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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이 쏘아 올린 똥볼
박상도 2021년 08월 31일 (화) 01:19:19

35년 전 필동 한국의 집에서 문체부가 주관한 성년의 날 기념식을 취재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성년을 맞은 젊은이들을 인터뷰하고 현장 분위기 촬영을 하고 돌아서는데 문체부의 공보과 직원이 수고한다고 봉투를 건넸습니다. 봉투에는 선명하게 ‘문화체육부 공보과’라고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이게 뭐죠?”라고 묻자 그 직원이 몰랐냐는 듯이 “장관님 행사에 오셔서 수고하셨으니 드리는 겁니다.”라는 겁니다. “내가 이미 방송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데, 왜 정부 돈을 받아야 하느냐?”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자 그 직원은 젊은 사람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투로 “이 돈은 전혀 문제가 없는 거예요. 뇌물도 아니고,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알겠습니다.”라며 겸연쩍게 웃으며 물러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사람들이 아예 봉투에 자랑스럽게 ‘문체부 공보과’라고 인쇄를 해 놨더라고요, 이런 짓거리가 늘 있어왔다는 거잖아요? 이건 장관이 개인적으로 지갑을 열어서 ‘수고합니다. 가는 길에 식사라도 하세요’라고 하면서 몇 만원 쥐여주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잖아요? 왜 제 돈도 아닌 나랏돈 가지고 불법을 저지르고 생색을 내냐고요? 그게 다 세금이잖아요?”라며 선배 PD와 함께 씩씩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공생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하다못해 골프 중계를 나가도 골프장에서 촌지를 주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니 정부 부처이든 일반 기업이든 새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김영란법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서 잘 만든 법 하나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촌지가 아닌 다른 수단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는 강압적이고 어떤 경우는 언론인 스스로 자처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진행하던 뉴스에 수도권 소식을 전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서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외곽에 있는 지국에서 기사를 만들어서 송출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시의성이 있거나 시민의 삶을 높이는 양질의 기사를 보내오는데 유독 한 분만 도정을 소개하거나 수도권 중소도시의 홍보성 기사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는 어김없이 시장의 인터뷰가 등장합니다. 시의 과장이나 국장이 해도 될 인터뷰인데 꼭 시장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몇 년째 이런 일이 반복된 후, 정년을 맞은 그 선배 기자가 유력 정치인의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며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흔히 하는 말로 ‘관종’들이 많습니다. 관종은 관심종자의 줄임말로 일부러 특이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관종은 어떻게든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치욕스러운 일은 ‘잊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TV나 인터넷 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싶어 합니다. 종종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관종들의 행태가 그렇습니다.

‘인형 장관’ ‘우산 차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관종 정치인이 빚은 추태입니다. 법무부는 지난 26일 탈레반을 피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한국인 조력자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들을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인형 전달식' 장면을 촬영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기자들이 거부하자 "공항 보안구역에서 취재하도록 우리가 허가를 해줬는데, 협조를 안 해주면 허가를 안 해줄 수도 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만 있을 수 있는데 입지 않은 기자들은 장관 행사장으로 이동해 달라"고 겁박을 해서 기어이 박 장관의 인형전달식을 촬영하게 했다고 합니다. 장관이 TV에 무척 나오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입국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입소한 직후 진행된 강성국 법무부 차관의 브리핑에서 벌어진 우산 해프닝은 말 그대로 가관이었습니다. 장관은 공항에서, 차관은 진천에서 관종의 클라이맥스를 찍었습니다.

굳이 장관이 공항까지 나가서 아이들에게 인형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해야 했을까요? 인형은 공항 직원이 줘도 되는 거 아닌가요? 장관, 차관은 공항과 진천에 나가서 TV에 얼굴을 비치는 것보다 청사에 모여서 특별입국자의 정착 문제로 파생될 수 있는 국민들의 우려를 덜어 줄 수 있는 방안과 이참에 더 나아가서 이미 산적해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더 나은 대책을 세우는 것이 훨씬 더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이번 미라클 작전의 공로자는 따로 있던데 장, 차관이 남이 차린 밥상에 굳이 숟가락을 얹으려는 심보를 보며, ‘아, 저 사람들에게 국민은 너무 쉽게 보이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답은 하나입니다. 그냥 자기가 잘해서 국민이 좋아하게 하면 되는 겁니다. 저렇게 속된 말로 똥볼을 차면서도 언론이 잘 받아주기를 바라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35년 전에 필자에게 봉투를 내밀었던 공무원이 모시던 장관과 기자들을 겁박해서 인형 전달식을 찍게 한 공무원이 모시는 장관, 이 둘의 차이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건만, 어찌하여 행태는 그대로인지, 당시 필자는 장관의 모습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인형을 전달하는 장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그냥 인형을 들고 지나가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만 매체에 실렸습니다.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방송기자연합회 · 전국언론노동조합 · 한국기자협회 · 한국PD연합회가 지난 8월 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일부 조항이 변경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발표한 성명을 보면 정치하는 사람들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그 일부분입니다.

민주당의 개정안 강행처리는 ‘언론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최대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노골적인 의사표시다. 우리는 지난 4월부터 민주당 당대표, 원내대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및 간사 의원에게 시민이 참여하는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추천 절차의 법 개정을 우선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공영방송을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당 차원의 약속은 철저한 기만극이었으며,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과정에 현업 언론단체들은 들러리를 위한 미끼로 전락했다. 자신들을 감시하는 언론의 발을 묶어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강화할 길을 활짝 열었으며, 뒤로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 과정에서 법에도 없는 여야의 기득권을 참 알뜰하게도 지켜냈다. 민주당은 언중법 개정의 명분으로 ‘시민 보호’를 내세우더니, ‘참여하고 결정할 시민’을 요구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당신들이 보호하려는 시민과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참여할 시민은 서로 다른 시민인가? 야당일 때는 그렇게 언론자유와 국민참여를 말하고, 촛불시민이 길을 열어 권력에 무혈입성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는가?

언론은 한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도 도구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듯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내편만 들어주는 사이비 언론을 바른 언론이라고 말을 하고 다닙니다. 바꾸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여든 야든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저 ‘관종’만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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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남 (222.XXX.XXX.192)
옳고 바르고 맞는 말씀이 왜 이렇게 고맙게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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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1 1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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