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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생, 붉은겨우살이
박대문 2020년 01월 09일 (목) 00:10:50
 
   붉은겨우살이 (겨우살이과) 학명 Viscum album f. rubroauranticum
 

매년 되풀이되는 새해이지만 항시 새해가 되면 여러 가지를 다짐하며 새 희망을 설계해봅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새 삶을 꿈꾼다는 것이 바로 살아있음의 징표입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1월이지만 찬바람 소리는 지난해의 12월과 마찬가지로 을씨년스럽습니다. 한겨울의 추위는 나무도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생을 멈출 수는 없기에 나무는 다음 해의 생을 이어갈 겨울눈을 만들어 겨울을 납니다. 겨울 추위가 혹독하다 해서 두텁고 딱딱한 나무껍질에 눈을 묻어 둘 수가 없습니다. 돌아오는 새봄의 기운을 감지하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생물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생의 에너지를 응축하는 침잠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견디기 힘든 시련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편, 한겨울의 침잠과 황량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생을 이어갈 종족을 널리 퍼뜨리는 식물도 있습니다. 푸르던 잎들이 모두 지고 앙상한 빈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숭숭 드러나면 숲속은 먹거리도 부족한 휑하고 삭막한 세상이 됩니다. 그 시기에 홀로 독야청청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식물이 바로 겨우살이입니다. 휑한 숲속에서 파란 잎을 드러내고 과즙 많은 열매를 잔뜩 매단 채 배고픈 산새를 유혹합니다.

겨우살이는 다른 나무에 기생하지만, 그 나무를 크게 해치지는 않습니다. 푸른 잎이 있어 스스로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자체 생산할 수도 있는 반기생식물입니다. 주로 참나무 종류의 낙엽수에 붙어 자라므로 여름에는 무성한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얹혀사는 기주목(寄主木)의 잎이 다 떨어진 황량한 겨울이면 숲속에 그 모습이 마치 새 둥지처럼 확연히 드러납니다. 게다가 꽃보다 더욱더 고운 열매를 송알송알 매달고 있습니다.

겨우살이는 열매를 먹고 난 산새들의 배설물에 씨가 섞여 멀리 퍼져나갑니다. 겨우살이 열매의 씨와 과육은 소화가 되지 않고 배설됩니다. 씨는 끈적끈적한 물질로 싸여 있습니다. 이 씨가 배설물과 함께 나뭇가지에 걸려 그네처럼 매달려 있다가 바람에 흔들려 나무줄기나 가지에 단단하게 들러붙고 그곳에서 싹을 틔웁니다. 물론 그 씨앗은 지표면이나 키 작은 관목에도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땅이나 키 작은 관목에 떨어진 씨앗은 새순이 돋고 성장하기가 어렵습니다. 키 큰 나무 꼭대기 가지에 부착된 씨앗이라야 햇볕을 잘 받아 꽃과 열매를 풍성하게 달 수 있고 겨울이 되면 산새의 눈에 쉽게 뜨일 수 있습니다.

 
    한라산 1,100고지에서 만난 붉은겨우살이 열매
 

국내에 있는 겨우살이 종류는 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붉은겨우살이, 동백나무겨우살이, 참나무겨우살이가 있습니다. 그중 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붉은겨우살이는 열매가 서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열매의 색깔이 다릅니다. 겨우살이와 꼬리겨우살이는 연노랑이지만 붉은겨우살이는 붉은색입니다. 붉은겨우살이는 일반적으로는 제주도에서만 자란다고 하는데 최근 인터넷에 오른 내용을 검색해보면 내륙, 특히 해안지대나 남쪽 지방에서도 간혹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붉은겨우살이는 해발고도 50~1,100m 지역의 참나무, 팽나무, 밤나무 등에 기생하여 자랍니다. 황록색의 가지가 갈라지며 새 둥지같이 둥글게 자라 지름 1m 정도에 이릅니다. 꽃은 2~3월에 엷은 황색으로 피며 암수딴그루입니다. 열매는 둥근 모양의 핵과로 12월에서 이듬해 1월 사이에 붉게 익습니다. 꽃이 귀한 한겨울에 산을 찾는 꽃쟁이가 흰 눈을 소복하게 덮어쓴 초록 가지와 빨간 열매를 만나면 그 환상적인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정원의 나무에 부착하여 관상용으로 기르려고 많은 연구를 했지만, 아직도 이식이 어려운 미스터리한 식물이라고 합니다.

겨울은 살아 있는 생물에게는 참으로 고달프고 혹독한 계절입니다. 추위를 견디어 내야만 하는 식물에게는 혹독한 시간이며, 산새에게는 추위도 어렵지만, 먹거리 없는 황량한 숲속의 겨울이 고달픕니다. 이토록 견디기 어려운 혹한에 붉은겨우살이는 배고픈 산새에게 과즙 많은 풍성한 열매를 제공합니다. 그 대신에 씨앗은 새를 통하여 멀리멀리 퍼뜨려져 후대의 번식지를 넓혀 갑니다.

붉은겨우살이는 한겨울의 빨간 열매도 곱지만 고달프고 혹독한 시기에 서로 도우며 생을 이어가는 더불어 사는 삶의 생태가 더욱 아름답습니다. 꽃말은 강한 인내심입니다. 겨우살이는 켈트족 신화에도 등장하는 식물인데 추운 겨울에 녹색을 유지하기에 활기의 상징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또한, 서양에는 크리스마스 때 초록색 잎과 반투명한 공 모양의 열매가 달린 겨우살이를 현관 안쪽 문 위에 걸어 놓는 풍습이 있는데 그 아래 서 있는 이성에게는 키스해도 된다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경자년(庚子年)의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자년의 새해는 10간(干)의 일곱 번째인 경(庚)이 오방색 중 백색에 해당하고, 12지(支)의 첫 번째인 쥐의 해이기에 ‘흰색 쥐’의 해로서 다산을 의미하고 풍요와 부지런함 그리고 영리함을 뜻하는 해라고 합니다. 경자년의 새해를 맞이하여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서로 돕고 상생하는 아름다운 붉은겨우살이를 보며 새 세상을 기려봅니다. 우리 사회도 서로 너와 나, 편을 갈라 나의 흠은 잊고 상대는 무조건 잘못이라는, 분별력을 잃어버린 아귀다툼만 하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소통하여 풍요로운 삶을 위해 부지런하고 영리하게 살아가는 경자년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한겨울의 붉은겨우살이

황량한 겨울 숲
제주의 1,100고지
붉은 진주 소롯이 익어 간다.

굶주린 겨울 산새에겐
베풂의 먹이
눈이 고픈 겨울 꽃쟁이에겐
홍자(鴻慈) 대박

알알이 깃든 붉은 사랑
엄동설한 한겨울에
중생(衆生)을 보시한다.

(2019. 1월 한라산 1,100고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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