. 이곳의 덤불 숲과 작은 나무 사이에서 낯익은 꽃 더미가 눈에 띄었습니다. ‘호주매화’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꽃나무, 마누카(manuka)였습니다. 제가 서울 양재 꽃시장에서 ‘호주매화’라고 해서 길러 보려고 화분을 구매하여 베란다에서 기르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꽃이구나! 바짝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꽃이 매화꽃과 매우 닮았으며 키 작은 나무에 가지마다 많은 꽃송이가 달리는 깜찍하고 고운 꽃나무입니다. 이 꽃나무를 원산지에서 야생으로 만나니 친근한 벗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 한량없었습니다.

 
   국내에서 호주매화로 유통되는 마누카 (Manuka)
 

마누카는 호주, 뉴질랜드가 원산지로서 잔가지가 많이 생기는 상록 관목(灌木)입니다. 잎의 길이는 2cm 정도의 피침형으로 광택이 있고 뻣뻣합니다. 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잎겨드랑이나 가지 끝에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피며 꽃잎은 5장으로 매화꽃을 닮았습니다. 국내에서 호주매화로 유통되고 있지만, 꽃 모양만 닮았을 뿐 계통상으로는 매화와 전혀 상관이 없는 꽃입니다. 호주매화라는 이름 외에도 꽃과 잎의 모양에서 유래한 송홍매, 솔매, 정유매 등으로 불리기도 하나 봅니다. 마누카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단어입니다.

영명(英名)은 tea tree, New Zealand teatree, broom teatree 등으로 불리는데 초기의 이주자가 이 식물의 잎을 차의 대용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특히 1769년 뉴질랜드 북섬 기즈번에 첫발을 디딘 영국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 선장의 탐험대가 이 잎을 이용해 '차' 음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명 tea tree에 나타나듯이 마누카 잎은 생것 또는 말려서 차로 이용하며, 에센셜 오일은 근육 피로를 풀어 주는 데 사용한다고 합니다. 절화(折花)는 수명이 길고 고와 화훼장식의 소재로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더 알려진 것은 마누카에서 채취한 꿀입니다. 마누카 꿀은 일반 꿀과 차이 나는 놀라운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영양 및 면역 강화 능력, 특히 UMF(Unique Manuka Factor)라 불리는 독특한 천연 물질로 인해 높은 항생, 항균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겨울의 문턱을 들어서는 계절에 마치 봄의 어느 한때처럼 활짝 핀 수많은 들꽃, 특히 매화를 닮은 마누카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봅니다. 춘삼월이 아닌 만추(晩秋)의 계절, 11월에 한창 꽃들이 피고 있다는 눈앞의 사실이 뜬금없습니다.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도 언제 어디서나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체험합니다. 세상에 진실은 하나일지언정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그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북반구의 11월과 남반구의 11월 자연환경은 이토록 서로 다릅니다. 오직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 선이요 진실이라고만 믿으며, 모든 반대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무조건 그릇되고 악이라고만 우겨대는 우리의 모습에 이러한 오류는 없는 것인가? 각자의 지식과 상식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거늘. 한정적이고 갇힌 자기끼리의 세계에서 오직 자기들 기준만으로 세상만사를 편 가름하는 ‘진영 논리’에 얽매여 사는 듯한 작금의 추세가 어찌하면 바뀔 수 있을까. 그저 암담합니다.

(2019. 11 월 뉴질랜드 북섬 Te pui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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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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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기 (59.XXX.XXX.1)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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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09:37:29
0 0
박대문 (221.XXX.XXX.194)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9-12-12 12:33:5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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